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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량의 멸망.1./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4日(陰8/25)壬午

solpee 2021. 9. 30. 07:46

《後唐紀1 莊宗 同光 元年》〈癸未, 923年〉

 

 ⑳. 황제(이존욱)는 위국부인 유씨와 황제의 아들인 이계급을 보내어 흥당으로 돌려보내고 그들과 결별을 하며 말하였다.

 "일의 성패는 이 한 번의 결전에 달려 있는데, 만약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위궁에 모아서 그곳을 불태우시오."

 이어서 두노혁· 이소굉· 장헌· 왕정언에게 명령하여 함께 동경을 지키게 하였다.

 ⑳. 帝遣魏國夫人劉氏、皇子繼岌歸興唐,與之訣曰:「事之成敗,在此一決;若其不濟,當聚吾家於魏宮而焚之!」〈史言帝此行非有廟勝之策。〉仍命豆盧革、李紹宏、張憲、王正言同守東京。〈帝以魏州為東京興唐府。〉

 

 10월 2일에 황제는 대군을 인솔하고 양유에서 하를 건너 3일에 운주에 도착하여 한밤중에 군을 전진시켜 문을 넘었는데, 이사원을 선봉으로 삼아 4일 아침에 양의 군과 마주쳐 한 번의 전투로 그들을 패배시키고 뒤쫓아 가서 중도에 도착하여 그 성을 포위하였다. 성에는 지키려고 대비하지 못하여 잠깐 사이에 무너져서 포우를 탈출하자 뒤쫓아 가서 쳐서 격파하였다.

 壬申,帝以大軍自楊劉濟河,癸酉,至鄆州,中夜進軍踰汶以李嗣源為前鋒,甲戌旦,遇梁兵,一戰敗之,〈敗,補邁翻。〉追至中都圍其城。堿無守備,少頃,〈少頃,謂少頃刻之間。〉梁兵潰圍出,追擊,破之。

 

 왕언장이 수십의 기병을 데리고 두주하자 용무대장군 이소기가 단기로 그들을 뒤쫓았는데, 그의 음성을 알고 말하였다.

 "왕철창이다."

 삭(삼지창)을 빼어 그를 찌르자 왕언장이 중상을 입고 말에서 떨어지니 드디어 그를 사로잡고 아울러 도감 장한걸· 조주 자사 이지절· 비장인 조정은· 유사빈 등 200여 명을 사로잡고 참수한 것이 수천 급이었다. 조정은은 개봉 사람이고, 유사빈은 유지준의 친척 조카이다.

 王彥章以數十騎走,龍武大將軍李紹奇單騎追之,識其聲,曰:「王鐵槍也!」〈按薛史,夏魯奇嘗事梁祖,與彥章素善,故識其語,音。騎,奇寄翻。〉拔擡刺之,彥章重傷,馬躓,〈刺,七亦翻。重,直隴翻。躓,陟利翻。〉遂擒之,并擒都監張漢傑、〈監,古銜翻。〉曹州刺史李知節、裨將趙廷隱、劉嗣彬等二百餘人,斬首數千級。廷隱,開封人;嗣,知俊之族子也。〈劉知俊自徐降梁,自梁降岐,自岐降蜀,為蜀所殺。〉

 

 왕언장이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아자(이존욱의 유명)는 닭싸움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두려워할 만하겠는가?"

 이에 이르러 황제가 왕언장에게 말하였다.

 "너는 항상 나를 어린아이라고 말하였는데 오늘은 굴복하겠는가?"

 또 물었다.

 "너는 훌륭한 장수로 이름나 있는데 어찌 연주를 지키지 아니하였는가? 중도에는 성벽과 보루를 없이 하였으니 무엇으로 스스로 굳게 하였는가?"

 왕언장이 대답하였다.

 "천명이 이미 떠나갔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소."

