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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주전충/白露節中候玄鳥歸1日(陰8/6)甲子

solpee 2021. 9. 12. 16:07

《唐紀81 昭宣帝 天祐 2年》〈乙丑, 905年

 

 ㊷. 11월 2일에 주전충이 회를 건너서 북쪽으로 갔는데, 시재용이 그의 후방 군사를 노략질하여 참수한 것이 3천 급이었고, 치중을 손에 넣은 것이 1만을 헤아렸다. 주전충은 그것을 후회하면서 조급하고 분한 마음이 더욱 심해졌다. 13일에 대량에 도착하였다.

 ㊷. 十一月,丙辰,朱全忠渡淮而北,柴再用抄其後軍,〈抄,楚交翻。〉斬首三千級,獲輜重萬計。全忠悔之,〈悔不用敬翔之言也。〉躁忿尤甚。〈躁,則到翻。〉丁卯,至大梁。

 

 이보다 앞서 주전충이 선이를 전해 받는 것에 조급하여, 비밀리에 장현위 등으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모의하게 하였다. 장현위는 유찬과 함께 논의하였는데 '위· 진 이래로 모두 먼저 대국으로 책봉하고 구석과 수레를 덧붙여 준 연후에 선양을 받았으니 마땅히 순서에 따라가 그것을 시행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먼저 주전충을 제도원수로 제수하여서 차츰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어서 형부상서 배적을 송관고사로 삼으니, 주전충이 크게 호를 냈다. 선휘부사인 왕은의 조은형은 잔현위가 권력을 잡고 총애 받는 것을 미워하여 그의 자리를 가지고자 하였고, 이어서 그를 주전충에게 참소하며 말하였다.

 先是,全忠急於傳禪,〈先,悉薦翻。〉密使蔣玄暉等謀之。玄暉與柳璨等議,以魏、晉以來皆先封大國,加九錫、殊禮,然後受禪,當次第行之。乃先除全忠諸道元帥,以示有漸,仍以刑部尚書裴迪爲送官告使,全忠大怒。宣徽副使王殷、趙殷衡疾玄暉權寵,欲得其處,〈蔣玄暉時爲樞密使,內專朝廷之權,外結朱全忠之寵。〉因譖之於全忠曰︰

 

 "장현우와 유찬 등이 당 운명을 연장하려 하니, 그러므로 그 일을 질질 끌며 머뭇거리면서 변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현위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친히 수춘에 가서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주전충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쓸데없는 일을 교묘하게 말하여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데, 설령 내가 구석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어찌 천자가 될 수 없겠느냐!"

 「玄暉、璨等欲延唐祚,故逗遛其事以須變。」〈須,待也。〉玄暉聞之懼,自至壽春,具言其狀。〈時朱全忠在壽春行營,蔣玄暉懼罪,故自往言狀。〉全忠曰︰「汝曹巧述閒事以沮我,〈沮,在呂翻,止也。〉借使我不受九錫,豈不能作天子邪!」〈禪代之事,先封大國,次加九錫、殊禮,此王莽創爲之也。魏、晉踵而行之,諱其名而受其實。魏文帝所謂「舜、禹之事吾知之矣」,其言雖不至如朱全忠之凶暴,其欲篡之心則一也。〉

 

 장현위가 말하였다.

 "당의 운명은 이미 끝났고 천명은 왕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장현위는 유찬 등과 더불어 감히 은덕을 배반하지 못하는데, 다만 지금 晉· 燕· 岐· 蜀은 모두 우리들의 강적이기에, 왕께서 선양을 급하게 받는다면 저들은 마음속으로 아직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어쩔 수 없이 굽히고 의리를 다한 연후에 그것을 차지하려 하는 것은 대왕을 위해서 만대의 기업을 만들고자 함입니다."

