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晉의 分裂과 司馬光의 禮論/辛丑年小寒節末候雉始雊1日(陰12/13)戊辰

solpee 2022. 1. 15. 06:25

《周紀1 威烈王 23年》 (戊寅, -403)

 

 ①. 처음으로 진의 대부인 위사, 조적, 한건을 제후로 삼았다.

 ①. 初命晉大夫魏斯、趙籍、韓虔爲諸侯。〈此溫公書法所由始也。魏之先,畢公高後,與周同姓;其苗裔曰畢萬,始封於魏。至魏舒,始爲晉正卿;三世至斯。趙之先,造父後;至叔帶,始自周適晉;至趙夙,始封於耿。至趙盾,始爲晉正卿;六世至籍。韓之先,出於周武王;至韓武子事晉,封於韓原。至韓厥,爲晉正卿;六世至虔。三家者,世爲晉大夫,於周則陪臣也。周室旣衰,晉主夏盟,以尊王室,故命之爲伯。三卿竊晉之權,暴蔑其君,剖分其國,此王法所必誅也。威烈王不惟不能誅之,又命之爲諸侯,是崇獎奸名犯分之臣也。《通鑑》始於此,其所以謹名分歟!〉

 

 사마광이 평한다.

 臣光曰︰

 

 "천자의 직책 가운데 禮보다 큰 것이 없고, 禮 가운데는 分을 지키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分은 名보다 큰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禮라고 합니까? 기강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을 分이라고 합니까? 임금과 신하가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을 名이라고 합니까? 公, 侯, 卿, 大夫가 바로 이것입니다.

 臣聞天子之職莫大於禮,禮莫大於分,分莫大於名。〈分,扶問翻;下同。〉何謂禮?紀綱是也。何謂分?君、臣是也。何謂名?公、侯、卿、大夫是也。

 

 무릇, 사해는 넓고 억조나 되는 백성의 무리가 한 사람에게 통제를 받게 되니, 비록 절륜한 힘을 갖고 있고, 高世의 지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분주하게 복역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어찌 이를 위하여 禮로 기강을 잡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천자는 三公을 통괄(統)하고, 三公은 제후를 통솔(率)하고, 제후는 경과 대부를 통제(制)하며, 경, 대부는 士나 庶人을 다스리는(治) 것입니다.

 夫以四海之廣,〈夫以,音扶。〉兆民之衆,受制於一人,雖有絕倫之力,高世之智,莫〈【章︰十二行本「莫」下有「敢」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不奔走而服役者,豈非以禮爲之紀綱〈【章︰十二行本,二字互乙;乙十一行本同;孔本同。】〉哉!是故天子統三公,〈統,他綜翻。〉三公率諸侯,諸侯制卿大夫,卿大夫治士庶人。〈治,直之翻。〉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 다가가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의 뜻을 잇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아렛사람을 시키는 것은 마치 마음이 손발을 움직이고 뿌리와 줄기가 가지나 잎을 통제하는 것과 같으며, 아랫사람이 위사람을 섬기는 것은 마치 손발이 가슴과 배를 보위하고 가지나 잎이 뿌리와 줄기를 비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리하고 나서야 위와 아래가 서로서로 보호할 수 있고 나라와 집안도 잘 다스려져서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貴以臨賤,賤以承貴。上之使下猶心腹之運手足,根本之制支葉,下之事上猶手足之衞心腹,支葉之庇本根,然後能上下相保而國家治安。〈治,直吏翻。〉

 

 그러므로 천자의 직책 가운데 예보다 더 큰일이 없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문왕이 《周易》의 순서를 늘어놓을 때, 건괘와 곤괘를 책머리에 놓았습니다. 또 공자는 계사를 써서 말하였습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괘와 곤괘가 정해진 것이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펼쳐저 있는 것이 귀한 것과 천한 것의 자리이다."

 임금과 신하의 자리는 마치 하늘과 땅처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春秋》에서는 제후를 억누르고 왕실을 높혔고, 왕인 사람이 비록 쇠미하였더라도 제후의 위에 두었으니, 이것으로 보면 성인이 임금과 신하의 경우에 있어서 삼가고 또 삼갔습니다.

