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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亡, 그리고 殺人魔 朱全忠의 後梁 建國/白露節仲候玄鳥歸4日(陰8/10)丁卯

solpee 2021. 9. 15. 14:39

《後梁紀1 太祖 開平 元年》〈丁卯, 907年〉

 

 ③. 애초에, 양왕이 황하 이북의 여러 번진을 모두 복종시켰으나 오직 幽와 滄만이 아직 점령하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대대적으로 거병하여 그들을 토벌하여 여러 번진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미 그렇게 하고 났는데 노주 안에서 배반을 하였으므로 왕이 군영에 불을 지르고 돌아오니, 위엄과 명망이 크게 저상되었다. 안팎의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마음이 떠날까 두려워하여 신속히 선양을 받고서 이를 진압하려고 하였다.

 ③. 初,梁王以河北諸鎮皆服,唯幽、滄未下,故大舉伐之,欲以堅諸鎮之心。既而潞州內叛,王燒營而還,〈事見上卷天祐三年。還,從宣翻,又如字。〉威望大沮。〈沮,在呂翻。〉死中外因此離心,欲速受禪以鎮之。

 

 정월, 10일에 위주에 입관하였는데 병이 나서 부중에 누워 있었으며, 나소위는 왕이 그들을 습격할 것을 두려워하여 들어가서 왕을 알현하고 말하였다.

 "지금 사방에서 군사를 거론하면서 왕을 걱정거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당실을 익대(翼戴: 임금을 도와 추대하는 것)하는 것으로 명분을 삼고 있으니, 왕께서 일찍이 당을 없애어서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을 끊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왕은 비록 허락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으로 그에게 덕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신속히 귀환하였다.

 25일에 대량에 도착하였다.

 丁亥,王入館于魏,〈館,古玩翻。〉有疾,臥府中;〈【章:十二行本「中」下有「魏博節度使」五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羅紹威死王襲之,入見王曰:「今四方稱兵為王患者,皆以,翼戴唐室為名,王不如早滅唐以絕人望。」王雖不許而心德之,乃亟歸。〈丞,紀力翻。〉壬寅,至大梁。

 

 27일에 당의 소선제는 어사대부 설이구를 파견하여 대량에 가게 하여 왕을 위로하게 한, 설이구가 신하의 에를 가지고 알현하기를 요청하였고, 왕이 그에게 읍하고 계단에 오르게 하자 설이구가 말하였다.

 "전하의 공덕이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사명이 복을 고친 것이니, 황제께서는 바야흐로 순· 우의 일을 실해아실 것인데 신이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마침내 뜰에서 북면을 하고 배례하고 춤을 추니 왕이 몸을 옆으로 돌려 이를 피하였다.

 甲辰,唐昭宣帝遣御史大夫薜貽矩至大梁勞王,〈勞,力到翻。〉貽矩請以臣禮見,〈見,賢遍翻。〉王揖之升階,貽矩曰:「殿下功德在人,三靈改卜,〈三靈,天、地、人之靈也。言天、地、人之心皆已去唐室,改卜君而命之。〉皇帝方行舜、禹之事,臣穴敢違!」乃北面拜舞於庭。王側身避之。

 

 설이구가 돌아와서 황제에게 말하였다.

 "원수는 선양을 받을 의향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마침내 조서를 내리고 2월에 양에 제위를 선양하였다. 또 재상을 파견하여 편지를 가지고 양왕을 설득하게 하였으나 왕이 사양하였다.

 貽矩還,言於帝曰:「元帥有受禪之意矣!」帝乃下詔,〈帝,皆謂唐昭宣帝。元帥,謂梁王。〉以二月禪位于梁。又遣宰相以書諭王;王辭。

 

 ⑤. 2월에 당의 대신들이 소선제의 손위를 함께 주청하였다. 5일에 재상에게 조서를 내려서 백관들을 인솔하고 원수부에 가서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고하게 하였고, 왕은 사자를 파견하여 이를 물리쳤다. 이에 조정의 신하들과 번진, 그리고 호남과 영남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편지를 올려 자리에 나갈 것을 권고하는 사람들이 계속 줄을 이었다.

