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紀22 則天后(624~705) 久視 元年》〈庚子, 700年〉 ⑨. 태후가 내사인 양문혜공 적인걸을 믿고 중히 여겼는데, 신하들은 따라가지 못하였고, 항상 그를 '國老[guólǎo]'라고 이르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적인걸은 대면하여서 조정의 일을 끄집어내어 다투기를 좋아하였지만 태후는 매번 뜻을 굽히고 그를 따랐다. 일찍이 태후가 좇아서 놀러 나갔는데, 바람을 만나서 적인걸의 건이 떨어지고 말이 놀라서 멈출 수 없자 태후가 태자에게 명하여 쫓아가서 말의 재갈을 잡게하고 그것을 잡아매게 하였다. 적인걸이 여러 차례 늙고 병이 들었다는 것으로 解骨하기를 빌었지만 태후가 허락하지 않았다. ⑨. 太后信重內史梁文惠公狄仁傑,羣臣莫及,常謂之國老而不名。仁傑好面引廷爭,〈好,呼到翻。爭,讀曰諍。〉太后每屈意從之。嘗從太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