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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海歸仁: 사해가 인으로 돌아오다./立冬節末候雉入大水爲蜃4日(陰10/6)丁卯

solpee 2020. 11. 19. 16:52

《南北朝 梁紀11 武 中大通 3 (辛亥, 531秊)

 

 ⑱. 4월 27일에 태자와 같은 어머니를 둔 동생인 진안왕 소강을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조야가 대부분 순서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사의시랑 주홍정이 일찍이 진안왕의 주부였는데, 마침내 상주한 기록을 가지고서 말하였다.

 ⑱. 丙申,立太子母弟晉安王綱爲皇太子。朝野多以爲不順,〈立世適孫爲順。朝,直遙翻。〉司議侍郎周弘正,〈按《陳書‧周弘正傳》:普通中初置司文義郎,直壽光省,以弘正爲司義侍郎。「議」當作「義」。〉嘗爲晉安王主簿,乃奏記曰:

 

 "경양의 도리가 없어진 지 많은 해가 지났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명대왕께서는 하늘이 장차 성스러움을 빼내어 사해가 인으로 돌아가는데, 이 때문에 황상께서는 덕스런 음성을 내어 대왕을 저부로 삼으셨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전하께서 目夷가 仁을 숭상하였던 의리(송 환공 자부가 되라는 말을 들은 목이는 미치지 못한다면서 달아났다)에 대항하고 자장이 대현의 절개를 잡고 만승을 버리는 것이 나막신 벗는 것과 같이 하고(순임금), 대개 천박하고 다투는 풍속을 위대한 오의 풍속으로 고치는 것(희태백)을 듣기를 원합니다.

 「謙讓道廢,多歷年所。伏惟明大王殿下,天挺將聖,〈《論語》:太宰問於子貢曰:「夫子聖者歟?」子貢曰:「固天縱之將聖。」朱元晦《註》曰:將,殆也,謙若不敢知之辭。或曰:將,大也。〉四海歸仁,是以皇上發德音,以大王爲儲副。意者願聞殿下抗目夷上仁之義,〈《左傳》:宋桓公疾,太子茲父固請曰:「目夷長且仁,君其立之。」公命子魚。子魚辭曰:「能以國讓,仁孰大焉?臣弗及也。」遂走而退。子魚,目夷字也。〉執子臧大賢之節,〈《左傳》:成十三年,諸侯伐秦,曹宣公卒于師,曹人使公子負芻守,公子欣時逆曹伯之喪;負芻殺太子而自立。旣葬,子臧將亡,國人皆將從之。成公乃懼,告罪,且請焉,子臧乃反。諸侯討曹成公,執而歸諸京師。將見子臧于王而立之,辭曰:「聖達節,次守節。爲君,非吾節也,雖不能聖,敢失守乎!」遂逃,奔宋。負芻立,是爲成公。子臧,欣時字也。〉逃玉〈【張:「玉」作「王」。】〉輿而弗乘,〈「玉輿」當作「王輿」。《莊子‧讓王篇》曰:越人三世弒其君,王子搜患之,逃乎丹穴。而越國無君,求王子搜不得,從之丹穴。王子搜不出,越人薰之以艾,乘以王輿,王子搜援綏登車,仰天而呼曰:「君乎君,獨不可以捨我乎!」〉棄萬乘如脫屣,〈《孟子》曰:舜視棄天下,猶棄敝屣也。乘,繩正翻。屣,所是翻。〉庶改澆競之俗,以大吳國之風。〈謂太伯以天下讓,逃而君吳也。澆,堅堯翻,薄也。〉

 

 옛날에 그런 사람이 있었고 지금 그런 말을 듣고서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전하가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행하지 않아도 다스려졌던 교화를 왕고에 다시 생기도록 만들고 제왕을 양보하는 도리를 미래에 잃지 않는다면 어찌 중대하지 않겠습니까?"

 왕은 좇지 못하였다. 주홍정은 주사의 조카이다.