 故曰天子之職莫大於禮也。文王序《易》,以《乾》、《坤》爲首。孔子繫之曰︰「天尊地卑,乾坤定矣。卑高以陳,貴賤位矣。」〈繫,戶計翻。〉言君臣之位猶天地之不可易也。《春秋》抑諸侯,尊王〈【章︰十二行本「王」作「周」;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室,王人雖微,序於諸侯之上,以是見聖人於君臣之際未嘗不惓惓也。〈惓,逵員翻。《漢‧劉向傳》︰忠臣畎畝,猶不忘君惓惓之義也。惓惓,猶言勤勤也。〉

 

 걸이나 주같은 폭군이고, 탕이나 무왕처럼 어질며,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가며 그에게 하늘이 명령한 것이 아니라면, 임금과 신하의 분수로는 마땅히 절개를 지키며 땅에 엎드려져서 죽을 뿐입니다. 이러한 연고로 미자로 하여금 주를 대신하게 하였다면, 성탕은 계속하여 하늘에 배향되었을 것이고, 또한 계찰로 하여금 오의 군주를 하였더라면 태백은 혈식을 받게 되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차라리 나라를 망하게하더라도 하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예라는 커다란 절도를 문란하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는 분수보다 큰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非有桀、紂之暴,湯、武之仁,人歸之,天命之,君臣之分當守節伏死而已矣。是故以微子而代紂則成湯配天矣,〈《史記》︰商帝乙生三子︰長曰微子啓,次曰中衍,季曰紂。紂之母爲后。帝乙欲立啓爲太子,太史據法爭之曰︰「有妻之子,不可立妾之子。」乃立紂。紂卒以暴虐亡殷國。孔[鄭]玄義曰︰物之大者莫若於天;推父比天,與之相配,行孝之大,莫大於此;所謂「嚴父莫大於配天」也。又孔氏曰︰《禮記》稱萬物本乎天,人本乎祖。俱爲其本,可以相配,故王者皆以祖配天。《諡法》︰除殘去虐曰湯。然諡法起於周;蓋殷人先有此號,周人遂引以爲諡法。分,扶問翻。長,知兩翻。卒,子恤翻。〉以季札而君吳則太伯血食矣,〈吳王壽夢有子四人︰長曰諸樊,次曰餘祭,次曰餘昩,次曰季札。季札賢,壽夢欲立之,季札讓不可,於是立諸樊。諸樊卒,以授餘祭,欲兄弟以次相傳,必致國於季札;季札終讓而逃之。其後諸樊之子光與餘昩之子僚爭國,至於夫差,吳遂以亡。宗廟之祭用牲,故曰血食。太伯,吳立國之君。范甯曰︰太者,善大之稱;伯者,長也。周太王之元子,故曰太伯。陸德明曰︰壽夢,莫公翻。餘祭,側介翻。餘昩,音末。〉然二子寧亡國而不爲者,誠以禮之大節不可亂也。故曰禮莫大於分也。

 

 무릇, 예란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며,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의 차례를 지어주는 것이고, 많은 사물을 재단하고, 여러 가지의 일을 통제하는 것이니, 이름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고, 구체적인 그릇이 아니면 형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데, 이름으로 이를 명하는 것이며 그릇으로 이를 구별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 위와 아래는 찬란한 질서가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예의 커다란 원칙입니다.

 夫禮,辨貴賤,序親疏,裁羣物,制庶事,非名不著,非器不形;名以命之,器以別之,〈夫,音扶。別,彼列翻。〉然後上下粲然有倫,此禮之大經也

 

 이름과 그릇이 이미 없어졌다면 예는 어디에서 혼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위의 중숙우해는 위에 공로를 세우고서 읍을 사양하고 번영(繁纓: 제후만이 다는 말장식)을 달라고 청하였었는데, 공자는 '그에게 더 많은 읍을 주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예가 아니기 때문에)하였습니다. 오직 그릇과 이름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수 없고, 임금이 이것을 관장하는 것이며, 정치가 망해 버리면 국가도 이를 좇는 것입니다.

 名器旣亡,則禮安得獨在哉!昔仲叔于奚有功於衞,辭邑而請繁纓,孔子以爲不如多與之邑。惟名與器,不可以假人,君之所司也;政亡則國家從之。〈《左傳》︰衞孫桓子帥師與齊師戰于新築,衞師敗績。新築人仲叔于奚救孫桓子,桓子是以免。旣而衞人賞之邑,辭;請曲縣、繁纓以朝,許之。孔子聞之曰︰「不如多與之邑,惟名與器不可以假人。」繁纓,馬飾也。繁,馬鬣上飾;纓,馬膺前飾。《晉志註》曰︰纓在馬膺如索帬。繁,音蒲官翻。纓,伊盈翻。索,昔各翻。〉

 

 위 영공이 공자를 기다려서 정치를 하게 하니, 공자는 먼저 이름을 올바르게 붙이려고 하였으니, 이름이 올바르게 붙여지지 아니하면 백성들이 백성들이 손발을 놀릴 곳을 없애는 것입니다. 무릇 번영은 사소한 물건이었으나 공자는 이를 아꼈으며, 정명은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공자는 이런 일을 우선으로 하려고 하였으니, 이름과 그릇이 이미 혼란에 빠지면 위아래가 서로 본존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衞君待孔子而爲政,孔子欲先正名,以爲名不正則民無所措手足。〈見《論語》。〉夫繁纓,小物也,而孔子惜之;正名,細務也,而孔子先之︰〈先,悉薦翻。〉誠以名器旣亂則上下無以相保故也。

