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隋紀1 文帝 開皇 14年》 (甲寅, 594) ④. 애초에, 장빈의 曆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는데, 광평 사람 유효손과 기주 사람 수재 유각이 나란히 그것의 부족한 부분을 말하였다. 장빈이 바야흐로 황상에게 총애를 받고 있어서 유휘가 그에게 물어서 함께 유효손을 비난하고 배척하여 파면시켰다. ④. 初,張賓曆旣行,〈開皇四年行張賓曆,見一百七十六卷陳長城公至德二年。〉廣平劉孝孫、〈《隋志》︰武安郡永平縣,舊曰廣平,置廣平郡,仁壽元年,改永平縣。〉冀州秀才劉焯〈信都郡置冀州。焯,職略翻。〉並言其失。賓方有寵於上,劉暉附會之,共短孝孫,斥罷之。 후에 장빈이 죽자 유효손을 액현 현승으로 삼았으나 관직을 버리고 경사에 들어가 그 일을 올리니, 조서를 내려서 직태사로 머물게 하였는데 몇 년이 지나도 옮겨지지 않자, 마침내 그 책을 안고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