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朝 梁紀11 武帝 中大通 3年》 (辛亥, 531秊) ㉙. 송등이 고환에게 유세하였다. "지금 조정이 막히고 끊어져 있어서 호령을 하여도 명령을 받는 곳이 없으니 권력이 세워지지 않으면 무리들은 장차 저지당하고 흩어지게 됩니다." 고환이 그것을 의심하니 손등이 재삼 굳게 요청하자 마침내 발해 태수 원랑을 세워서 황제로 하였다. 원랑은 원융의 아들이다. 6일에 원랑은 신도성의 서쪽에서 자리에 올랐고, 연호를 중흥으로 고쳤다. ㉙. 孫騰說高歡曰:「今朝廷隔絕,號令無所稟,〈說,式芮翻。受命曰稟,音必錦翻。〉不權有所立,則衆將沮散。」〈沮,在呂翻。〉歡疑之,騰再三固請,乃立勃海太守元朗爲帝。朗,融之子也。〈章武王融爲葛榮所殺。〉壬寅,朗卽位於信都城西,改元中興。〈廢帝諱朗,字仲哲,章武王融第三子也。〉 고환을 시중·승상·도독중외제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