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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고종 이치의 고리침략/ 驚蟄節末候膺化爲鳩 薔薇花風1日(陰2/3)壬戌

《唐紀16 高宗 龍朔 元年》 (辛酉, 661) ①. 봄, 정원 19일에 하남과 하북의 687개 주의 군사를 모집하여 4만4천여 명을 얻어서 평양과 누방에 있는 행영으로 가게 하였다. 22일에 홍려경 소사업을 부여도행군총관으로 삼고 회흘 등의 여러 부의 군사를 인솔하여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①. 春,正月,乙卯,募河南北、淮南六十七州兵,得四萬四千餘人,詣平壤、鏤方行營。戊午,以鴻臚卿蕭嗣業爲扶餘道行軍總管,帥回紇等諸部兵詣平壤。〈臚,陵如翻。帥,讀曰率。紇,下沒翻。〉 ③. 3월 초하루에 황상이 여러 신하와 외이와 더불어 낙성문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둔영에서 새로 가르친 무용을 관람하였는데, 이를 《一戎大定樂》이라 하였다. ③. 三月,丙申朔,上與羣臣及外夷宴於洛城門,〈《唐六典》︰洛陽宮城西北出曰洛城西門,其內曰德昌殿,德昌殿南出曰..

카테고리 없음 2021.03.14

身可殺也,辭不可更: 몸은 죽여도 말은 바꿀 수 없다./ 驚蟄節中候倉庚鳴棣棠花風5日(陰2/2)辛酉

《唐紀15 高宗 顯慶 3年》 (戊午, 658) ⑤. 6월에 영주(서수)도독 겸 東夷도호 정명진과 우령군중랑장 설인귀가 고리의 적봉진을 봉격하여 이를 점령하였는데, 목을 벤 것이 400여 급이었고 포로로 잡은 것이 100여 명이었다. 고리에서는 그들의 대장인 두방루를 파견하여 무리 3만을 거느리고 이를 막았는데, 정명진은 거란으로 맞아서 치게 하여 그들을 대파하였는데, 목을 벤 것이 2천500여 급이었다. (이상하게도 고리와 전쟁에서 당의 전사상자는 비밀이다. 왜냐하면 전과보다 피해가 배 이상 많아서 창피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는 통감필법) ⑤. 六月,營州都督兼東夷都護程名振、右領軍中郎將薛仁貴將兵攻高麗之赤烽鎭,拔之,斬首四百餘級,捕虜百餘人。高麗遣其大將豆方婁帥衆三萬拒之,名振以契丹逆擊,大破之,斬首二千五百級。〈《..

카테고리 없음 2021.03.13

이의부의 轉禍爲福/ 驚蟄節中候倉庚鳴(꾀꼬리 운다)棣棠花(산앵두)風4日(陰2/1)庚申

《唐紀15 高宗 永徽 6年》 (乙卯, 655) ④. 고리는 백제와 말갈의 군사와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경계를 침입하여 33개의 성을 빼앗았는데, 신라왕 김춘추는 사신을 파견하여 도와주기를 청하였다. 2월 25일에 영주(營州: 今 徐水 西北)도독 정명진과 좌위중랑장 소정방을 파견하여 군사를 발동하여 고리를 쳤다. ④. 高麗與百濟、靺鞨連兵,侵新羅北境,取三十三城;新羅王春秋遣使求援。〈使,疏吏翻。〉二月,乙丑,遣營州都督程名振、左衞中郎將蘇定方發兵擊高麗。〈將,卽亮翻。〉 ⑤. 여름, 5월 14일에 정명진 등이 遼水(今 大淸河)를 건너니 고리는 그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문을 열고 貴端水(今 南拒馬河 高碑店 일대의 白沟河)를 건너서 맞아 싸웠는데, 정명진이 분발하여 쳐서 그들을 대파하고 죽이고 붙잡은 사람이 1천여 명이..

카테고리 없음 2021.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