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槿堂體本(8/8)/立秋節初候凉風至·雷風恒(陰7/5)甲辰

solpee 2024. 8. 8. 11:31

光復祈願天王刻石

일제 지배 물리치고자 하는 의병의 염원을 천왕봉 아래 바위에 새겨

자연석 바위에 전체 폭 4.2m, 높이 1.9m의 크기로 392여자가 새겨졌으며,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확인된 근대 이전의 바위글씨(194개 추정)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발 1900m대)

 

「서경」 「帝典」(「舜典」)에 “蠻夷가 中夏를 어지럽혔다.”라고 하였으니, 중하와 오랑캐가 사방을 경계로 한 것이 분명하고도 오래되었도다. 「춘추」의 大一統은 곧 陽을 부지하고 陰을 억제하며 王道를 존숭하고 覇道를 내치는 것으로 華夏를 숭상하고 夷狄을 물리치며 忠良을 顯揚하고 亂賊을 誅罰하는 것이 그것이니, 그 중하를 존숭하고 오랑캐를 물리친 것이 또한 늠름하지 않은가.

대개 皇極이 나라를 창업하고 王道를 행할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받들어 전하였는데, 총 얼마 동안의 紀年이 지난 뒤에는 성인이 태어나 천하를 책임지고서 임금과 스승이 되었으니, 이것이 伏羲·神農·黃帝가 三皇의 기년이 되며 모두 상고시대의 여러 해이다. 少昊氏·顓頊氏·帝嚳氏·唐堯氏·虞舜氏가 덕으로 서로 계승하였으니, 이것이 五帝의 기년이며 모두 몇 년이다.

夏后氏가 舜임금의 禪讓을 받았고, 商나라 湯임금이 禹임금의 夏나라를 계승하였으며, 周武王이 탕임금의 상나라를 정벌하였으니, 이것이 三王의 기년이며, 모두 몇 대 몇 년이다.

漢高祖가 주나라 천자가 쇠미해진 틈을 엿보고서 일어나 황제가 되어 몇 세대를 전했는데, 曹瞞이 有窮后羿와 王莽을 이어 잠시 신성한 기물을 훔쳤다. 그러나 蜀漢 昭烈皇帝가 의기를 떨쳐 잘 끝마쳤으니, 총 몇 년이다.

晉武帝가 炎興을 만나 나라를 일으켜 면면이 몇 년을 이어갔다. 五胡가 중화를 어지럽혀 宋나라·齊나라·梁나라·陳나라가 겨우 명맥과 지위를 보전하여 총 몇 년을 내려왔다. 隋나라가 통일하여 몇 년을 지배하였으며, 李淵 부자가 스스로 일어나 唐나라를 건국하여 여러 세대 몇 해를 전했다.

趙氏의 宋나라는 평안하게 다스려진 때가 또한 몇 년이다. 그런데 북방의 여러 오랑캐가 송나라를 침범하여 마침내 타무르(鐵木兒)를 만나 그에게 멸망 당하였다. 大明은 천명을 누려 몇 세대 몇 년을 전했으나 누르하치(努哈赤)에게 멸망 당하여 거의 명맥이 끊어졌다.

아! 천도가 그릇된 것인가? 옳은 것인가? 어찌하여 皇昊가 떨치지 못한단 말인가. 혹 永曆이 이어지려는 것일까? 그러나 사해가 텅 비었고, 온갖 오랑캐가 발호하고 있으니, 또한 어느 때나 안정될 것인가? 장차 6만 년을 전해 온 문화가 이에 禽獸의 지경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천지가 크게 닫혔다고 하는데, 다시 열리는 기미는 언제쯤일까? 오랑캐를 크게 통일하여 문명이 밝게 빛나고 넓게 퍼져가는 날을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울분과 원통함을 금치 못하고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며 이 南嶽(지리산) 天王峯에 올라 만세 天王의 대일통을 기록한다. 아! 슬프다.

崇禎 후 여섯 번째 갑자년(1924) 가을 7월 임자일 초하루 나라를 잃은 유민 孤竹 墨熙가 짓고, 花山(안동) 權倫이 쓰다.

