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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以勸善[wúyǐquànshàn]착한 일을 권할 수 없다./霜降節初候豺乃祭獸2日(陰9/8)庚子.

solpee 2020. 10. 24. 06:10

《南北朝 齊紀2 武 永明 2年》〈甲子, 484年

 

 ⑫. 익주(사천 중부)의 대도수에 있는 獠族(liáozú)이 험난함을 믿고 교만하며 제멋대로 하였으나 앞과 뒤에 있었던 자사들이 통제할 수가 없었다. 진현달이 자사가 되자, 사신을 파견하여 꾸짖고 조세를 내서 죄를 씻도록 하였다.

 ⑫. 益州大度獠恃險驕恣,《水經註》︰南安縣有濛水,卽大度水,東入于江。《寰宇記》︰大度河自吐蕃界經雅州諸部落,至黎州東界,流入通望界。獠,魯皓翻。前後刺史不能制。及陳顯達爲刺史,遣使責其租賧。賧,吐濫翻。夷人以財贖罪曰賧。

 

 요족의 족장이 말하였다.

 "두 눈을 뜬 자사도 또한 감히 나를 길들이지 못했는데 하물며 눈이 하나인 자사임에야!"

 마침내 그 사자를 살해하였다. 진현달이 장리들을 나누어 거느리고 소리내 말하기를 사냥을 나간다고 하고 밤중에 가서 갑자기 그들을 공격하여 남자와 여자들 어린애와 나이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베었다.

 獠帥曰︰「兩眼刺史尚不敢調我,帥,所類翻。調,徒弔翻。況一眼乎!」遂殺其使。顯達分部將吏,聲言出獵,夜,往襲之,男女無少長皆斬之。分,扶問翻。將,卽亮翻;下同。少,詩照翻。長,知兩翻。

 

 晉氏 이래로 익주 자사는 모두 유명한 장군으로 삼았다. 11월 18일에 황제가 처음으로 시흥왕 소감을 독익영제군사·익주 자사로 삼고 진현달을 불러 중호군으로 삼았다. 이보다 먼저 도적의 두목 한무방이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물길을 끊으며 난폭하게 굴었으나 군과 현에서 막을 수 없었다.

 晉氏以來,益州刺史皆以名將爲之。十一月,丁亥,帝始以始興王鑑爲督益‧寧諸軍事、益州刺史,徵顯達為中護軍。先是,劫帥韓武方聚黨千餘人斷流為暴,先,悉薦翻。斷,丁管翻。郡縣不能禁。

 

 소감이 가서 上明(호북 송자현)에 이르자 한무방이 나와서 항복하였는데, 장사 우종 등이 모두 청하기를 그를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소감이 말하였다.

 "그를 죽이는 것은 신의를 잃을 뿐 아니라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할 수 없다."

 鑑行至上明,武方出降,降,戶江翻;下同。長史虞悰等咸請殺之。悰,徂宗翻。鑑曰︰「殺之失信,且無以勸善。」

 

 마침내 대성에 아뢰어 그를 용서하게 하였는데, 이에 파서의 만이들 가운데 노략질하며 포악햇던 사람들이 모두 멀리서 풍문만 듣고서 투항하며 귀부하였다. 소감이 그땨 14세였으며 신성까지 나아갓는데, 도로에서 여럿이 떠들며 말하였다.

 "진현달이 병사와 말을 대량으로 모집하고 있는데 가지 않을 것이다."

 乃啓臺而宥之,於是巴西蠻夷爲寇暴者皆望風降附。鑑時年十四,行至新城,新城,今房州。道路籍籍,云「陳顯達大選士馬,不肯就徵。」

 

 이내 신성에 머물며 전첨 장담석을 파견하여 가서 형세를 살피도록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현달이 파견한 사신이 소감에게 이르니 모두 권하기를 그를 붙잡아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소감이 말하였다.

 "진현달은 우리 조정에 충절을 세웠는데 반드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乃停新城,遣典籤張曇皙往觀形勢。俄而顯達遣使詣鑑,咸勸鑑執之。鑑曰︰「顯達立節本朝,必自無此。」曇,徒含翻。皙,先擊翻。使,疏吏翻。朝,直遙翻;下同。

 

 머무른지 이틀이 되자 장담석이 돌와와서 빠짐없이 말하였다.

 "진현달은 이미 집을 옮겨 성을 나왔으며 오늘 저녁에는 전하를 바라보고 이를 것입니다."

 이에 마침내 앞으로 나아갔다. 소감은 문학을 좋아하였고 쓰는 용기와 의복이 마치 청빈한 선비와 같아서 촉 사람들이 그를 좋아 하였다.

 居二日,曇皙還,具言「顯達已遷家出城,日夕望殿下至。」於是乃前。鑑喜文學,喜,許記翻。器服如素士,蜀人悅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