 彥章嘗謂人曰:「李亞子鬬雞小兒,何足畏!」至是,帝謂彥章曰:「爾常謂我小兒,今日服未﹖」又問:「爾名善將,何不守兗州﹖〈將,即亮翻。九域志:中都東南至兗州九里。〉中都無壁壘,何以自固﹖」彥章對曰:「天命已去,無足言者。」

 

 황제가 왕언장의 재주를 애석하게 여겨서 그를 등용하려고 하여, 약을 하사하여 그의 창상을 치료하게 하고 누차 사람을 보내어 그를 유혹하며 타이르게 하였다.

 왕언장이 말하였다.

 "나는 본래 필부로서 양의 은혜를 입어 지위가 상장에까지 이르렀으며, 황제와 더불어 15년 동안이나 교전하였는데, 지금 군대는 패배하고 힘은 다하여서 죽는 것이 나 스스로의 몫인데 설령 황제가 불쌍히 여겨서 나를 살린들 내 무슨 면목으로 천하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겠는가? 어찌 아침에는 양의 신하가 되었다가 해질녘에는 당의 신하가 되는 일이 있겠소? 이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오!"

 帝惜彥章之材,欲用之,賜藥傅其創兵則力窮,死自其分,〈分,扶問翻。〉縱皇帝憐而生我,我何面目見天下之人乎!豈有朝為梁將,暮為唐臣!此我所不為也。」

 

 황제는 다시 이사원을 파견하여 스스로 가서 그를 달래도록 하였는데, 왕언장이 누워서 이사원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막길열(본명 즉 오랑캐라는 뜻)이 아닌가?"

 왕언장이 평소에 이사원을 경시하였다. 그런 까닭에 어렸을 때의 이름으로 그를 부른 것이다.

 이에 제장들이 칭송하며 축하하니, 황제가 술잔을 들고 이사원에게 권하며 말하였다.

 "오늘의 공로는 공과 곽숭도의 힘이었소. 저번에 이소굉의 무리들을 좇았더러면 대사는 이미 떠나갔을 것이오."

 帝復遣李嗣源自往諭之,〈復,扶又翻。〉彥章臥謂嗣源曰:「汝非邈佶烈乎﹖」〈佶,其吉翻。〉彥章素輕嗣源,故以小名呼之。於是諸將稱賀,帝舉酒屬嗣源曰:〈屬,之欲翻。〉「今曰之功,公與崇韜之力也。曏從紹宏輩語,大事去矣。」

 

 황제는 또한 제장들에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걱정한 것은 오직 왕언장뿐이엇는데 지금 이미 사로잡았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 양을 멸망시키는 것이오. 단응이 여전히 하에 있으니 나아가고 물러나는 계책으로 보아 의당 어디로 향하여야 좋겠소?"

 제장들이 생각하였다.

 "전하는 사람들이 비록 대량에는 대비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직 허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동방에 있는 여러 진의 군사들은 모두 단응의 지휘 아래에 잇고 남은 것은 텅 빈 성일 뿐이니, 폐하께서 천자의 위엄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가시면 점령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먼저 땅을 넓혀서 동쪽으로는 바다에 붙게 하고 그런 다음에 틈을 보아 출동하면 모든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帝又謂諸將曰:「曏所患惟王彥章,今已就擒,是天意滅梁也。段凝猶在河上,進退之計,宜何血而可﹖」諸將以為:「傳者雖云大梁無備,未知虛實。今東方諸鎮兵皆在段凝麾動,可以萬全。」

 

 강연효가 대량을 신속히 탈취하는 것을 굳게 요청하였다. 이사원이 말하였다.

 "병법에는 신속한 것을 귀히 여깁니다. 지금 왕언장이 사로잡혔는데, 단응이 반드시 아직 알지 못하고 있으며, 바로 어떤 사람을 도주하게 하여 보고하게 한다고 해도 의심하던지 믿던지 간에 오히려 사흘이 필요합니다. 

 설령 만약에 우리가 향하는 곳을 알고 즉시 구원병을 출동시켜서 곧바로 길을 따라간다고 해도 터진 황하에 막히니, 마땅히 백마의 남쪽에서 건너는데 수만 명의 무리여서 배와 노 역시 갑자기 갖추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은 대량까지 거리가 지극히 가까우며 앞에는 산이나 험한 곳이 없으니 방진을 치고 가로질러 행군해서 밤낮으로 배나 빠른 속도로 가면 이틀 밤을 묵으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단응이 아직 하를 떠나기도 못하였을 적에 주우정은 이미 우리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강연효의 말이 옳으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대군을 데리고 전진하시고, 신이 바라건대 1천 명의 기병을 데리고 앞서 달려 나가겠습니다."

