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紀52 憲宗 元和 元年》〈丙戌, 806年〉 ⑰. 4월 28일 원진을 우습유로 삼고, 백거이를 주질현위· 집현교리로 삼고, 소면을 우습유로 삼고, 심전사를 교서랑으로 삼았다. ⑰. 辛酉,以元稹爲左〈【章︰十二行本「左」作「右」;乙十一行本同;孔本同。】〉拾遺,〈【章︰十二行本「遺」下有「獨孤郁爲左拾遺」七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白居易爲盩厔尉、集賢校理,蕭俛爲右拾遺,〈集賢校理,開元八年置。俛,音免。〉沈傳師爲校書郎。 원진이 상소하여 간관이라는 직책에 대해 논한 말이다. "예전에 태종은 왕규와 위징을 간관으로 삼고, 연회와 놀이, 잠자고 밥 먹는 곳에서도 좌우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고, 또 3품 이상의 관리에게 명하여 들어와 큰 정사를 논의하면서는 반드시 간관 한 사람을 파견하여 따르도록 하여서 득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