 古有其人,今聞其語,能行之者,非殿下而誰!使無爲之化復生於遂古,〈復,扶又翻。朱元晦曰:遂,往也。〉讓王之道不墜於來葉,〈《莊子‧外篇》有《讓王》,述堯、舜以天下讓。來葉,來世也。〉豈不盛歟!」王不能從。弘正,捨之兄子也。〈周捨柄用於天監之初。〉

 

 태자는 시독인 동해 사람 서금을 가령으로 삼아 관기를 겸하게 하고 얼마 후 영직을 겸하도록 하였다. 서금은 문체가 경박하면서 화려하여 춘방에서 이를 다 배웠는데, 당시의 사람들은 그 문체를 '宮體'라고 하였다.

 太子以侍讀東海徐摛爲家令,〈晉王紹宗遷祕書少監,仍侍皇太子讀書,此侍讀之始也。〉兼管記,尋帶領直。〈管記,職同公府記室。梁制,上臺、東宮皆有領直,領直者,領直衞兵也。〉摛文體輕麗,春坊盡學之,〈東宮謂之春宮,宮坊謂之春坊。〉時人謂之宮體

 

 황상은 이 소식을 듣고 화를 내고 서금을 불러 책망하려고 하였다. 알현하게 되자 응답하는 것이 명석하고 민첩하였으며 말뜻이 볼 만하였고 뜻이 다시 명확하였다. 이어서 유교경전과 역사 그리고 석가의 가르침을 질문하자 서금은 종횡으로 헤아리고 비교하여 응하여 대답하는 것이 소리에 울리는 것과 같이 하니 황상은 크게 탄식하고 기이하게 여겼으며 총애하여 대우하는 것이 날로 커졌다.

 上聞之,怒,召摛,欲加誚責。及見,〈誚,才笑翻。見,賢遍翻。〉應對明敏,辭義可觀,意更釋然,因問經史及釋敎,摛商較從橫,〈較,古搉翻。從,子容翻。〉應對如響,上甚加歎異,〈上崇信釋氏,意謂徐摛業儒,但知經史而已,扣擊之餘,及於釋敎,商較從橫,應對如響,遂加歎異。

 

 영군인 주이가 기뻐하지 않으며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서수가 두 궁전을 출입하며 조금씩 와서 압박을 보이니, 나는 반드시 빨리 갈 곳을 만들어야겠다."

 마침내 틈을 타서 황상에게 보고하였다.

 "저 서금은 늙었고 또 산과 물을 사랑하니, 뜻은 1개 군에서 스스로 보양하는데 있습니다."

 황상은 서금이 진실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으로 여기고 마침내 서금을 불러 말하였다.

 "신안(절강 순안)은 산천이 아주 좋소."

 드디어 지방으로 보내 신안 태수로 삼았다.

 殊不思上有好者下必有甚者焉,釋敎盛行,可以媒富貴利達,江東人士孰不從風而靡乎!〉寵遇日隆。領軍朱异不悅,〈异,羊至翻。〉謂所親曰:「徐叟出入兩宮,漸來見逼,我須早爲之所。」遂乘間白上曰:「摛年老,又愛泉石,意在一郡自養。」上謂摛眞欲之,乃召摛,謂曰:「新安大好山水,」遂出爲新安太守。〈史言朱异固寵忌前,間,古莧翻。〉

 

 6월 15일에 화융공 소환을 예장왕으로 삼고, 그의 동생인 지강공 소예를 하동왕으로 삼았으며, 곡아공 소찰을 악양왕으로 삼았다. 황상은 사람들의 말이 그치지 않아서 소환 형제를 큰 군에 책봉하여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오래 지나 포막지가 사람을 유혹하여 약탈한 죄에 연루되었는데, 죄상이 사형에 이르지 않았으나 태자 소강은 죽은 소명의 억울함을 생각하여 눈물을 훔치며 포막지를 주살하였다.

 六月,癸丑,立華容公歡爲豫章王,其弟枝江公譽爲河東王,曲阿公詧爲岳陽王。〈詧,與察同。〉上以人言不息,〈謂不順也。〉故封歡兄弟以大郡,用慰其心。久之,鮑邈之坐誘掠人,〈誘,音酉。〉罪不至死,太子綱追思昭明之冤,揮淚誅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