 ⑤. 二月,唐大臣共奏請昭宣帝遜位。壬子,詔宰相帥百官詣元帥府勸進;〈梁王建元帥府于大梁。相帥,讀曰率。〉王遣使郤之。於是朝臣、藩鎮乃至湖南、嶺南上牋勸進者相繼。〈朝,直遙翻。上,時掌翻。〉

 

 ⑦. 13일에 당의 소선제가 설이구에게 조서를 내려서 다시 대량에 가서 선양할 뜻을 가지고 설득하게 하고, 또 예부상서 소순에게 조서를 내려서 백관들의 편지를 싸가지고서 대량에 가게 하였다.

 ⑦. 庚寅,唐昭宣帝詔薜貽矩再詣大梁諭禪位之意,又詔禮部尚書蘇循齎百官牋詣大梁。

 

 ⑨. 27일에 당의 소선제가 어찰을 내려 양에 황제의 자리를 선양하였다.(이로써 당왕조는 566년에 고조 이연이 창립하고 태종 이세민과 고종 무측천 현종 중반까지 통일된 왕조였고 이후로는 번진들에 억눌려 황제다운 황제 없이 지내다가 소선제가 908년에 후량 주전충에게 강탈당하고 멸족당했다. 이때부터 金· 宋으로 이분 될 때까지 통일된 왕조 아닌 5대 10국으로 분열되었다.)

 ⑨. 甲辰,唐昭宣帝降御札禪位于梁。〈考異曰:實錄、薜居正五代史、唐餘錄皆云四月,唐帝御札敕宰臣張文蔚等備法駕奉迎梁朝,而無日。五代通錄云四月丁未。丁未,四月一日也。舊唐書云三月甲辰。甲辰,三月二十七日也。唐年補錄:三月二十七日甲子降此御札,四月戊辰朱全忠即位。尤為差誤。按此年三月戊寅朔,四月丁未朔。今從舊唐書。〉

 

 섭중서령(임시 중서령) 장분울을 책례사(책봉특사)로 삼고 예부상서 소순을 그의 부사로 삼았다. 섭시중 양섭을 압전국보사로 삼고, 한림학사 장책을 그의 부사로 하였다.

 어사대부 설이구를 압금보사로 삼고, 상서좌승 조광봉을 그의 부사로 하였으며, 백관을 인솔하고 법가를 준비하여 대량에 가게 하였다.

 以攝中書令張文蔚為冊禮使,禮部尚書蘇循副之;〈冊禮使,奉傳禪冊寶,押金吾使衛、太常鹵蒪等。〉攝侍中楊涉為押傳國寶使,〈唐有傳國八寶。武后惡璽字,改為寶,其受命傳國八寶並改雕寶字。〉翰林學士張策副之;御史大夫薜貽矩為押金寶使,〈唐六典曰:天子八寶,其用以玉,其封以泥。皇后及太子之信曰寶,其用以金。〉尚書左丞趙光逄副之;帥百官備法駕詣大梁。〈唐六典:大駕備五輅,五輅皆有副車;又有指南車、記里鼓車、白鷺車、鷥旗車、辟惡車、皮軒車、耕根車、安車、四望車、羊車、黃鉞車、豹尾車,屬車一十有二。若法駕則減五副輅,白鷺、辟惡、安車、四望車,四分屬車之一。帥,讀曰率。〉

 

 양섭의 아들인 직사관 양응식이 양섭에게 말하였다.

 "대인ㄲ서는 당의 재상이 되었는데 국가가 이에 이르렀으니, 이를 허물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손수 천자의 새수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주니 비록 부귀를 보존한다고 한들 어찌 1천 년이나 가겠습니까? 어찌 그것을 사양하지 않습니까?"

 양섭이 크게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네가 우리 집안을 멸족시키겠구나!"

 얼굴색이 그 일로 인하여 편안하지 못한 지가 며칠이 되었다.

 楊涉子宜史館凝式〈貞觀三年,置史館於門下省,以他官兼領,或卑位有才者亦以直館稱,以宰相麘脩撰。天寶後,怹官兼史職者曰史館脩撰,初入為直館。元和元年,宰臣裴垍建議,登朝領史職者為脩撰,以官高人判館事,未登朝者為直館。〉言於涉曰:「大人為唐宰相,而國家至此,不可謂之無過。況手持天子璽綬與人,雖保富貴,柰千載何!盍辭之!」〈璽,斯氏翻。緩,音受。載,子亥翻。考異曰:陶岳五代史補曰:「凝式恐事泄,即日佯狂,時謂之『風子』。」按周世宗實錄凝式本傳,仕梁未嘗有疾;唐同光初知制誥,始以心疾罷。明宗時及清泰帝末,俱以心恙罷官。天福初致仕在洛,有「風子」之號。非梁初佯狂也。今不取。〉涉大駭曰:「汝滅吾族!」神色為之不寧者數日。〈楊涉之相也,知必為凝式之累;今乃駭凝式之言,何邪?為,于偽翻。〉

 

 장책은 돈황 사람이다. 조광봉은 조은의 아들이다.