 황제가 이를 좇았다. 명령을 내리자 모든 부대가 뛸 듯이 기뻐하며 출정하기를 원하였다.

 康延孝固請亟取大梁。李嗣源曰:「兵貴神速。今彥章就擒,段凝必未之知,就使有人走告,疑信之間尚須三日。設若知吾所向,即發救兵,直路則阻決河,〈即謂段凝所決護駕水。〉須自白馬南渡,數萬之眾,舟楫亦難猝辦。此去大梁至近,前無山險,方陳橫行,〈陳,讀曰陣。〉晝夜兼程,信宿可至。段凝未離河上,〈離,力智翻。〉友貞已為吾擒矣。延孝之言是也,請陛下以大軍徐進,臣願以千騎前驅。」帝從之。令下,諸軍皆踊躍願行。

 

 이날 저녁에 이사원은 선봉군을 인솔하고 배나 빠른 길로 대량을 향하였다.

 5일에 황제는 중도를 출발하면서 왕언장을 들것에 싣고서 스스로 따르게 하였는데, 중사를 파견하여 왕언장에게 물었다.

 "이번의 우리 전술은 이기겠는가?"

 대답하였다.

 "단응에게는 전예의 군사 6만 명이 잇는데, 비록 주장이 재목이 아닐지라도 역시 아직 그의 창을 거꾸로 든 적이 없으니 거의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오."

 황제는 그가 끝내 기용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서 듣어 그의 목을 베었다.

 是夕,嗣源帥前軍倍道趣大梁。〈帥,讀曰率。趣,七喻翻。〉乙亥,帝發中都舁王彥章自隨,〈舁,音余,又羊如翻。〉遣中使問彥章曰:「吾此行克乎﹖」對曰:「段凝有精兵六萬,雖主將非材,亦未肯遽爾倒戈,殆難克也。」帝知其終不為用,遂斬之。〈今汶上縣有王彥章墓及祠。〉

 

 7일에 조주에 도착하자 양의 수장이 항복하였다.

 왕언장의 패졸 가운데 먼저 대량에 도착하여 양주에게 '왕언장은 사로잡혔고 당의 군사가 멀리까지 말을 몰아서 또 도착할 것'이라고 보고한 사람이 있었는데, 양주가 가족을 모아놓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운과 복이 다하였도다!"

 丁丑,至昔州,〈九域志:曹州西南至大梁二百四十餘里。〉梁守將降。〈將,即亮翻。降,戶江翻。〉

王彥章敗卒有先至大梁,告梁主以「彥章就擒,唐軍長驅且至」者,梁主聚族哭曰:「運祚盡矣!

 

 여러 신하들을 소환하여 대책을 물으니, 모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양주가 경상에게 말하였다.

 "짐이 항상 경이 말한 것을 소홀히 하고 살아서 이에 이르렀소. 지금 사태가 급박하다고 하여서 경은 원망하지 마오. 장차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경상이 울면서 답했다.

 "신은 선황의 두터운 은혜를 입기를 곧 3기(紀는 12년 즉 36년)가 되었는데 명목으로는 재상이 되었지만 그 사실은 주씨 집안의 늙은 종으로 폐하 섬기는 것을 낭군처럼 하였습니다. 신의 앞뒤로 말씀을 드린 것은 충성을 다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召群臣問策,皆莫能對。梁主謂敬翔曰:「朕居常忽卿所言,以至於此。今事急矣,卿勿以為懟。〈懟,直類翻,怨也。〉將若之何﹖」翔泣曰:「臣受先帝厚恩,殆將三紀,〈梁太祖鎮宣武,敬翔即為幕屬,以至為相,汔于梁亡,故自言受恩殆將三紀。以此觀之,則知二百六十六卷開平元年,史言翔在幕府三十餘年,誤也。〉名為宰相,其實朱氏老奴,事陛下如郎君。〈門生故吏下至僮奴,呼主人之子皆曰郎君。〉臣前後獻言莫匪盡忠。

