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紀78 昭宗 光和 3年》〈庚申, 900年〉 ㉙. 태자가 즉위한 지 몇십일이 지나도번진들의 전문과 표문 등이 대부분 도달하지 않았다. 왕중선의 성품은 가혹하며 자세히 살펴서 평소 좌· 우군 안에 폐단이 많이 누적된 것을 알아서 중위가 되기에 이르자, 군대 안의 전곡을 걸어서 비교하여 숨기거나 몰입한 간악한 사람들을 붙잡아서 그들을 아프게 채찍질하여서 빚진 것을 급히 징수하니, 장사들은 자못 불안해 하였다. ㉙. 太子卽位累旬,藩鎭牋表多不至。王仲先性苛察,素知左、右軍多積弊,及爲中尉,鉤校軍中錢穀,得隱沒爲姦者,痛捶之,〈捶,止橤翻。〉急徵所負;將士頗不安。 염주의 웅의군사인 손덕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좌신책지휘사였고, 유계술이 폐립하면서부터 항상 분개와 탄식으로 마음이 평온치 않았다. 최유이 그 소식을 듣고 판관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