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이세민의 고리 침략 1/雨水節末候草木萌動菜花李花風2日(陰1/18)戊申

solpee 2021. 2. 28. 06:08

《唐紀13 太宗 貞觀 18》 (癸卯, 644)

 

 

 ②. 봄, 정월, 상리현장이 평양(今辽陽)에 이르렀는데, 막리지는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쳐서 그 두 개의 성을 점령하였는데, 고리왕의 사자가 그를 부르니 마침내 돌아왔다. 상리현장이 신라를 공격하지 말게 하려고 타일렀더니, 막리지가 말하였다.

 "옛날에 수 사람들이 쳐들어오자 신라가 우리 땅을 5백 리를 침략하였는데, 스스로 돌려주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칠 수는 없을 것이오."

 ②. 相里玄獎至平壤,莫離支已將兵擊新羅,破其兩城,〈將,卽亮翻。〉高麗王使召之,乃還。〈麗,力知翻。還,從宣翻,又音如字。〉玄獎諭使勿攻新羅,莫離支曰︰「昔隋人入寇,新羅乘釁侵我地五百里,〈謂隋煬帝伐高麗時。〉自非歸我侵地,恐兵未能已。」

 

 상리현장이 말하였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찌하여 추후에 노란을 한단 말이오? 요동(遼東은 今 海~大靑~南拒馬河를 遼河라 하였다.)의 여러개 성의 경우에 본래 중국의 군현들이지만 중국에서도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데 고리가 어찌하여 반드시 옛날 땅을 요구한단 말이오?"

 막리지는 끝내 좇지 않았다.

 玄獎曰︰「旣往之事,焉可追論!〈焉,於虔翻。〉至於遼東諸城,本皆中國郡縣,〈高麗之地,漢、魏皆爲郡縣,晉氏之亂,始與中國絕。〉中國尚且不言,高麗豈得必求故地。」莫離支竟不從。

 

 2월 1일에 상리현장이 돌아와서 그 상황을 갖추어 말하였다. 황상이 말하였다.

 "연개소문이 그 임금을 시해하고 그 대신들을 해치고 그 백성들으게 잔학하였으며, 지금 또 나의 조명을 어기면서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폭행하니, 토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二月,乙巳朔,玄獎還,具言其狀。上曰︰「蓋蘇文弒其君,賊其大臣,殘虐其民,今又違我詔命,侵暴鄰國,不可以不討。」

 

 간의대부 저수량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깃발을 휘둘러서 가리키자 중원이 깨끗하고 편안해졌으며, 돌아보니 사방에 있는 이적들이 두려워서 복종하여 위엄과 바라는 것이 큽니다. 지금 마침내 바다를 건너서 멀리 가서 작은 오랑캐를 정벌하다가 만약에 기한을 정해 놓고 이긴다면 오히려 좋겠습니다만 만일에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위엄과 바라는 것에 손상이 됩니다. 또한 분병(忿兵: 군내 반란)을 일으키면 안위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諫議大夫褚遂良曰︰「陛下指麾則中原清晏,顧眄則四夷讋服,〈眄,眠見翻。讋,之涉翻。〉威望大矣。今乃渡海遠征小夷,若指期克捷,猶可也。萬一蹉跌,〈蹉,七何翻。跌,徒結翻。〉傷威損望,更興忿兵,則安危難測矣。」

 

 이세적이 말하였다.

 "전에 설연타가 들어와 노략질할 때에 폐하께서 군사를 일으켜서 끝까지 토벌하고자 하였는데, 위징이 간언을 하여 중지하였다가 오늘에 이르러서 걱정거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전에 폐하의 계책을 사용하였다면 북쪽 시골은 편안해졌을 것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그렇소. 이것은 진실로 이징의 실수인데, 짐은 곧 그것을 후회하였으나 말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은 훌륭한 모의를 막을까 걱정하였기 때문이오."

 李世勣曰︰「間者薛延陀入寇,〈謂十五年擊突厥思摩也。〉陛下欲發兵窮討,魏徵諫而止,使至今爲患。曏用陛下之策,北鄙安矣。」上曰︰「然。此誠徵之失;朕尋悔之而不欲言,恐塞良謀故也。」〈塞,悉則翻。〉

 

 황상이 스스로 고리를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저수량이 상소하였다.

 "천하를 비유하면 오히려 한 몸과 같은데, 두 개의 서울은 마음과 배이고 주와 현은 사지이며, 사이란 몸 밖에 있는 물건입니다. 고리가 지은 죄는 커서 토벌해야 하지만 다만 두세 명의 맹장에게 명령하여 4만~5만의 무리를 거느리게 하면 폐하의 위엄과 신령함에 의지하여 그것을 빼앗는 것은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上欲自征高麗,褚遂良上疏,〈上,時掌翻。〉以爲︰「天下譬猶一身︰兩京,心腹也;州縣,四支也;四夷,身外之物也。高麗罪大,誠當致討,但命二、三猛將將四五萬衆,〈將,卽亮翻;下名將同。〉仗陛下威靈,取之如反掌耳。

 

 지금 태자를 세로 세우셨는데 연세(17세)가 아직 어리고, 나머지 번병들은 폐하께서 아시는 바인데, 하루아침에 금성탕지를 버리시고 遼海(당시의 바다는 지금의 해수면보다 10m 정도 더 높아 천진 일대는 거의 바다였으므로 공격로가 정주 보정라인 뿐이었다.)의 험난한 곳을 넘어서 천하의 군주로서 가벼이 멀리까지 가시는 것이니, 모두 어리석은 신하인 저로서 아주 우려합니다."

