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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俗淫僻,恥尚失所[fēngsúyínpì,chǐshàngshīsuǒ]/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晉紀11 愍帝 建興 4年》 (丙子, 316) ⑫. 간보가 평론하였다. ⑫. 干寶論曰: 옛날에 고조선황제(사마의)는 영웅의 재질과 넓은 도량을 가지고 시대에 맞추어 일어났으며, 성품은 깊고 침착하여 마치 성을 쌓은 것 같았고, 관대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들였고, 술수를 시행하여 사물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의 훌륭한 것을 알고 발탁하여 채용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그의 능력과 더불어 하니 위대한 법은 비로소 구성되었다. 昔高祖宣皇帝,以雄才碩量,應時而起,性深阻有若城府,而能寬綽以容納;行數術以御物,而知人善采拔。〈言胸中有城府者多不能寬容,任數用術者多不能用人,而宣帝能之也。〉於是百姓與能,〈謂天下皆推其能,莫與爭也。〉大象始構。〈劉良曰:象,法也;言晉之興成,大法從此始立也。〉 세종은 기업을 이어받고, 태조는 대업을 이어서 다르게 도..

카테고리 없음 2020.08.16

人之云亡,邦國殄悴[rénzhīyúnwáng,bāngguótiǎncuì]/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晉紀11 愍帝 建興 4年》 (丙子, 316) ②. 한의 중상시 왕침과 선회· 중궁복야 곽의 등이 모두 총애를 받아서 정사를 휘둘렀다. 한황제 유총이 후궁에서 졸고 연회를 베풀면서 어떤 때에는 3일 동안 술이 안 깼으며, 어떤 때에는 100일 동안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지난해 겨울부터 조회에 나오지 않았고, 정치적인 일은 모두 상국 유찬에게 위임하고, 오직 사람을 죽이는 것과 관직을 주는 것만 왕침 등에게 들어와서 보고하게 하였다. 왕침 등은 대부분 보고하지 않았고, 스스로 그의 개인적인 마음으로 결정하니 그러므로 공훈을 세웠던 구관에게는 혹 서임하지 않고, 간사한 소인들 가운데는 며칠 사이에 이천석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②. 漢中常侍王沈、宣懷、中宮僕射郭猗等,〈沈,持林翻。〉皆寵幸用事。漢主聰游..

카테고리 없음 2020.08.16

將無同![jiāngwútóng]/立秋節中候白露降5日(음6/27)辛卯

《晉紀4 惠帝 元康 7年》 (丁巳, 297) ③. 7월 21일, 정릉원공 왕혼이 죽었다. 9월에 상서우복야 왕융을 사도로 삼고, 태자태사 하소가 상서좌복야가 되었다. 왕융은 삼공이 되어서 그 시절과 더불어 올라갓다 내려갓다 하였지 시대의 병폐를 고치려고 한 바가 없었으며, 일을 소속 관료들에게 위임하고 가벼이 나가서 유람하고 놀았다. 성격이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그의 전원이 천하에 두루 퍼져 잇엇는데 매일 스스로 牙籌를 쥐고서 밤낮으로 계산하면서 항상 재산이 부족한 것 같이 생각하였다. ③. 丁丑,京陵元公王渾薨。九月,以尚書右僕射王戎爲司徒,太子太師何劭爲尚書左僕射。 戎爲三公,與時浮沈,無所匡救,委事僚寀,〈寀,此宰翻。《說文》曰:同官爲僚,同地爲寀。《爾雅》曰:寀,僚官。〉輕出遊放。性復貪吝,園田徧天下,每自執牙籌,晝夜會計..

카테고리 없음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