 策,敦煌人。〈敦,徒門翻。〉光逄,隱之子也。〈趙隱見二百五十二卷懿宗咸通之十三年。

 

 ⑪. 양왕이 비로소 금상전에 나아가 백관들이 칭신하는 것을 받고, 내리는 문서를 교령이라 칭하고, 스스로 칭하기를 '과인'이라 하였다.

 5일에 여러 牋(전: 편지)· 表(표: 황제에게 올리는 글)· 簿(부: 정부 문서)· 籍(적: 호적 제적 등)에는 모두 당의 연호를 버리고 月과 日만을 쓰게 하였다.

 10일에 장문율 등이 대량에 도착하였다.

 ⑪. 梁〈【章:十二行本「梁」上有「庚戌」二字;乙十一行本同;退齋校同。】〉王始御金祥殿,〈王溥五代會要:梁受禪都大梁,改正衙殿為崇元殿,東殿為玄德殿,內殿為金祥殿,萬歲堂為萬歲殿,門如殿名。薜史曰:梁自謂以金德王,又以福建上獻鸚鵡,諸州相繼上白烏、白兔洎白蓮之合蒂者,以為金行應運之兆,故名殿曰金祥。〉受百官稱臣,〈此梁所自置百官也。〉下書稱教令,自稱曰寡人。辛亥,令諸牋、表、簿、籍皆去唐年號,但稱月、日。〈去,羌呂翻。〉丙辰,張文蔚等至大梁。

 

 ⑬. 16일에 양왕이 이름을 朱晃으로 고쳤다. 왕의 형인 주전욱은 양이 장차 황제에 즉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말하였다.

 "주삼아! 네가 천자가 될 수 있겠는가?"

 ⑬. 壬戌,梁王更名晃。〈更,工衡翻。薜史曰:時將受禪,下教以本名二字異帝王之稱,故改名。〉王兄全昱聞王將即帝位,謂王曰:「朱三,爾可作天子乎!」

 

 18일에 장문율과 양섭이 노거를 타고 상원역에서부터 책보를 좇고 제사가 각기 의위(儀衛: 의장대와 호위대)와 노부(鹵簿: 천자 거동 행열)를 갖추고 앞서 인도하니 백관들이 그 뒤를 좇았으며, 금상전 앞에 도착하여 이에 진열하였다. 왕이 곤면을 입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甲子,張文蔚、楊涉乘輅自上源驛從冊寶,諸司各備儀衛鹵簿前導,百官從其後,〈此唐之百官。從,才用翻。〉至金祥殿前陳之。王被袞冕,〈被,皮義翻。〉即皇帝位。

 

 장문울· 소순이 책문을 받들고 어전에 나아가 읽어 올리고, 양섭· 장책· 설이구· 조광봉이 차례로 보를 받들고 어전에 올라갔는데, 읽기를 마치고 내려가서 백관들을 인솔하고 춤을 추며 축하를 하였다.

 황제가 드디어 장문울 등과 더불어 현덕전에서 연회를 가졌다.

 황제가 술잔을 들고 말하였다.

 "짐이 정사를 보좌한 지가 아직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 모든 것은 여러 공들이 추대한 덕분이오."

 장문울 등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엎드려 대답할 수 없었다. 오로지 소순과 설이구 그리고 형부상서 장의만이 황제의 공덕은 마땅히 하늘의 뜻에 호응하고 사람들의 뜻에 순응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張文蔚、蘇循奉冊升殿進讀,楊涉、張策、薜貽矩、趙光逄以次奉寶升殿,讀已,〈已者,畢也。〉降,帥百官舞蹈稱賀。〈帥,讀曰率。〉帝遂輿文蔚等宴於玄德殿。帝舉酒曰:「朕輔政未久,此皆諸公推戴之力。」文蔚等慚懼,府伏不能對,獨蘇循、薜貽矩及刑部尚書張禕〈禕,許韋翻。〉盛稱帝功德宜應天順人。

 

 황제는 다시 종척들과 더불어 궁중에서 음주를 하고 도박을 하였는데, 술이 무르익자 주전욱이 홀연히 옥을 던져서 동이를 깨어 술이 모두 흩어지게 하면서 황제를 홀겨보며 말하였다.