 玄暉曰︰「唐祚已盡,天命歸王,愚智皆知之。玄暉與柳璨等非敢有背德,〈背,蒲妹翻。〉但以今茲晉、燕、岐、蜀皆吾勍敵,〈晉,李克用。燕,劉仁恭。岐,李茂貞。蜀,王建。勍,渠京翻。〉王遽受禪,彼心未服,不可不曲盡義理,然後取之,欲爲王創萬代之業耳。」〈爲,于僞翻。〉

 

 주전충이 질타하며 말하였다.

 "종놈이 과연 반역을 하는구나!"

 장현위는 당황하여 황급히 작별하고 돌아와 유찬과 함께 구석을 거행할 것인지를 논의하였다.

 全忠叱之曰︰「奴果反矣!」玄暉惶遽辭歸,與璨議行九錫。

 

 당시 천자는 막 교사를 거행하려고 하여 백관들이 이미 의례를 연습하였는데, 배적이 대량에서 돌아와 주전충이 화가 났던 것을 말하고 말하였다.

 "유찬과 장현위 등이 당의 운명을 연장하려고 마침내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 하고 있구나."

 時天子將郊祀,百官旣習儀,〈唐制,大祀,百官皆先習儀,受誓戒,散齋,致齋,而後行事。〉裴迪自大梁還,〈裴迪先至壽春行營,從朱全忠還大梁,自大梁還洛陽。〉言全忠怒曰︰「柳璨、蔣玄暉等欲延唐祚,乃郊天也。」

 

 유찬 등은 두려워서 16일에 칙령을 내려서 내년 정월 7일로 바꾸어서 거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조은형의 본래 성씨는 공이고 이름은 순으로 주전충 집 유모의 양자였던 연고로 조라고 뒤집어썼는데, 후에 점차 신분이 높아져서 그의 성씨와 이름이 회복되었다.

 璨等懼,庚午,敕改用來年正月上辛。殷衡本姓孔名循,爲全忠家乳母養子,故冒姓趙,後漸貴,復其姓名。

 

 ㊺. 유찬과 장현위 등이 주전충에게 구석을 덧붙여 주는 것을 의논하자, 조정에 있는 인사들 대부분이 몰래 분개하고 우울한 마음을 품었는데, 예부상서 소순만은 홀로 드러내서 말하였다.

 "양왕의 공로와 업적은 두드러지게 크고 역법과 운수가 돌아갈 곳이 있으니, 조정에서는 의당 신속히 읍양(揖讓: 읍은 두 손 모아 하는 인사, 양은 양보 즉 황위 선양을 의미)해야 합니다."

 조정에 있는 인사들 가운데는 감히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㊺. 柳璨、蔣玄暉等議加朱全忠九錫,朝士多竊懷憤邑,〈朝,直遙翻。〉禮部尚書蘇循獨揚言曰︰「梁王功業顯大,曆數有歸,朝廷速宜揖讓。」朝士無敢違者。

 

 27일에 주전충을 상국으로 삼아 백규(百揆: 모든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선무 등 21개의 도를 위국으로 하고, 승진시켜 위왕으로 책봉하였으며, 이어서 구석을 덧붙여 주었다. 주전충은 그들이 지체하는 것에 화가 나서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辛巳,以全忠爲相國,總百揆。以宣武、宣義、天平、護國、天雄、武順、佑國、河陽、義武、昭義、保義、戎昭、武定、泰寧、平盧、忠武、匡國、鎭國、武寧、忠義、荊南等二十一道爲魏國,〈宣武領汴、宋、亳、單,宣義領汝、鄭、滑,天平領鄆、曹、濮、濟,護國領河中、晉、絳、慈、隰,天雄領魏、博、貝、衞、澶、相,武順領鎭、冀、深、趙,佑國領京兆、商、華,河陽領孟、懷,義武領定、祁、易,昭義軍領潞、澤,保義領邢、洺、磁,戎昭領金、均、房,武定領洋,泰寧領兗、沂、密,平盧領青、淄、齊、棣、登、萊,忠武領陳、許,匡國領同,鎭國領陝、虢,武寧領徐、宿,忠義領襄、鄧、隨、郢、唐、復、安,荊南領荊、歸、峽。〉進封魏王,仍加九錫。全忠怒其稽緩,讓不受。

 

 12월 4일에 추밀사 장현위에게 명령하여 수조를 싸 가지고 주전충에게 가서 지시한 것을 알리게 하였다.

