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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의 晉 合幷 1. / 立冬節中候地始凍2日(陰10/9 )乙丑.

《後漢紀1 高祖 天福 12年》〈丁未· 947〉 ⑤. 정월 5일에 요에서는 진주(晉主: 황제 석중귀)를 부의후로 삼고 황룡부에 안치하였다. 황룡부는 즉 모용씨의 화룡성이다. 요황제가 이태후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석중귀는 어머니의 명령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데 스스로 편안한대로 하여 더불어 가지 않겠다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석중귀는 첩을 섬기면서 심히 공손하였습니다. 실수한 것은 선황의 뜻을 어기고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끊은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다행스럽게도 큰 은혜를 입어 생명을 온전히 하고 가문을 보전하였으니 어미가 아들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에게 돌아가기를 바라겠습니까?" ⑤. 辛卯,契丹以晉主為負義侯,置於黃龍府。黃龍府,即慕容氏和龍城也。〈歐史曰:自幽州行十餘日,過平州..

카테고리 없음 2021.11.12

遼 侵攻과 晉 滅亡 2. / 立冬節中候地始凍(땅이 얼기 시작)1日(陰10/8 )甲子.

《後晉紀6 齊王 開運 3年》〈丙午· 946〉 16일에 황제는 비로소 두위 등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날 저녁에 또 장언택이 활주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송· 풍옥· 이언도를 불러 금중에 들어가서 일을 계획하게 하고, 유지원에게 조서를 내려서 군사를 징발하여 들어와서 구원하라고 하려고 하였다. 壬申,帝始聞杜威等降;是夕,又聞彥澤至滑州,召李崧、馮玉、李彥韜入禁中計 事,欲詔劉知遠發兵入援。〈太原距洛陽一千二百里,洛陽至大梁又二百八十里,就使劉知遠聞命投袂而起亦無及矣。〉 17일에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 장언택이 봉구문에서 관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이언도가 금군 500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나아갔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장언택은 명덕문 밖에서 군사를 정돈시키니 성 안은 크게 시끄러웠다. 癸酉,未明,彥澤自封丘門..

카테고리 없음 2021.11.09

遼 侵攻과 晉 滅亡 1. / 立冬節初候水始氷4日(陰10/6 )壬戌.

《後晉紀6 齊王 開運 3年》〈丙午· 946〉 ㉚. 두위는 비록 귀척이어서 상장이 되었으나 성격이 나약하고 겁쟁이었다. 편비(偏裨: 대장의 부장들, 偏將, 裨將, 佐將)는 모두 절도사이었으나 다만 날마다 서로 받들고 영접하며 주연을 베풀고 즐거움을 일삼았을 뿐 군사를 논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㉚. 杜威雖以貴戚為上將,性懦怯。偏裨皆節度使,〈自李守貞至宋彥筠皆節度使也。〉但日相承迎,置酒作樂,罕議軍事。 자주자사· 겸북면전운사인 이곡이 두위와 이수정에게 유세하였다. "지금 대군이 항주(恒州: 정정현)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어서 밥을 짓는 연기가 서로 바라보입니다. 만약 삼고목(三股木=鹿角: 수중방어용 목책)을 많이 물속에 설치하고 그 위에 땔감을 쌓고 흙을 펴면 다리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은밀히 성 안에 있는 사람..

카테고리 없음 202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