 

 폐하께서 애총에 단응을 기용하시자 신이 극력으로 안 된다고 말씀드렸으나 소인들이 떼거지를 이루어서 오늘이 있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당의 군대가 또 도착한다고 하지만 단응은 물의 북쪽이 막혀서 구원하러 올 수 없습니다. 신이 폐하께 청하고자 하는 것은 나가서 오랑캐를 피하라고 할 것이나 폐하께서는 반드시 듣고 좇지 않을 것이고, 폐하께 기습하는 군사를 내보내어 맞붙어 싸울 것을 요청하나 폐하께서는 반드시 과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니, 비록 장량과 진평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누가 폐하를 위하여 계책을 세울 사람이겠습니까? 신이 바라건대 먼저 죽음을 내려 주셔서 차마 종묘가 망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ㅇ어서 양주와 더불어 서로 마주보며 통곡을 하였다.

 陛下初用段凝,臣極言不可,〈事見上。〉小人朋比,〈指趙、張也。比,毗至翻。〉致有今日。今唐兵且至,段凝限於水北,不能赴救。〈言段凝之兵欲還救大梁,為決河之水所限,其道回遠。〉臣欲請陛下出〈【章:十二行本「出」下有「居」字;乙十一行本且同;張校同。】〉避狄,陛下必不聽從;〈【章:十一行本「從」下有「欲」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請陛下出奇合戰,陛下必不果決,雖使良、平更生,誰能為陛下計者!〈張良、陳平以智輔漢高祖定天下,後之言智者率稱之。為,不偽翻。〉臣願先賜死,不忍宗廟之亡也。因與梁主相向慟哭

 

 양주는 장한윤을 파견하여 말을 타고 달려서 단응의 군대를 뒤쫓아 가게 하였는데, 장한윤이 활주에 도착하여 말에서 떨어져 발을 다쳤고 다시 물이 막혀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당시에 성 안에는 오히려 공학군(금위대) 수천이 있어 주규가 그들을 인솔하고 출전하기를 요청하였는데, 양주는 좇지 않고 개봉윤 왕찬에게 명령하여 시장 사람들을 몰아서 성에 올라 경비하게 하였다.

 梁主遣張漢倫馳騎追段凝軍;漢倫至滑州,墜馬傷足,〈九域志,大梁北至滑州二百里。此註與前註王彥章三日破賊事,大梁至滑州有十里之差。蓋九域志於大梁註及滑州註其道里遠近自有微差者,今不敢輕改,因兩存之。中間若此類頗多。〉復限水不能進。〈復,扶又翻。〉

時城中尚有控鶴軍數千,朱珪請帥之出戰;梁主不從,〈帥,讀曰率。〉命開封尹王瓚驅市人乘城為備。

 

 애초에, 양의 섬주(삼문협)절도사인 소왕 주우회는 주전욱의 아들인데 성품이 빼어나고 깨었으므로 인심이 대부분 그에게 향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가 금군을 꾀어내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말하자 양주가 불러 돌아오게 하여 그의 형인 주우량· 주우능과 나란히 별제에 유폐하였다. 당의 군사들이 곧 도착하게 되자 양주는 여러 형제들이 위기를 타고 반란을 모의할 것을 의심하여 동생인 하왕 주우옹· 건왕 주우휘와 나란히 그들을 다 죽였다.