 9일에 장현위가 대량에서 돌아왔는데, 주전충은 화가 풀리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다. 10일에 유찬이 주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사람들이 양왕에게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니, 폐하께서는 무거운 짐을 풀어놓아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기입니다."

 당일 유찬을 파견하여 대량에 가서 선위한다는 뜻을 전달하였지만 주전충이 거절하였다.

 十二月,戊子,命樞密使蔣玄暉齎手詔詣全忠諭指。癸巳,玄暉自大梁還,言全忠怒不解。甲午,柳璨奏稱︰「人望歸梁王,陛下釋重負,今其時也。」卽日遣璨詣大梁達傳禪之意,全忠拒之。

 

 애초에, 유찬은 조정의 인사들을 모함하여 해친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고, 주전충 역시 그를 싫어하였다. 유찬은 장현위· 장정범고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잔치를 베풀고 모여 서로 깊게 사귀면서 주전충을 위해 선양하고 대신하는 일을 모의하였다.

 하태후는 흐느껴 울면서 궁인인 아건과 아추를 파견하여 잔현위에게 속마음을 전달하게 하여 말하기를, '다른 날 선위를 전한 후에 아들들과 모친의 생명을 온전하게 해주기를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初,璨陷害朝士過多,〈謂白馬之禍也。〉全忠亦惡之。〈惡,烏路翻。〉璨與蔣玄暉、張廷範朝夕宴聚,深相結,爲全忠謀禪代事。〈爲,于僞翻。〉何太后泣遣宮人阿虔、阿秋達意玄暉,語以他日傳禪之後,求子母生全。〈阿,烏葛翻。語,牛倨翻。帝及德王裕皆何太后子也。昭宗已弒,裕與諸弟稍長,相繼而死。事已至此,后之母子能獨全乎!后素號多智,臨難乃爾,蓋當時以能隨時上下以全生者爲智也。〉

 

 왕은과 조은형이 장현위를 헐뜯으며 말하였다.

 "유찬· 장정범과 함께 적선당에서 밤에 잔치를 베풀어 태후와 마주보고 향을 태우면서 선서하여 당의 운명을 다시 일으길 것을 기약하였습니다."

 주전충은 그것을 믿었고, 11일에 장현위와 풍덕고사 응욱· 어주사 주건무를 붙잡아 들여 하남의 감옥에 묶어놓았으며, 왕은은 권지추밀로 삼고, 조은형을 권판선휘원사로 삼았다.

 王殷、趙殷衡譖玄暉,云「與柳璨、張廷範於積善堂〈【章︰十二行本「堂」作「宮」;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夜宴,對太后焚香爲誓,期興復唐祚。」〈何太后時居積善宮。〉全忠信之,乙未,收玄暉及豐德庫使應頊、御廚使朱建武繫河南獄;〈河南府獄。〉以王殷權知樞密,趙殷衡權判宣徽院事。

 

 주전충은 세 차례 표문을 올려서 위왕과 구석의 명령을 사양하였고, 13일에 조서를 내려서 그것을 허락하고 다시 천하병마원수로 삼았는데, 그러나 주전충은 이미 대량의 부사를 수리하여 궁궐로 만들었다. 이날로 장현위를 참수하고 응욱과 주건무를 장형으로 살해하였다.

 16일에 추밀사와 선휘남원사를 줄여서 선휘사 한 사람만 남겨놓았는데, 왕은을 그것으로 삼고, 조은형을 부사로 삼았다.

