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契丹의 南下. 2(大房岭之战)/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벌레 집에 문을 봉한다)1日(陰8/22)乙卯

solpee 2021. 9. 27. 18:56

《後梁紀5 均王 貞明 3年》〈丁丑, 917年〉

 

 ②. 진왕 이존욱은 이사원과 염보의 군사가 적어서 거란을 대적하기에 충분하지 아니하여, 7월 24일에 다시 이존심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에게 증원하게 하였다.

 ②. 晉王以李嗣源、閻寶兵少,未足以敵契丹,辛未,更命李存審將兵益之。

 

 ⑤. 거란이 유주를 포위하고서 또 200일이 되자, 성 안에서는 위태롭고 곤궁해졌다. 이사원· 염보· 이존심의 보병과 기병 7만이 역주에서 만났는데, 이존심이 말하였다.

 "오랑캐는 많고 우리는 적으며 오랑캐는 대부분 기병이고 우리는 대부분 보병이니, 만약에 평원에서 서로 만나게 되어 오랑캐가 1만의 기병을 데리고 우리의 진영을 짓밟는다면 우리는 남을 무리가 없을 것이오."

 ⑤. 契丹圍幽州且二百日,〈是年三月,契丹圍幽州,事始見上卷。〉城中危困。李嗣源、閻寶、李存審步騎七萬會於易州,〈閻寶班在李存審之下,而先書寶者,嗣源與寶先進屯淶水,而存審繼之也。 匈奴須知:淶水西至易州四十里,易州東北至幽州二百二十里。〉存審曰:「虜眾吾寡,虜多騎,吾多步,若平原相遇,虜以萬騎蹂吾陳,吾無遺類矣。」〈蹂,人 九翻,又徐又翻。陳,讀曰陣。〉

 

 이사원이 말하였다.

 "오랑캐에게는 치중이 없고, 우리는 행군하면서 반드시 양식을 싣고 스스로 따르도록 해야 하는데, 만약 평원에서 서로 만나게 도면 오랑캐가 우리의 양식을 노략질할 것이므로 우리는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오. 산속에서부터 몰래 행군하여 유주로 가서 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합세하는 것만 같지 못하며, 만약 중도에서 오랑캐를 만나면 험요한 곳을 점거하고 그들을 방어합시다."

 嗣源曰:「虜無輜重,〈重,直用翻。〉吾行必載糧食自隨,若平原相相遇,虜抄吾糧,〈抄,楚交翻。〉吾不戰自潰矣。不若自 山中潛行趣幽州,〈趣,七喻翻。〉與城中合勢,若中道遇虜,則據險拒之。」

 

 8월 17일에 역주에서 북쪽으로 행군하여 23일에 대방령(今良鄕鎭)을 넘어서 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이사원은 양자 이종가와 더불어 3천의 기병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었는데, 유주(今 涿州)와 60리 떨어진 곳에서 거란과 더불어 마주치니 거란이 놀라서 물러나자 진의 군사들이 좌우 날개를 펴서 그들을 쫓았다.

 甲午,自易州北行,庚子,踰大房嶺,〈水經註:聖水出上谷郡西南谷,東南流逕大防嶺。又曰:良鄉縣西北有大防山,防水出其南。按易州即漢上谷郡地。范成大北使錄:自良鄉六十五里至幽州城外。此又驛路也。〉循澗而東。嗣源與養子從珂將三千騎為前鋒,距幽州六十里,與契丹遇,契丹驚卻,晉兵翼而隨之。〈張左右翼而踵其後。〉

 

 거란은 산 위로 행군하고 진의 군사는 계곡 아래로 행군하였으니, 매 번 계곡의 입구에 도착할 적마다 거란이 번번이 그들을 맞이하였는데도 이사원 부자는 힘써 싸워서 마침내 전진할 수가 있었다.

 산 입구에 도착하자 거란이 1만 여의 기병을 데리고 그들의 앞을 차단하니 장사들이 놀라서 얼굴색이 변하였지만 이사원이 10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먼저 나아가 투구를 벗고 채찍을 휘두르며 호어로 거란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우리의 강역을 침범하였으므로 진왕께서는 나에게 명령하여 1백만 병력을 거느리고 곧바로 서루(今 내몽고 巴林左旗)에 이르러 너희 종족을 멸절시키라고 하셨다."

 이어서 말에 올라 분발하여 몽둥이를 휘두르며 세 번 그들의 진영에 들어가서 거란의 추장 한 사람의 목을 베었다.

