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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宗의 公主 敎育 /夏至節末候半夏生5日(陰5/27)乙卯

solpee 2021. 7. 6. 15:28

《唐紀64 宣宗 大中 2年》〈戊辰, 848年)

 

 ⑤. 2월 10일에 지제고 영호도를 한림학사로 삼았다. 황상은 일찍이 태종이 편찬한 《金鏡》을 영호도에게 주어 그것을 읽도록 시켰다.

 "지극한 난세란 못난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않은 적이 없엇고, 지극한 치세란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⑤. 二月,庚子,以知制誥令狐綯爲翰林學士。上嘗以太宗所撰《金鏡》〈《金鏡》書,太宗所著也。〉授綯,使讀之,「至亂未嘗不任不肖(君臣),至治未嘗不任忠賢(君臣),」〈治,直吏翻。〉

 

 황상이 이를 중지시키며 말하였다.

 "무릇 태평시대에 이르기를 원하면 마땅히 이 말을 가지고서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 병풍에 《貞觀政要》를 쓰고 매번 정색하고 두 손을 맞잡고서 그것을 읽었다. 황상이 백과느이 이름과 수를 알려고 하자 영호도가 말하였다.

 上止之曰︰「凡求致太平,當以此言爲首。」又書《貞觀政要》於屛風,每正色拱手而讀之。〈觀,古玩翻。〉上欲知百官名數,令狐綯曰︰

 

 "6품 이하는 관품은 낮고 수가 많으며 모두 이부가 기록하고 임명하고, 5품 이상은 정부가 제서를 내려주어 관직을 주는데 각기 관적에 있으며, 이것을 명명하여 '具員'이라고 합니다."

 황상은 재상에게 명령하여 《具員御覽》 다섯 권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그것을 올리자, 항상 서안 위에 두었다.

 「六品已下,官卑數多,皆吏部注擬;五品以上,則政府制授,各有籍,命曰具員。」上命宰相作《具員御覽》五卷,上之,〈上之,時掌翻。〉常置於案上。

 

 ⑧. 문하시랑· 동평장사인 최원식은 파직되어 호부상서가 되었고, 병부시랑· 판탁지· 호부인 주지와 형부시랑· 염철전운사인 마식은 나란히 동평장사가 되었다.

 애초에, 주지가 의성절도사였는데, 위오를 벽소하여 판관으로 삼았으며, 재상이 되자 위오에게 말하였다.

 "힘은 적고 임무는 무거운데 무엇을 가지고서 서로 도와주겠는가?"

 ⑧. 門下侍郎、同平章事崔元式罷爲戶部尚書;以兵部侍郎‧判度支‧戶部周墀、刑部侍郎‧鹽鐵轉運使馬植幷同平章事。〈「幷」,當作「並」〉

初,墀爲義成節度使,辟韋澳爲判官,及爲相,謂澳曰︰「力小任重,何以相助?」

 

 위오가 대답하였다.

 "바라건대, 상공께서는 권력을 갖지 마십시오."

 주지는 놀라며 말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위오가 말하였다.

 "관에서 상을 내리고 형벌을 주면서 천하와 더불어 그 옳고 그른 것을 함께하고, 자기의 애증과 희로를 그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천하는 스스로 다스려지는데 어찌 권력에 있어야하겠습니까?"

 주지는 깊이 그럴 것으로 여겼다. 위오는 위관지의 아들이다.

 澳曰︰「願相公無權。」墀愕然,不知所謂。澳曰︰「官賞刑罰,與天下共其可否,勿以己之愛憎喜怒移之,天下自理,何權之有!」墀深然之。澳,貫之之子也。〈澳,烏到翻。韋貫之,元和中爲相。

 

 ⑫. 11월 14일에 만수공주가 기거랑 정호에게 시집갔다. 정호는 정인의 후손이고 진사에 급제하여 교서랑· 우습우대봉공이 되엇으며 문장이 우아한 것으로 드러 나고 칭찬을 받았다.

 ⑫. 十一月,庚午,萬壽公主適起居郎鄭顥。顥,絪之孫,〈鄭絪爲相於元和之初。〉登進士第,爲校書郎、右拾遺內供奉,以文雅著稱。

 

 공주는 황상의 총애를 받는 딸이었으니, 그러므로 정호를 뽑아 그녀를 모시고 살도록 하였다. 유사가 옛 제도를 좇아 은장거를 사용하기를 청하자, 황상이 말하였다.

 "내가 검소하고 절약하는 것을 가지고 천하 사람들과 교화하고자 하니 마땅히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公主,上之愛女,故選顥尚之。有司循舊制請用銀裝車,上曰︰「吾欲以儉約化天下,當自親者始。」

 

 외명부가 동장거를 사용하는 법에 의거하게 하였다. 공주에게 조서를 내려 부인의 에절을 집행하는 것은 모두 신하와 서민의 법과 같이 하고 지아비의 일족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시사에 관여하지 말도록 하였다. 또 수조를 내려서 거듭 말하였다.

 "만약 나의 훈계를 어기면 반드시 태평과 안락 같은 재앙이 있을 것이다."

 令依外命婦以銅裝車。〈唐制,公主乘厭翟車。外命婦一品,乘自白銅厭犢車。〉詔公主執婦禮,皆如臣庶之法,戒以毋得輕夫族,毋得預時事。又申以手詔曰︰「苟違吾戒,必有太平、安樂之禍。」〈樂,音洛。〉

 

 정호의 동생인 정의가 일찍이위태로운 질병을 얻자 황상은 사신을 파견하여 그를 살피도록 하였으며 그가 돌아오자, 물었다.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말하엿다.

 "자은사에 있는 놀이를 구경하는 장소에 있습니다."

 황상은 화를 내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사대부의 집안이 나의 집안과 혼인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는데, 진실로 까닭이 있었구나!"

 顥弟顗,嘗得危疾,上遣使視之,還,問「公主何在?」曰︰「在慈恩寺觀戲場。」上怒,歎曰︰「我怪士大夫家不欲與我家爲婚,良有以也!」

 

 급히 명령하여 공주를 불러 궁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그녀를 계단 아래에 세우고 가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공주는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였다. 황상은 그녀를 나무라며 말하였다.

 "어찌 소랑에게 병이 있는데 가서 살피지 않고 마침내 놀이를 구경하는가!"

 정씨 집으로 돌려보내었다. 이로 말미암아 황상의 세대가 끝나기까지 황족의 친인척들은 모두 두려려워하며 예법을 지키기를 명문종족과 같이 하였다.

 亟命召公主入宮,立之階下,不之視。公主懼,涕泣謝罪。上責之曰︰「豈有小郎病,不往省視,乃觀戲乎!」〈自晉以來,嫂謂叔爲小郎。省,悉景翻。〉遣歸鄭氏。由是終上之世,貴戚皆兢兢守禮法,如山東衣冠之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