 初,梁陝州節度使邵王友誨,全昱之子也,性穎悟,人心多向之。〈陝,失冉翻。〉或言其誘致禁軍欲為亂,〈誘,音酉。〉梁主召還,與其兄友諒、友能並幽于別第。〈友能反見上卷梁龍德元年。〉及唐師將至,梁主疑諸兄弟乘危謀亂,并皇弚賀王友雍、建王友徽盡疫之。〈考異曰:薛史云:「友諒、友能、友誨,莊宗入汴,同日遇害。」按中都既敗,均王親弟猶疑而殺之,況其從弟嘗為亂者,豈得獨存!故附於此。〉

 

 양주가 건국루(남문 누각)에 올라가서 가까이하고 신임하던 사람들을 마주하여 선택하여 그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야복을 입게 하고 납조(납환 속에 밀지)를 싸가지고 가서 단응의 군사들에게 재촉하게 하였는데,  이미 인사를 하고나서는 모두 도망하여서 숨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낙양으로 행차하여 여러 군대를 모아서 당에 대항할 것을 요청하면서 당이 비록 도성을 얻엇다 하더라도 형세는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떤 사람은 단응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행차할 것을 요청하니, 공학도지휘사 황보린이 말하였다.

 梁主登建國樓,〈大梁宮城南門曰建國門,其樓曰建國樓。〉面擇親信厚賜之,仗衣野服,〈衣,於既翻。〉齎蠟詔,促段凝軍,〈蠟詔,猶蠟書也,命出於上,故謂之蠟 詔。〉既辭,皆亡匿。或請幸洛陽,收集諸軍以拒唐,唐雖得都城,勢不能久留。或請幸段凝軍,控鶴都指揮使皇甫麟曰:〈考異曰:莊宗實錄「麟」作「鏻」。今 從莊宗列傳及薛史。〉

 

 "단응은 원래 장수의 재목이 아니고, 관직은 총애로 말미암아 승진하였으니, 지금 위태롭고 궁색할 때에 그가 기회를 만나서 제압하고 승리하며 패배를 돌려서 공로를 세우기를 바라기는 어렵습니다. 또 단응은 왕언장이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담력이 이미 깨졌으므로 어찌 끝까지 폐하를 위하여 절개를 다한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凝本非將才,〈將,即亮翻。〉官由幸進,〈段凝以其妹得進,事見二百六十八卷梁太祖乾化元年。〉今危窘之際,〈窘,梁隕翻。〉望其臨機制勝,轉敗為功,難矣。且凝聞彥章敗,其膽已破,安知能終為陛下盡節乎!」〈終為,于偽翻;下臣為同。〉

 

 조암이 말하였다.

 "일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한 번 이 누각에서 내려가면 누구의 마음인들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양주는 마침내 중지하였다. 다시 재상을 불러 이를 모의하니 정각이 스스로 전국보를 품고 거짓으로 항복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풀어볼 것을 요청하자, 양주가 말하였다.

 "오늘 진시로 감히 보물을 아끼지는 않겠으나, 다만 경의 이러한 책략과 같이 한다면 끝내 할 수 있겠는가?"

 정각이 머리를 숙이고 오래 있다가 말하였다.

 "다만 아직 끝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움츠리며 웃었다. 양주는 밤낮으로 울면서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전국보를 침실에 두었닥 홀연히 그것을 잃어버렸는데, 이미 좌우의 사람들이 그것을 훔쳐서 당의 군대를 영접하게 되었다.

 趙巖曰:「事勢如此,一下此樓,誰心可保!」梁主及止。復召宰相謀之,鄭玨請自懷傳國寶詐降以紓國難,〈復,扶又翻。玨,古岳翻。紓,商居翻,緩也。難,乃旦翻。〉梁主曰:「今日固不敢愛寶,但如卿此朿,竟可了否﹖」玨俛首久之,〈俛,音免。〉曰::「但恐未了。」左右皆縮頸而笑。梁主日夜涕泣,不知所為;置傳國寶於臥內,忽失之,已為左右竊之迎唐軍矣。

 

 8일에 어떤 사람이 당의 군대가 이미 조주를 지났으므로 흙먼지가 하늘을 가렸다고 보고하자, 조암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온 허주를 대우함이 두터웟으니, 반드시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허주로 도망갔다. 양주가 황보린에게 말하였다.

 "이씨는 대대로 우리의 원수이니, 이치상으로 머리를 내리기가 어렵고 저들의 칼과 톱을 기다릴 수도 없다. 나는 스스로 자를 수 없으니 경은 나의 목을 자를 수 있겠다."

