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紀1 高祖 天福 12年》〈丁未· 947〉 ⑤. 정월 5일에 요에서는 진주(晉主: 황제 석중귀)를 부의후로 삼고 황룡부에 안치하였다. 황룡부는 즉 모용씨의 화룡성이다. 요황제가 이태후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석중귀는 어머니의 명령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데 스스로 편안한대로 하여 더불어 가지 않겠다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석중귀는 첩을 섬기면서 심히 공손하였습니다. 실수한 것은 선황의 뜻을 어기고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끊은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다행스럽게도 큰 은혜를 입어 생명을 온전히 하고 가문을 보전하였으니 어미가 아들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에게 돌아가기를 바라겠습니까?" ⑤. 辛卯,契丹以晉主為負義侯,置於黃龍府。黃龍府,即慕容氏和龍城也。〈歐史曰:自幽州行十餘日,過平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