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槿堂體本(1/24)/辛丑年大寒節中候征鳥厲疾1日(陰12/23)戊寅

solpee 2022. 1. 24. 12:53

槿堂體本(1/24)

☞.金剛不壞之身.[jīn gāng bù huài zhī shēn]

 

☞.薦人勿問親疏.

 837년 당 문종 개성 2년, 봄, 2월 기미(25)일에 문종이 재상에게 물었다.

 "사람을 천거하는데 가깝고 먼 것을 묻지 말도록 하시오. 짐이 듣기로는 두역직은 재상이 되어 가깝거나 친구라 하여 채용한 적이 없었다 하오. 만약 가까운 사람이거나 친구가 과연 인재인데 혐의 받는 것을 피하려고 그를 버린다면 이 역시 지극히 공정한 것이 아니오."

 

 여름, 4월, 11일에 문종은 중서사인·한림학사 겸 시서인 유공권을 편전에서 마주하였는데, 문종은 옷소매를 들어 유공권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이 옷은 이미 세 번 빨았소."

 신하들이 모두 문종의 검소한 덕망을 아름답다고 하였으나 유공권 혼자서 말이 없자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귀하기로는 천자이시고 부유하기로는 사해를 가졌으니 응당 어진 사람을 올리고 불초한 사람을 물리치며 간쟁을 받아들이고 상과 벌을 밝혀야 마침내 옹희(雍熙: 상하 화목하고, 국태민안한 안정된 모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세탁한 옷을 입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일 뿐입니다."

 문종이 말하였다.

 "짐은 가까운 사람을 간의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경은 간관으로서 풍채가 있어서 반드시 그것으로 삼겠소."

 12일에 유공권을 간의대부로 삼았다.

( 春,二月,己未,上謂宰相:「薦人勿問親疏,聯聞竇易直為相,未嘗用親故。若親故果才,避嫌而棄之,是亦不為至公也。」

 夏,四月,甲辰,上對中書舍人、翰林學士兼侍書柳公權等於便殿,上舉衫袖示之曰:「此衣已三浣矣!」

 眾皆美上之儉德,公權獨無言。上問其故,對曰:「陛下貴為天子,富有四海,當進賢退不肖,納諫諍,明賞罰,乃可以致雍熙。服浣濯之農,乃末節耳。」上曰:「聯知舍人不應復為諫議,以卿有諍臣風采,須屈卿為之。」乙巳,以公權為諫議大夫,餘如故。)

☞. 則不覺不足. 心生欲望...

☞. 事能知足心常快(樂, 泰. 愜), 人道無求心自高.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楓橋夜泊·張繼

☞.自不息.[zì qiáng bù xī]《易經·乾卦·象曰》

“天行健,君子以自疆不息。”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보고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北宋·徐賢《巫馬大夫碑銘》:“英奕子期,服劳继德,夙兴夜寐,自疆不息。”

(乾卦)象曰:“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天”代表阳,“健”又“键”有刚毅之意,君子应像自然一样刚毅,发奋图强。(坤卦)象曰:“地势坤,君子以厚德载物”,“地”代表阴,“坤”有和顺之意,君子还应像大地一样和顺,承载万物。

天道曰阴阳,地道曰柔刚,人道曰仁义。天之道“始万物”,地之道“生万物”,人也有人之道,在“使万物”之后,人道之作用便是“承载万物”。

☞.宣室求賢訪逐臣, 賈生才調更無倫. 可憐夜半虛前席, 不問蒼生問鬼神.《賈生·李商隱》  

 궁전에서 현인을 구하려고 추방된 신하를 불렀네. 가의의 훌륭한 재주는 논할 바도 없지. 밤중까지 황제 앞자리에 앉혔으나 애석한 건, 백성의 일은 자문하지 않고 귀신 일만 물었다네.

 

☞. 平生操履心如結, 餘事篇章筆有神挽晩翠吳老 億齡·鄭經世

 板老階庭玉立人。淸標炯炯映簪紳。平生操履心如結。餘事篇章筆有神。托契向來眞莫逆。攀瓊從此更無因。重壚永閉休須慟。西塞漫空鐵馬塵。

 판로의 뜰에 자란 빼어났던 사람으로, 맑은 의표 환히 빛나 비녀와 띠 비췄네. 평생토록 지조 행실 마음 아니 흩어졌고, 여사로 한 문장 또한 붓에 귀신 붙었었네. 서로 우의 맺은 이래 막역지우 되었는데, 이로부터 옥가지를 잡을 길이 없게 됐네. 무덤 길이 닫혔다고 애통해하지 말라, 서쪽 변경 하늘에는 철마 먼지 꽉 끼었네.

 吳老: 吳億齡(1552~1618)을 가리킨다. 오억령은 자가 大年이고 호가 만취이며, 본관은 同福이고 시호는 文肅이다. 저서로는 《晩翠集》이 있다. 이 만사는 광해군 10년(1618)에 오억령이 죽어 原州의 五枝山에 장사 지냈다가 이해에 白川의 先山으로 이장할 적에 지은 것이다.

 板老 : 오억령의 외삼촌인 成允諧를 가리킨다. 성윤해는 호가 板谷이며, 자는 和仲이다. 尙州 출신으로 圓通山 아래에서 서책과 자연을 벗 삼아 일생을 보냈는데, 선조 때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趙憲이 올린 상소에서 그를 평하여 숨은 선비 가운데 言論과 風旨가 바르고 굳센 최고의 인물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상주의 鳳山書院에 제향되었다.

☞.天降百祥.

作善天降百祥, 作惡天降之百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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