 "주삼아! 너는 본래 탕산의 일개 백성이었는데, 황소를 좇아 도적이 되었고, 천자는 너를 기용하여 사진절도사로 삼아서 부귀가 극에 달하였는데,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당가의 300년의 사직을 멸망시키고 스스로 제왕을 칭하는가? 행위로는 마땅히 족멸당할 것이거든 어찌하여 도박을 하려는 건가?"

 황제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해산하였다.

 帝復與宗戚飲博於宮中,〈宗,同姓也;戚,異姓之親也。復,扶又翻。〉酒酣,朱全昱忽以投瓊擊盆中迸散,〈鮑太博經曰:楚辭琨蔽象碁有六博。琨蔽,玉著也,各投六著,行六镧,故云六博。用十二镧,六镧白,六镧黑,所擲頭謂之瓊。瓊有五采,刻為一畫者謂之塞,刻為兩畫者謂之白,刻為三畫者謂之黑。不刻者,五塞之間,謂之五塞。據歐史,此所謂投瓊,即骰子也。迸,北孟翻。考異曰:王仁裕玉堂閒話曰:「骰子數匝,廣王全昱忽駐不擲,顧而白梁祖,再呼『朱三』,梁祖動容。廣王曰:『你愛他爾許大官職,久遠家族得安否﹖』於是大怒,擲戲具於階下,抵其盆而碎之,暗嗚眦睚,數日不止。」今從王禹偁五代史闕文。〉睨帝曰:「朱三,汝本碭山一民也,從黃巢為盜,天子用汝為四鎮節度使,〈梁王始兼四鎮,見二百六十二卷唐昭宗天復元年。〉富貴極矣,柰何一旦滅唐家三百年社稷,〈唐武德元年受禪,歲在著雍攝提格,禪位于梁,歲在強圉單闕,享國二百九十年。〉自稱帝王!行當族滅,奚以博為!」帝不懌而罷。

 

 19일에 유사에게 명령하여 천지· 종묘· 사직에 고하게 하였다.

 21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주· 진에 널리 알렸다.

 22일에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고쳤으며, 국호를 대량이라 하였다. 당의 소선제를 받들어 제음왕ㅇ라 하엿는데, 모두가 전대의 옛 전례와 같이 하였으며, 당 안팍의 구신들의 관작은 모두 옛날과 같이 나란히 그대로하게 하였다.

 乙丑,命有司告天地、宗廟、社稷。丁卯,遣使宣諭州、鎮。〈皆言受禪於唐也。〉戊辰,大赦,〈考異曰:梁實錄、編遣錄、薜史、唐餘錄皆不云大赦;今從歐陽史。〉改元,〈改元開平。〉國號大梁。奉唐昭宣帝為濟陰王,〈曹州濟陰郡。濟,子禮翻。〉皆如前代故事;唐中外舊臣官爵並如故。

 

 변주를 개봉부라 하고 이름 하여 동도라 하였다. 옛 동도를 서도라 하였으며 옛 서경을 철폐하고, 경조부를 대안부라 하였으며, 대안부에 우국군을 설치하였다. 위박의 이름을 고쳐서 천응군이라 하였다. 제음왕ㅇㄹ 조주로 옮기고 그곳을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갑사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였다.

 以汴州為開封府,命曰東都;以故東都為西都;癈故西京,以京兆府為大安府,置佑國軍於大安府。〈唐以長安為西京,洛陽為東京。今梁都大梁,在洛陽之東,故以洛陽為西都,大梁為東都,而以長安為大安府。〉更名魏博曰天雄軍。〈通鑑二百六十四卷昭宗天祐元年四月,已書「更命魏博曰天雄軍」,蓋亦出朱全忠之意,此複出也,但未知更軍額的在何年。更,工衡翻。〉遷濟陰王于曹州,栫之以棘,〈用左傳語。栫,在甸翻,圍也。〉使甲士守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