 全忠三表辭魏王、九錫之命;丁酉,詔許之,〈朱全忠懠怒,正欲殺蔣玄暉等乃復行魏、晉之事。表辭者,敬翔敎之也;詔許之者,王殷等承朱全忠之風指也。〉更以爲下下兵馬元帥,然全忠已脩大梁府舍爲宮闕矣。〈史誅其心迹以示天下後世。〉是日,斬蔣玄暉,杖殺應頊、朱建武。庚子,省樞密使及宣徽南院使,獨置宣徽使一員,以王殷爲之,趙殷衡爲副使。

 

 17일에 칙서를 내려 궁인이 조서와 명령을 공포하고 전달하는 것과 조회를 보는 일에 참여하고 수행하는 것을 철폐하였다. 추가로 장현우의 관직을 삭탈하여 흉악하고 반역한 백성으로 만들었고, 하남으로 하여금 도성의 문밖에 시체를 걸어놓고 무리들을 모아 그것을 불사르게 하였다.

 장현위가 이미 죽자, 왕은과 조은형은 또한 장현이가 사사롭게 하태후를 모셨으며 아추와 아건으로 하여금 내통하여 왕래하게 이끌었다고 무고하였다.

 辛丑,敕罷宮人宣傳詔命〈天復三年誅宦官,以內夫人宣傳詔命。《考異》見前。〉及參隨視朝。〈《開元禮疏》曰︰晉康獻褚后臨朝不坐,則宮人傳命百僚。周、隋相因,國家承之不改。《唐六典》曰︰宮嬪司贊掌朝會贊相之事,凡朝,引客立於殿庭。至天祐三年詔曰︰「宮嬪女職,本備內任。今後遇延英坐日,只令小黃門祗候引從,宮人不得出內。」正是年詔敕也。〉追削蔣玄暉爲凶逆百姓,令河南揭尸於都門外,聚衆焚之。〈河南,河南府也。揭,其謁翻,舉也。〉

玄暉旣死,王殷、趙殷衡又誣玄暉私侍何太后,令阿秋、阿虔通導往來。

 

 25일에 주전충은 비밀리에 왕은과 조은형에게 명령하여 태후를 적선궁에서 시해하게 하고, 칙서를 내려서 추가로 태후를 폐위시켜 서인으로 하였으며, 아추와 아건은 모두 궁전의 앞에서 때려서 살해하였다. 26일에 황태후의 상사로 조회를 사흘간 쉬었다.

 27일에 칙서를 내려서 궁정에 내란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내년 정월에 황상이 上辛(7)에 교외의 사당을 참배하는 의례를 중지하라 하였다.

 己酉,全忠密令殷、殷衡害太后于積善宮,敕追廢太后爲庶人,〈子而廢母,是復晉峻陽之事也。〉阿秋、阿虔皆於殿前撲殺。〈撲,弼角翻。〉庚戌,以皇太后喪,廢朝三日。〈旣廢母爲庶人,又廢朝三日。廢爲庶人,天性滅矣,廢朝三日,旣非喪母之禮,又不足以塞天性之傷,唐之臣子非唐之臣子也。朝,直遙翻。〉

辛亥,敕以宮禁內亂,罷來年正月上辛謁郊廟禮。〈唐不復郊矣。〉

 

 29일에 수사공· 겸문하시랑· 동편장사 유찬은 깍이어 등주 자사로 도었고, 태상경 장연범은 내주사호로 깎였다. 

 30일에 유찬을 상동문의 밖에서 참수하였고, 장연범은 도시에서 거열되었다. 유찬이 형벌에 임박하여 소리치며 말하였다.

 "나라를 저버린 도적인 나 유찬이 죽어도 그것을 마땅하도다!"

 癸丑,守司空兼門下侍郎、同平章事柳璨貶登州刺史,太常卿張廷範貶萊州司戶。甲寅,斬璨於上東門外,車裂廷範於都市。〈自罷謁郊廟以下,皆朱全忠之夙心。〉璨臨刑呼曰︰「負國賊柳璨,死其宜矣!」〈呼,火故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