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槿堂體本(5/16)/立夏節末候王瓜生1日(陰4/16)己巳

solpee 2022. 5. 16. 12:47

槿堂體本(5/16)

☞. 滴水能把石穿透, 萬事功到自然成. 《美句》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모든 일은 공을 들이면 자연히 성공한다. 

☞. 天下無不散之宴席. 《格言》

 천하에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 守望相助.[ shǒu wàng xiāng zhù ]《孟子·滕文公上》

“出入相友,守望相助,疾病相扶持。”

도적이나 외침에 대비하여 서로 감시해 주고 비상시에는 상호 협조하여 대처하다.

 

☞. 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茅屋爲秋風所破歌· 杜甫

 어떻게 하면 아주 많은 집을 지어 세상의 가난한 선비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原文」 八月秋高風怒號, 卷我屋上三重茅. 茅飛渡江灑江郊, 高者掛罥長林梢. 下者飄轉沉塘㘭, 布衾多年冷似鐵. 嬌兒惡臥踏裡裂, 床床屋漏無干處. 雨脚如麻未斷絶, 自經喪亂少睡眠. 長夜沾濕何由徹, 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 何時眼前突兀見此屋, 吾廬獨破受凍死亦足. 늦은 팔월의 가을 불어 치는 바람에, 우리 집 지붕의 세 겹이엉이 날아갔네. 이엉은 강 건너 들녘으로 날아가 흩어졌는데,  높게는 우거진 숲의 가지 끝에 걸려 있고낮게는 깊숙한 못의 웅덩이에 내렸네. …이불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무쇠처럼 차갑고, 아이가 잠결에 걷어차 드러난 안쪽은 온전한 곳이 없네.  지붕이 새어 침상 주변으로 안 젖은 곳이 없건만  비는 그치지 않아 빗물이 줄처럼 떨어지네. 난을 겪은 뒤로 깊은 잠 이루지 못하는데 이 긴 밤을 축축이 젖은 채로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아주 방이  많은 집을 지어, 세상의 가난한 선비들을 기쁘게 하고 그 집은 비바람에도 산처럼 끄떡없을까. 嗚呼! 언제라도 내 눈앞에 우뚝 솟은 이런 집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집이 부서지고 내가 얼어 죽어도 좋겠네.

☞. 山北山南細路分, 松花含雨落繽紛. 道人汲井歸茅舍, 一帶靑煙染白雲.《題僧舍· 陶隱》

 오솔길이 남북으로 갈리는 곳, 송홧가루 머금은 비 어지러이 흩날리고. 도인이 물을 길어 띠집으로 드니, 흰 구름 물들이는 한 줄기 푸른 연기.

☞.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盡, 輕舟已過萬重山. 早發白帝城· 李白》

 아침 일찍 채운 감도는 백제성을 작별하고,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 왔네. 양쪽 강변에 원숭이 울음 그치지도 않았는데, 경쾌한 배는 벌써 만첩 산을 지나왔다네.

☞. 愼獨自得.[xìn dú zì dé].

☞. 九思[jiǔ sī] 《論語· 季氏 十章》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事難 見得思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겐 구사가 있으니, 볼 때는 밝아야 하고,  들을 때는 총명하여야 하며, 얼굴은 온화하고, 모습은 공손하며, 말은 진실성이 있어야 하며, 일에 임함에 공경심이 있어야 하며, 의심스러우면 묻고, 분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음을 만나면 반드시 의에 어긋남이 없는지를 고려한다.

 

樂此不疲:乐此不疲 [lè cǐ bù pí] 《后汉书·光武帝纪》

즐거워서 피곤하지 않다. 어떤 일을 특별히 좋아하여, 거기에 몰두하다.

乐此不疲(拼音:lè cǐ bù pí)是一个成语,最早出自于南朝·刘宋·范晔《后汉书·光武帝纪》。

 乐此不疲指对一事情产生兴趣,沉溺其中,不觉得疲倦、劳累。含褒义;在句中一般作谓语、定语。 

 

《后後汉漢书書·光武帝纪紀》

东東汉的光武皇帝刘劉秀,九岁歲的时時候死了父母,成了孤儿兒。他是在叔父家长長大的。他小时候办辦事很勤快,特别喜欢歡种種地的事情。

刘秀当當了东汉的皇帝也后也每天处處理朝政,十分用心。太子看到父亲親这這样樣操劳勞,就劝勸他说設:“您儞虽雖然有大禹、汤湯武那样的贤賢明,可是却没有皇帝、老子那样的养養性之福,希望您爱愛惜自己的身体體,保养好精神。”

刘秀说道:“我这样操劳,自己感到很快乐,不觉覺得疲劳啊!”

 동한 광무제인 유수는 아홉 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고 숙부의 집에서 자랐다. 어려서 일을 부지런히 하였고 밭일을 매우 좋아했다. 유수는 동한의 황제고 되고서도 매일 조정 일에 열심이었다. 태자는 부친이 이렇듯 수고하는 것을 보고 아뢰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비록 우왕과 탕왕의 현명함을 가지고 계시나 황제나 노자와 같이 그런 정신 수양의 복은 없으신 모양입니다. 바라건대, 건강을 소중히 하시고 옥체 보존하십시오."

 이에 유수는 "이렇게 수고는 하지만 스스로 기뻐하며 피곤한 것도 모르겠구나"라고 말하였다.

 ​南朝·刘宋·范晔《后汉书·光武帝纪》:“皇太子见帝勤劳不怠,承间谏曰:‘陛下有禹、汤之明,而失黄、老养性之福。愿颐养精神,优游自宁。’帝曰:‘我自乐此,不为疲也。’”

 汉光武帝刘秀是个勤奋刻苦的人,无论是在戎马倥偬的战争年代,还是在天下太平的和平时期,他都勤奋工作,努力办事,为大臣做出榜样。 

刘秀当了东汉皇帝后,工作更为紧张繁忙。由于多年战乱刚刚平息,国家大事百废待兴,天下百姓盼望安定,刘秀把工作重点转到发展生产、使人民安居乐业上,每天和大臣们忙于工作,绝不提战争的事。皇太子有次向他请教关于战争的问题,刘秀回答说:“有一次卫灵公问孔子如何攻战,孔子说,祭祀和礼仪方面的事,我经常听人说起,而率军作战的事,我却一点儿也不懂。你看,孔子是多么关心治国的事,你也应该这样,不要研究有关战争的事。” 

建立东汉以来,刘秀每天亲自处理朝政,工作十分刻苦:从天亮上朝问事,一直到天黑才回寝宫。有时他同朝中文武大臣讨论治国方针,制订政令制度,往往半夜才能睡觉。皇太子见刘秀忙于朝政,勤劳不怠,十分关心他的身体健康。有一次刘秀正在休息,皇太子大胆劝谏刘秀:“陛下,像您这样勤政为民,可说是有了大禹、汤武那样贤明的品格,却没有黄帝、老子那样的修身养性的长寿之道,希望您爱惜身体。您的身体健康。也是天下百姓之福。”刘秀听后哈哈大笑,说:“我自己乐于这样做,习惯了,一点儿也不觉得疲劳啊!”皇太子听了,深受感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