 황보린이 울면서 말하였다.

 "신이 폐하를 위하여 검을 휘둘러 당의 군사를 죽이라고 하면 하겠지만,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습니다."

 양주가 말하였다.

 "경이 나를 팔아먹고자 하는 것인가?"

 戊寅,或告唐軍已過曹州,塵埃張天,趙巖謂從者曰:「吾待溫許州厚,必不負我。」遂奔許州。〈九域志:大梁西南至許州一百七十五里。從,才用翻。溫韜由趙巖得許州,見卷梁龍德元年。〉

梁主謂皇甫麟曰:「李氏吾世讎,理難降首,〈降,戶江翻。首,式又翻。言以事理推之,難於迎降而自首也。一讀「降首」皆如字,言難低頭為之下也。〉不可俟彼刀鋸。吾不能自裁,卿可斷吾首。」〈斷,音短。〉麟泣曰:「臣為陛下揮劍死唐軍則可矣,不敢春此詔。」梁主曰:「卿欲賣我邪﹖」

 

 황보린이 스스로 목 베려고 하자 양주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경과 더불어 죽겠다."

 황보린이 드디어 양주를 시해하고 이어서 자살하였다. 양주는 사람됨이 온순하고 공손하며 절약하여 주색에 빠지는 실수가 없엇는데, 다만 조엄과 장한걸을 총애하고 신뢰하여 위엄과 복을 멋대로 하게하고 경상과 이진의 옛 신하를 소외시키고 버려서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麟欲自剄,〈剄,古頂翻。〉梁主持之曰:「與卿俱死。」麟遂弒梁主,因自殺。梁主為人溫恭約,〈「約」上當有「儉」字。句斷〉〈【章:十二行本正有「儉」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無荒淫之失;但寵信趙、張,使擅威福,疏棄敬、李舊臣,〈敬翔、李振皆佐梁太祖者。〉不用其言,以至於亡。〈唐天祐三年,梁受唐禪,歲在丁卯,三主,十七年而亡。〉

 

 9일 아침에 이사원의 군대가 대량에 도착하여 봉구문을 공격하니 왕찬이 문을 열고 나와서 항복하자, 이사원이 성에 들어가 군민을 어루만지며 안정시켰다.  이날에 황제가 양문으로 들어오자 백관들이 말 머리에서 영접하고 알현하며 엎드려 절하며 죄 받기를 요청하니 황제가 그들을 위로하고 각기 그들의 직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己卯旦,李嗣源軍至大梁,攻封丘門,〈大梁城北面二門,封兵門在酉酸棗門在東。梁開平黿年改封丘門為含曜門。時人猶以舊門名稱之。晉天福三年又改為宣陽門。又汴京圖:京城北四門,從東曰陣橋門,次曰封丘門。〉王瓚開門出降,嗣源入城,撫安軍民。是日,帝入自梁門,〈梁門,大梁城西面北來第一門,梁開平元年改為乾象門,晉天福三年改為乾明門。〉百官迎謁於馬首,拜伏請罪,帝慰勞之,〈勞,力到翻;下勞賜同。〉使各復其位。

 

 이사원이 영접하며 축하하자 황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손으로 이사원의 옷을 끌어당겨 머리를 만지며 말하였다.

 "우리가 천하를 소유한 것은 경의 부자의 공로이며, 천하는 그대와 더불어 이를 함께 할 것이오."

 황제가 양주를 찾으라고 명령하니, 얼마 안 되어 어떤 사람이 그의 수급을 바쳤다.

 李嗣源迎賀,帝喜不自勝,手引嗣源衣,以頭觸之曰:「吾有天下,卿父子之功也,天下與爾共之。」〈帝於此際,可謂喜而失節矣宜不能保有天下也。勝,音升。〉帝命訪求梁主,頃之,或以其首獻。〈考異曰:實錄:「帝慘然曰:『敵惠散怨,不在後嗣。朕與梁主十年戰爭,恨不生識其面。』」按莊宗漆均王首藏之太祖,豈有欲全之之理!此特虛言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