 契丹行山上,晉兵行澗下,每至谷口,契丹輒邀之,嗣源父子力戰,乃得進。至山口,契丹以萬餘騎遮其前,將士失色;嗣源以百餘騎先進,免冑揚鞭,胡語謂契丹曰:「汝無故犯我疆埸,晉王命我將百萬眾宜抵西樓,滅汝種族!〈此史家以華言譯胡語而筆之於史也。胡嶠入遼記曰:自幽州西北入居庸關,行幾一月乃至上京,所謂西樓也。西樓有邑屋市肆。歐史四夷附錄曰:契丹好鬼而貴日,每月朔旦東向而拜日;其大會聚、視國事,皆以東向為尊,西樓門屋皆東向。薛史曰:西樓距幽州三千里。埸,音亦。種,章勇翻。〉因躍馬奮檛,三入其陳,斬契丹酋長一人。〈檛,側瓜翻。陳,讀曰陣;下同。酋,慈秋翻。長,知兩翻。〉

 

 후군도 일제히 전진하자 거란의 군사가 물러났고, 진의 군사들이 비로소 나올 수 있었다.

 이존심이 보병에게 명령하여 나무를 베어 녹각을 만들게 하고 사람들은 한 가지씩을 가지고 가다가 머무르게 하여 바로 녹채를 만들었다. 거란의 기병이 녹채를 돌면서 지나가면 녹채 안에서 1만의 쇠뇌가 그들에게 발사되니 나는 화살이 해를 가렸고 거란 병사들과 군마 가운데 죽거나 부상을 당한 것이 길을 메웠다. 곧 유주에 도착하려는데 거란 병사들이 진영을 벌리고 그들을 기다렸다.

 後軍齊進,契丹兵卻,晉兵始得出。李存命步兵伐木為鹿角,人持一枝,止則成寨。契丹騎環寨而過,寨中發寓弩射之,流矢蔽日,契丹人馬死傷塞路。〈環,音患。射,而亦翻。塞,悉則翻。〉將至幽州,契丹列陳待之。

 

 이존심이 보병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후방에 진을 치고 움직이지 말도록 경계하게 한 다음 먼저 파리한 병사들로 하여금 잡목을 끌고 풀을 태우면서 나아가게 하니, 연기와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서 거란에서는 그들이 많고 적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存審命步兵陳於其後,〈陳於契丹陳後,將夾擊之也。一曰以騎兵前進,令步兵陳於其後。〉戒勿動,先令羸兵曳柴然草而進,煙塵蔽天,契丹莫測其多少;

 

 이어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맞붙어 싸우게 되자, 이존심은 곧 후방에 진을 치고 잇던 군사들을 재촉하여 그를 타고 일어나게 하니 거란이 대패하였다. 그의 무리를 수습하여 북산에서부터 떠나가자 버린 수레와 장막, 갑옷과 병장기 그리고 양들과 말이 들판에 가득하엿으며 진의 군사가 그들을 뒤쫒아서 포로로 잡거나 목을 벤 사람이 1만으로 헤아렸다.

 24일에 이사원 등이 유주로 들어가니 주덕위가 그들을 보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因鼓譟合戰,孝審乃趣後陳起乘之,〈羸,倫為翻。趣,讀曰促。〉契丹大敗,席卷其眾自北山去,〈取古北口路而去。卷,讀曰捲。〉委棄車帳鎧仗羊馬滿野,晉兵追之,俘斬萬計。辛丑,嗣源等入幽州,周德威見之,握手流涕。〈為虜所困,得救而解,喜極涕流。〉

 

 거란이 노문진을 유주유후로 삼고, 그 후에 또 노룡절도사로 삼았는데, 노문진이 항상 평주에 거주하면서 해의 기병을 인솔하고 해마다 북쪽 변방에 들어와서 이민들을 죽이고 노략질 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분명하게 거란이 궤멸되어 도주하였는데 어떻게 유주전투에서는 패배한 거란이 도리어 노문진을 유후로 삼았을까? 분명 대패하여 도주한 것은 진이었고 거란은 대승한 후에 유주를 점령 복속시킨 것이었다)

 契丹以盧文進為幽州留後,其後又以為盧龍節度使,文進常居平州,帥奚騎歲入北邊,殺掠吏民。〈帥,讀曰率;下同。〉

 

 진인들이 와교(今河北省雄县城西南)에서 양식을 운반하여 계성으로 수송하였는데, 비록 군사들이 이들을 지원한다 하여도 약탈당하는 일을 면하지 못하였다.

 거란이 매 번 들어와서 노략질하면 노문진이 한족 출신 사졸들을 인솔하여 향도로 삼으니, 노룡에 순속하는 여러 주에서는 이때문에 쇠잔하고 퇴폐하였다.

 晉入自瓦橋運糧輸薊城,〈九域志:瓦橋北至涿州一百二十里,涿州北至薊城一百二十里。薊,音計。〉雖以兵援之,不免抄掠。契丹每入寇,則文進帥漢率為鄉導,〈鄉,讀曰嚮。〉盧龍巡屬諸州為之殘弊。〈盧龍諸州,自唐中世以來自為一域,外而捍禦兩蕃,內而連兵河朔,其力常有餘。及并於晉,則歲遣糧援繼之而不足,此其故何也﹖保有一隅者其心力專,廣土眾民其心力有所不及也。詩云:無田甫田,維莠驕驕。信矣!為于偽翻;不為承、誓為、為吾、請為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