 

 무릇 일은 아주 미미한 것에서 생겨나서 드러나 완성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성인께서 먼 장래를 염려하셨고, 그러므로 그 미미한 것을 삼가면서 이를 다스린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가까운 것만을 알고 있으니,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이 드러난 것을 기다려서 이를 구제하는데, 미미한 것을 잘 다스리면 쓰는 힘은 적고 공로는 많게 되지만, 드러난 것은 구하면 힘을 다하여도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夫事未有不生於微而成於著,聖人之慮遠,故能謹其微而治之,〈治,直之翻;下同。〉衆人之識近,故必待其著而後救之;治其微則用力寡而功多,救其著則竭力而不能及也。

 

《周易》에서 '서리가 밟히면 단단한 얼음이 어는 시절이 올 것이다.'라고하였습니다. 또한 《書經》에서는 '하루 이틀에도 만 가지의 실마리가 생기는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수는 이름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易》曰︰「履霜堅冰至,」〈《坤》初六《爻辭》。《象》曰︰「履霜堅冰,陰始凝也。馴致其道,至堅冰也。」〉《書》曰︰「一日二日萬幾,」〈《皋陶謨》之辭。孔安國《註》曰︰幾,微也。言當戒懼萬事之微。幾,居依翻。〉謂此類也。故曰分莫大於名也。〈分,扶問翻。〉

 

 아! 여왕과 유왕이 덕을 잃자, 주의 법도는 날로 쇠퇴하여졌고 기강도 흐트러지고 무너져서 아래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제후는 오로지 정벌만 하고, 대부들이 정권을 멋대로 휘두르니, 예의 큰 체계는 열에 7,8은 없어졌지만 그러나, 문왕과 무왕에게 지내는 제사만은 면면히 이어진 것은 대개 주의 자손들이 그 이름과 직분을 지킬 수 있었던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이렇게 말할까요. 옛날에 진의 문공이 왕실에 큰 공로를 세우고 양왕에게 수장(隧葬: 관을 수직으로 내리지 않고 비스듬히 깎아서 관을 옮기는 장례)을 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지만 양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말하였습니다.

 嗚呼!幽、厲失德,周道日衰,綱紀散壞,下陵上替,諸侯專征,〈謂齊桓公、晉文公至悼公以及楚莊王、吳夫差之類。〉大夫擅政,〈謂晉六卿、魯三家、齊田氏之類。〉禮之大體什喪七八矣,〈喪,息浪翻。〉然文、武之祀猶緜緜相屬者,〈屬,聯屬也,音之欲翻。凡聯屬之屬皆同音。〉蓋以周之子孫尚能守其名分故也。何以言之?昔晉文公有大功於王室,請隧於襄王,襄王不許,曰︰

 

 "왕의 법도요. 아직 대신할 덕을 가진 사람도 있지 않은데, 두 명의 왕이 있게 하는 것이니 또한 그대 숙부님도 싫어하는 일이오. 그렇지 않다면 숙부님께서는 땅을 가지고 있으니 수장할 것이지 또 왜 부탁을 하시오?"

 이에 문공이 두려워하여 감히 어기지 못하였습니다.

 「王章也。未有代德而有二王,亦叔父之所惡也。不然,叔父有地而隧,又何請焉!」文公於是懼而不敢違。〈太叔帶之難,襄王出居于氾。晉文公帥師納王,殺太叔帶。旣定襄王于郟,王勞之以地,辭;請隧焉,王弗許云云。杜預曰︰闕地通路曰隧,此乃王者葬禮也。諸侯皆縣柩而下。王章者,章顯王者異於諸侯。古者天子謂同姓諸侯爲伯父、叔父。隧,音遂。惡,烏路翻。難,乃旦翻。氾,音汎。勞,力到翻。闕,其月翻。縣,音玄。柩,其久翻。〉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주의 땅은 조(曹), 등(滕)보다 크지 않고, 주의 백성은 주(邾), 거(莒)나라보다 많지 않았지만, 그러나 수백 년을 거쳐서 천하의 종주국이었고, 비록 진(晉)、초(楚)、제(齊)、진(秦)의 강성함으로도 감히 압박을 가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다만 명칭과 직분을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是故以周之地則不大於曹、滕,以周之民則不衆於邾、莒,〈曹、滕、邾、莒,春秋時小國。莒,居許翻。〉然歷數百年,宗主天下,雖以晉、楚、齊、秦之強不敢加者,何哉?徒以名分尚存故也

 