 황상은 듣지 않았다.

 今太子新立,年尚幼穉,〈穉,直二翻。〉自餘藩屛,陛下所知,〈屛,必郢翻。〉一旦棄金湯之全,踰遼海之險,以天下之君,輕行遠舉,皆愚臣之所甚憂也。」上不聽。

 

 이때에 여러 신하들 대부분이 고리를 정벌하는 것을 간언하니, 황상이 말하였다.

 "여덟 요와 아홉 순이 있어도 겨울에는 파종을 할 수 없고, 들에 있는 지아비와 어린아이도 봄만 되면 파종을 하여 자라게 하는 것은 적절한 시기를 만난 연고이다. 무릇 하늘은 그 적절한 때를 가지고 있고 사람은 그 공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윗사람을 능욕하고 아랫사람을 학대하니, 백성들의 목을 늘여가지고 구해 주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바로 고리가 망할 수 있는 시기인데, 의논하는 것이 분분하지만 다만 이것을 보지 않을 뿐이다."

 時羣臣多諫征高麗者,上曰︰「八堯、九舜,不能冬種,野夫、童子,春種而生,得時故也。夫天有其時,人有其功。〈夫天,音扶。〉蓋蘇文陵上虐下,民延頸待救,此正高麗可亡之時也,議者紛紜,但不見此耳。」

 

 

 ⑦. 황상이 장차 고리를 침략하려고 하여, 가을, 7월 20일에 장작대감 염입덕 등에게 칙령을 내려 洪州·饒州·江州 세 주에 가서 배 400여 척을 만들어서 군량을 실어 놓게 하였다. 23일에 조서를 내려서 營州(帶方이자 滄州)도독 장검 등을 파견하여 幽州(今 天津 蓟县 樂浪)·營州(滄州) 두 도독의 군사와 거란·奚·말갈 족속을 인솔하고 요동을 공격하여 그 형세를 관찰하게 하였다.

 ⑦. 上將征高麗,秋,七月,辛卯,敕將作大監〈【章︰十二行本「監」作「匠」;乙十一行本同。】〉閻立德等詣洪、饒、江三州,造船四百艘以載軍糧。〈艘,蘇遭翻。〉甲午,下詔遣營州都督張儉等帥幽、營二部督兵及契丹、奚、靺鞨先擊遼東以觀其勢。〈帥,讀曰率。契,欺訖翻,又音喫。〉

 

 태상경 위정을 궤운사(병참담당)로 삼고, 민주시랑 최인사로 그를 돕게 하였으며,  하북의 여러 주에서부터 모두 위정의 통제를 받아서 편리한 방법으로 일을 좇도록 하라 하였다. 또 태복소경 소예에게 명령하여 하남 여러 주의 양식을 운반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하였다. 소예는 소우의 아들이다.

 以太常卿韋挺爲饋運使,〈使,疏吏翻。〉以民部侍郎崔仁師副之,自河北諸州皆受挺節度,聽以便宜從事。又命太僕少卿蕭銳運河南諸州糧入海。銳,瑀之子也。

 

 ⑬. 8월 25일에 홍려시에서 상주문을 올렸다.

 "고리의 막리지가 백금을 공물로 보내왔습니다."
 저수량이 말하였다.

 "막리지는 그 임금을 시해하고 九夷도 용납하지 않고, 지금 장차 그를 토벌하려고 하는데, 그들의 금을 받는다면 이는 郜鼎과 같은 것이니, 신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상이 이를 좇았다.

 ⑬. 乙未,鴻臚奏「高麗莫離支貢白金。」〈臚,陵如翻。〉褚遂良曰︰「莫離支弒其君,九夷所不容,〈《後漢書》︰東方有九夷,曰︰畎夷、干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白虎通》︰夷者,蹲也,言無禮儀。或云︰夷者,抵也,言仁而好生,抵地而出,故天性柔順,易以道禦。〉今將討之而納其金,此郜鼎之類也,〈《春秋》︰桓公取郜大鼎于宋,納于太廟,非禮也。郜,古到翻。〉臣謂不可受。」上從之。

 

 황상이 고리의 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고무를 섬겼고 관작을 가지고 있었다. 막리지가 시역을 하였는데, 너희들은 복수를 할 수 없었고, 지금에는 다시 그를 위하여 유세하여 큰 나라를 속이려 하니, 죄는 어느 것이 큰가?"

 모두 대리시에 우탁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上謂高麗使者曰︰「汝曹皆事高武,有官爵。莫離支弒逆,汝曹不能復讎,今更爲之遊說以欺大國,罪孰大焉!」悉以屬大理。〈爲,于僞翻。屬,之欲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