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槿堂體本(3/1)/雨水節末候草木萌動菜花李花風2日(陰1/18)戊申

solpee 2021. 3. 1. 16:01

槿堂體本(3/1)

 

 

 

☞.《勸學詩 讀書城南· 昌黎· 韓愈》

성남으로 공부하러 가는 아들에게

 

 木之就規矩,在梓匠輪輿. 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詩書勤乃有, 不勤腹空虛. 欲知學之力, 賢愚同一初.

由其不能學, 所入遂異閭. 兩家各生子, 提孩巧相如. 少長聚嬉戱. 不殊同隊魚, 年至十二三. 頭角稍相疏,

二十漸乖張. 淸溝映汚渠, 三十骨格成. 乃一龍一猪, 飛黃騰踏去. 不能顧蟾蜍. 一爲馬前卒, 鞭背生蟲蛆.

一爲公與相, 潭潭府中居. 問之何因爾, 學與不學歟. 金璧雖重寶, 費用難貯儲. 學問藏之身. 身在則有餘.

君子與小人, 不繫父母且. 起身自犁鋤, 不見三公後. 寒饑出無驢, 文章豈不貴.  經訓乃菑畬, 潢潦無根源.朝滿夕已除,

 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 行身陷不義. 況望多名譽, 時秋積雨霽.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

簡編可卷舒, 豈不旦夕念. 爲爾惜居諸. 恩義有相奪, 作詩勸躊躇.

 나무가 각재나 원형이 되는 것은 목수에게 달려 있고.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머리에 詩書가 들어서이다. 학문은 부지런하면 얻게 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텅 비게 된다. 학문의 힘을 알아보면, 어려서는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다르지 않다.  

 배우지 못한다면 마침내 들어가는 문이 다르기 때문이지, 예를 들면, 두 집에 각각 아들을 둔 경우에, 안아주고 어를 때는 묘하게도 서로 같았고.  좀 커서 함께 놀 때에도 떼 지어 노는 물고기 무리 같이 같았다. 열 두 서너 살이 되면 두각이 서로 달라지기 시작하고.

 스무 살이 되면 점점 벌어져서 맑은 물에 비치고, 더러운 물에 비치는 것 같다. 삼십이면 골격이 다 이루어져서, 마침내 한명은 이고, 다른 한명은 돼지다. 준마인 황비로 박차 오르며 두꺼비 같은 둔한 말은 돌아도 안 본다. 한 사람은 말 앞의 마부가 되어, 등에 채찍 맞아 아물 날이 없고

 한 사람은 재상이 되어 크고 넓은 관청에서 일한다. 왜 그럴까? 무슨 이유인가 ? 배우고 배우지 않은 차이 때문이다. 금과 구슬은 비록 귀중한 보배지만 써버리면 저축하기 어렵다. 학문은 몸에 지니게 되니 몸이 있는 한 남음이 있다.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부모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니니 귀한 벼슬에 있는 재상이, 쟁기와 호미로 농사짓는 곳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는가? 삼공의 후손이라도, 춥고 굶주려 외출 할 때 나귀도 없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문장이 어찌 귀하지 않은가? 경서의 가르침은 곧 전답과 같은 것이다. 물이 넘쳐나도, 장마 물은 근원이 없으니

 아침에 찼다가 저녁에 없어진다. 사람이 고금의 지식에 통달하지 못하면 마소에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불의에 빠지기 쉬운데 하물며 명예가 많기를 바라겠는가? 네가 떠나는 때는 가을이라 장마 비 개고, 새로 시원한 바람 교외에서 불어오니. 등잔불을 점차 가까이 하고, 책을 열고 읽어볼 만하다. 

 어찌 아침저녁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 너 자신을 위해서 세월을 아까와 하여라. 은혜와 의리는 둘 다 지키기 어려워 내가 시를 지어 너의 망설임을 권면하노라

 

이 시는 韓昌黎集 6권에 실려 있다.  符는 韓愈의 아들의 어릴 때 이름이다. 한유의 아들 符가 城南으로 공부하러 갈 때 이 시를 지어 주면서 勸勉하기를, ‘배우면 君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小人이 된다.‘  하였다. 이 시 가운데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의 두 시구는 시원한 가을철이 독서하기 좋은 계절임을 강조하는 시구로 여기서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로 燈火可親이란 말이 시작되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한 번쯤 들려줄만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