 魯에서의 계씨, 제에서의 전상, 초에서의 백공, 진에서의 지백은 그 세력으로는 모두 충분히 군주를 쫓아내고 스스로 될 수 있었지만 그러나 끝내 감히 그렇게 아니했던 것이 어찌 그들의 힘이 부족했거나 마음속으로 차마 못해서였겠습니까? 마침내 명분을 간사히 하고 직분을 범하면 천하가 함께 그들을 주살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至於季氏之於魯,田常之於齊,白公之於楚,智伯之於晉,〈魯大夫季氏,自季友以來,世執魯國之政。季平子逐昭公,季康子逐哀公,然終身北面,不敢篡國。田常,卽陳恆。田氏本陳氏;溫公避國諱,改「恆」曰「常」。陳成子得齊國之政,殺闞止,弑簡公,而亦不敢自立。《史記‧世家》以陳敬仲完爲田敬仲完,陳成子恆爲田常,故《通鑑》因以爲據。白公勝殺楚令尹子西、司馬子期,石乞曰︰「焚庫弑王,不然不濟!」白公曰︰「弑王不祥,焚庫無聚。」智伯當晉之衰,專其國政,侵伐鄰國,於晉大夫爲最強;攻晉出公,出公道死。智伯欲幷晉而不敢,乃奉哀公驕立之。〉其勢皆足以逐君而自爲,然而卒不敢者,〈卒,子恤翻,終也。〉豈其力不足而心不忍哉,乃畏奸名犯分而天下共誅之也。〈奸,居寒翻,亦犯也。分,扶問翻。〉

 

 지금 진의 대부들이 그의 임금을 포악하게 명시하였으며, 진국을 나누었는데, 천자는 이미 토벌할 수도 없었거니와 그들을 총애하는 순서를 주어서 제후의 열에 늘어서게 하였으니, 이는 구구한 명칭과 분수는 다시 지켜질 수 없고, 아울러 이를 포기한 것입니다. 선왕들이 남겨 놓은 예법은 여기에서 없어졌습니다.

 今晉大夫暴蔑其君,剖分晉國,〈《史記‧六國年表》︰定王十六年,趙、魏、韓滅智伯,遂三分晉國。〉天子旣不能討,又寵秩之,使列於諸侯,是區區之名分復不能守而幷棄之也。〈陸德明《經典釋文》︰凡復字,其義訓又者,並音扶又翻。〉先王之禮於斯盡矣!

 

 어떤 사람은 '당시 주 왕실은 미약했고, 삼진은 강성하여 비록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들 그렇게 되었겠는가?' 라고 여길 것이지만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삼진이 비록 강성하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천하가 함께 주살할 것을 돌아보지도 않고, 의를 범하고 예를 어기려 했다면 천자에게 요청하지 않고 자립하였을 것입니다. 천자에게 요청하지 않고 자립하였다면 못된 패역한 신하가 되는 것이고, 천하에는 제의 환공이나 진의 문공 같은 군주들이 있어서 반드시 예의를 받들고 이들을 정벌했을 것입니다.

 或者以爲當是之時,周室微弱,三晉強盛,〈三家分晉國,時因謂之「三晉」,猶後之三秦、三齊也。〉雖欲勿許,其可得乎!是大不然。夫三晉雖強,苟不顧天下之誅而犯義侵禮,則不請於天子而自立矣。不請於天子而自立,則爲悖逆之臣,〈夫,音扶。悖,蒲內翻,又蒲沒翻。〉天下苟有桓、文之君,必奉禮義而征之。

 

 지금 천자에게 요청을 하고, 천자가 이를 허락하였으니, 이는 천자의 명령을 받아서 제후가 된 것인데, 누가 이를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삼진이 제후들의 서열에 서게 된 것은 삼진이 예를 깨뜨린 것이 아니고 바로 천자가 스스로 이를 깨뜨린 것입니다.

 今請於天子而天子許之,是受天子之命而爲諸侯也,誰得而討之!故三晉之列於諸侯,非三晉之壞禮,乃天子自壞之也。〈壞,音怪,人毀之也。〉

 

 아! 임금과 신하의 예가 이미 무너졌으니 천하에서는 지혜와 힘으로 서로 크고 자라게 하였고, 드디어 성현들의 후예들로 제후가 된 자들로 하여금 사직이 무너지지 않은 것이 없게 되었으며, 살아 있는 백성들이 부셔져 거의 다 없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합니까?

 烏呼!君臣之禮旣壞矣,〈此壞,其義爲成壞之壞,讀如字。〉則天下以智力相雄長,〈長,知兩翻。〉遂使聖賢之後爲諸侯者,社稷無不泯絕,〈謂齊、宋亡於田氏,魯、陳、越亡於楚,鄭亡於韓也。泯,彌忍翻,盡也,又彌鄰翻。毛晃曰︰沒也,滅也。〉生民之類糜滅幾盡,〈《說文》曰︰糜,糝也;取糜爛之義,音忙皮翻。幾,居依翻,又渠希翻,近也。〉豈不哀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