帝典曰 蠻夷猾夏 二(夏)夷之防 明矣尙矣
 
春秋大一統者 乃以扶陽抑陰 尊王出伯(覇) 崇華夏攘夷狄 顯忠良誅亂賊者 此也 其尊崇炪(黜)攘 不亦凜二(凜)爾乎 盖皇極刱國(?) 王才拱傳 摠若干紀峕(時) 則聖人作興 任天下而爲君師 此包羲神農黃帝 爲三皇之紀 摠先世幾年 少昊顓頊帝嚳堯舜氏 以悳相承 此之五帝之紀 摠幾歲已 夏后受舜禪 商湯續禹服 周武王伐湯業 此三王之紀 摠幾世年 漢祖眦(?)周王之隙 仍起成帝 傳幾世 而曺(?)瞞綴(?)羿莽 暫(?)竊神器 然昭烈仗義 克終 總幾年 晉武値炎興 綿歷幾年 五胡亂華 宋齊梁陳 僅保名位 摠幾年 隋一 幾年 李淵父子 自發爲唐 傳幾世年 趙宋氏康紀 亦幾年焉 諸猲嚙宋 遂遇鐵木兒 蝕之焉 大明享天 傳幾世幾年 然努(?)哈(?)赤(?)蝕之 庶(?)幾絶
 
嗚乎 天道 非耶 是耶 奈皇昊不振何 或將永曆之連續耶 然四海洪洞 百蠻(?)跳梁 抑何峕(時)以定耶 且无乃六万來年 斯(?)入禽獸耶 曰今天地大閤閉 機栝在何(?) 必復見獯戎狄(?)夷(?)大統 以烘(?)燿瀁(?)溢(?)之日也 然自不勝憤怨 瀝血飮泣 陟此南嶽之天王 以寫(?)万世天王之統 嘻噫 悲夫
 
崇禎六甲子秋七月壬子朏 罔僕遺民
 
孤竹墨熙撰 花山權倫書


 

敬山 墨熙 遺墨

 

九曲棹歌    朱熹

武夷山上有仙灵,山下寒流曲曲清。欲识个中奇绝处,棹歌闲听两三声。一曲溪边上钓船,幔亭峰影蘸晴川。虹桥一断无消息,万壑千岩锁翠烟。二曲亭亭玉女峰,插花临水为谁容。道人不作阳台梦,兴入前山翠几重。三曲君看驾壑船,不知停棹几何年。桑田海水兮如许,泡沫风灯敢自怜。四曲东西两石岩,岩花垂露碧毵。金鸡叫罢无人见,月满空山水满潭。五曲山高云气深,长时烟雨暗平林。林间有客无人识,矣乃声中万古心。六曲苍屏绕碧湾,茆茨终日掩柴关。客来倚棹岩花落,猿鸟不惊春意闲。七曲移舟上碧滩,隐屏仙掌更回看。却怜昨夜峰头雨,添得飞泉几道寒。八曲风烟势欲开,鼓楼岩下水萦回。莫言此地无佳景,自是游人不上来。九曲将穷眼豁然,桑麻雨露见平川。渔郎更觅桃源路,除是人间别有天。

槿堂體本(8/8)

 

水仙子·夜雨——徐再思〔元代〕

구르는 낙엽소리에 가을은 깊어가고, 파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시름 또한 깊어지는데, 한밤에 꾸었던 고향꿈은 자정이 지나도록 떨쳐지지 않는구나. 흘러 내리는 촛농, 끝나지 못한 바둑돌,  이 여관에 머물러야 하는 신세에 한숨만 깊어지는데. 십년간의 씁쓸한 벼슬아치 생활과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에 오늘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一声梧叶一声秋,一点芭蕉一点愁,三更归梦三更后。落灯花,棋未收,叹新丰逆旅淹留。枕上十年事,江南二老忧,都到心头。

 

夜雨 ——白居易

 

이른 귀뚜라미는 울다 쉬다, 사위어 가는 등잔은 꺼졌다 켜졌다. 창밖엔 밤비 오는 줄 알겠다, 파초에 후두둑 소리 들리니.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早蛩啼复歇,残灯灭又明。隔窗知夜雨,芭蕉先有声。

 

내게 그리워하는 이가 있건만, 멀리 타향에 있네. 감회가 있으니, 마음 속 깊은 곳에 애간장 마르오. 고향이 멀어 갈 수 없을지언정, 매일 멀리서나마 바라보네. 마음 속 애간장 풀 길이 없어, 생각하지 않은 밤이 없다네. 등잔불 가물거리는 밤, 빈 방에 홀로 자려니. 가을 밤 유난히 길고, 비바람은 끝도 없구려. 두타법을 배우지 않고, 이 마음 어찌 잊을까.

我有所念人, 隔在遠遠鄕. 我有所感事, 結在深深腸. 鄕遠去不得, 無日不瞻望. 腸深解不得, 無夕不思量. 況此殘燈夜, 獨宿在空堂. 秋天殊未曉, 風雨正蒼蒼. 不學頭陀法, 前心安可忘.          

我有所念人,隔在远远乡。我有所感事,结在深深肠。乡远去不得,无日不瞻望。肠深解不得,无夕不思量。况此残灯夜,独宿在空堂。秋天殊未晓,风雨正苍苍。不学头陀法,前心安可忘。


九月三十日,雨声如别秋。无端满阶叶,共白几人头。点滴侵寒梦,萧骚著淡愁。渔歌听不唱,蓑湿棹回舟。《杜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