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朝 宋紀 武帝 永初 2年》〈辛酉, 421年〉 ⑬. 애초에, 황제(유유)가 독주 한 단지를 옛 낭야의 낭중령 장위에게 주고 영릉왕(東晉 末帝 恭帝 司馬德文)을 짐독시키게 하였는데, 장위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군주를 짐독으로 시해하고, 살기를 구하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다." 이에 길에서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죽었다. 장위는 장소의 형이다. ⑬. 初,帝以毒酒一甖〈甖,於耕翻,瓦器也。〉授前琅邪郎中令張偉,使酖零陵王,偉歎曰:「酖君以求生,不如死!」乃於道自飲而卒。〈卒,子恤翻。〉偉,卲之兄也。〈初,帝領揚州,辟卲爲僚屬。〉 태상 저수지와 시중 저담지는 모두 왕비의 오빠인데, 왕이 남자아이를 낳을 때마다 황제가 번번이 저수지 형제로 하여금 편리한 방법으로 죽이도록 하였다. 왕이 스스로 자리릃 양보하였는데, 화가 미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