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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以勸善[wúyǐquànshàn]착한 일을 권할 수 없다./霜降節初候豺乃祭獸2日(陰9/8)庚子.

《南北朝 齊紀2 武帝 永明 2年》〈甲子, 484年〉 ⑫. 익주(사천 중부)의 대도수에 있는 獠族(liáozú)이 험난함을 믿고 교만하며 제멋대로 하였으나 앞과 뒤에 있었던 자사들이 통제할 수가 없었다. 진현달이 자사가 되자, 사신을 파견하여 꾸짖고 조세를 내서 죄를 씻도록 하였다. ⑫. 益州大度獠恃險驕恣,〈《水經註》︰南安縣有濛水,卽大度水,東入于江。《寰宇記》︰大度河自吐蕃界經雅州諸部落,至黎州東界,流入通望界。獠,魯皓翻。〉前後刺史不能制。及陳顯達爲刺史,遣使責其租賧。〈賧,吐濫翻。夷人以財贖罪曰賧。〉 요족의 족장이 말하였다. "두 눈을 뜬 자사도 또한 감히 나를 길들이지 못했는데 하물며 눈이 하나인 자사임에야!" 마침내 그 사자를 살해하였다. 진현달이 장리들을 나누어 거느리고 소리내 말하기를 사냥을 나간다고 하고 밤중..

카테고리 없음 2020.10.24

當使黃金與土同價[dāngshǐhuángjīnyǔtǔtóngjià]/霜降節初候豺乃祭獸2日(陰9/8)庚子.

《南北朝 齊紀1 高帝 乾元 4年》〈壬戌, 482年〉 ③. 3월, 6일에 황상이 사도 저연·상서좌복야 왕검을 불러서 유조를 받고 태자를 보필하게 하였는데, 8일에 임광전에서 죽었다. 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크게 사면하였다. ③. 三月,庚申,上召司徒褚淵、尚書左僕射王儉受遺詔輔太子;壬戌,殂于臨光殿。〈年五十六。〉太子卽位,大赦。 고제는 깊이가 있고 통이 컸으며 널리 배우고 문장을 지을 수 있었다. 성격은 깨끗하고 검소하여 主衣(황제의 옷 창고) 안에 玉導(황제의 머리핀)가 있었는데, 황상이 중서에게 칙령을 내려서 말하였다. "이것을 남겨 두면 바로 긴 병의 근원이 된다." 高帝沉深有大量,博學能文。性清儉,主衣中有玉導,〈主衣,主供御衣服。禁中有主衣庫。〉上敕中書曰︰「留此正是興長病源!」〈長,丁丈翻,今知兩翻。〉 바로 쳐..

카테고리 없음 2020.10.23

有吞敵之勢[yǒutūndízhīshì]적을 집어삼킬 기세를 가지다./霜降節(07:59)初候豺乃祭獸(승냥이 짐승잡아 제사)初日(陰9/7)己亥.

《南北朝 齊紀1 高帝 乾元 3年》〈己未, 481年〉 ⑯. 6월 16일에 위의 중산선왕 왕예가 죽었다. 왕예가 병이 들자 태황태후와 위황제가 여러 번 그의 집에 가서 병세를 살폈다. 죽자 태재로 추증하고 평성의 남쪽에 사당을 세웠다. ⑯. 甲辰,魏中山宣王王叡卒。叡疾病,太皇太后、魏主屢至其家視疾。及卒,贈太宰,立廟於平城南。 문사들 가운데 왕예를 위하여 애도의 시와 뇌사를 지은 사람이 100여 명이었으며, 장사를 지내게 되자 스스로 친인척·義舊라고 하면서 최질을 입고 곡을 하며 영구를 떠나보낸 사람이 1천여 명이었다. 文士爲叡作哀詩及誄者百餘人,〈爲,于僞翻。哀詩起於《黃鳥》。古者卿大夫沒,君命有司累其功德,爲文以哀之,曰誄。孔穎達曰︰誄,累也,累列生時行迹,誄之以作諡。音魯水翻。〉自稱親姻、義舊,縗絰哭送者千餘人。〈縗,倉回翻。〉 ..

카테고리 없음 20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