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獄持와 宿囚/穀雨節 初候萍始生牧丹風5日(陰3/13)壬寅

solpee 2021. 4. 24. 05:02

《唐紀21 則天后 長壽 元年》〈壬辰, 692年

 

 

 ⑰. 하관시랑 이소덕이 몰래 태후에게 말하였다.

 "위왕 무승사의 권세가 너무 무겁습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나의 조카이니 그래서 심복으로 일을 맡겼다."

 이소덕이 말하였다.

 "조카가 고모에 대한 그 가까움은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것과 어떠합니까? 아들에도 오히려 그 아버지를 簒弑(찬시: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 위하여 그들을 죽임)한 자가 있는데, 하물며 조카인데서야! 지금 무승사는 이미 폐하의 조카여서 친왕이 되었고, 또 재상이 되어 권력은 임금과 같게 되었으니, 신은 폐하께서 오랫동안 천위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⑰. 夏官侍郎李昭德密言於太后曰:「魏王承嗣權太重。」〈夏官,兵部。嗣,祥吏翻。〉太后曰:「吾姪也,故委以腹心。」昭德曰:「姪之於姑,其親何如子之於父?子猶有篡弒其父者,況姪乎!今承嗣旣陛下之姪,爲親王,又爲宰相,〈相,息亮翻。〉權侔人主,臣恐陛下不得久安天位也!」

 

 태후가 놀라서 두리번거리며 말하였다.

 "짐은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을, 8월에 16일에 문창좌상· 동봉각난대삼품인 무승사를 특진으로 삼고, 납언 무유녕을 동관상서로 삼았으며, 하관상서· 동평장사 양집유를 지관상서로 삼고, 나란히 정치적 일에서 그만두도록 하였다.....중략.....

 무승사도 역시 태후에게 이소덕을 헐뜯자, 태후가 말하였다.

 "나는 이소덕을 임명하고 비로소 편안하게 잠잘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나르 대신하여 힘쓸 것이니, 너는 말하지 마라."

 太后矍然曰:「朕未之思。」〈矍,九縛翻。〉秋,七月,戊寅,以文昌左相、同鳳閣鸞臺三品武承嗣爲特進,納言武攸寧爲冬官尚書,〈嗣,祥吏翻。冬官,工部。尚,辰羊翻。〉夏官尚書、同平章事楊執柔爲地官尚書,並罷政事;以秋官侍郎新鄭崔元綜爲鸞臺侍郎,〈秋官,刑部。新鄭,春秋鄭國都。鄭武公隨周平王東遷,邑於虢、鄫之間,莊公所謂「吾先君新邑于此」,是也。漢爲新鄭縣,屬河南郡,魏、晉省,隋開皇十六年復置,屬鄭州。〉夏官侍郎李昭德爲鳳閣侍郎,檢校天官侍郎姚璹爲文昌左丞,〈夏官,兵部。鳳閣,中書。天官,吏部。改尚書爲文昌。璹,殊玉翻。〉檢校地官侍郎李元素爲文昌右丞,與司賓卿崔神基〈地官,戶部。司賓卿,卽鴻臚卿。〉並同平章事。〈《考異》曰:《舊‧昭德傳》:「舉明經,累遷至鳳閣侍郎。長壽二年增置夏官侍郎,以昭德爲之;是歲,遷鳳閣鸞臺平章事。」《新紀》、《表》、《傳》皆云,「昭德自夏官侍郎遷鳳閣侍郎同平章事。」蓋昭德自鳳閣爲夏官,自夏官復爲鳳閣也。《婁師德傳》:「長壽元年增置夏官侍郎。」今從之。「崔神基」,《實錄》作「崔基」。今從《新紀》、《表》。〉璹,思廉之孫;〈姚思廉事隋及唐。〉元素,敬玄之弟也。〈李敬玄相高宗。〉辛巳,以營繕大匠王璿爲夏官尚書、同平章事。〈光宅改將作監爲營繕監。璿,似宣翻。〉承嗣亦毀昭德於太后,太后曰:「吾任昭德,始得安眠,此代吾勞,汝勿言也。」

 

 이때에 혹리들이 마음대로 횡행하였는데, 모든 관리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발을 옆으로 하였으나, 이소덕은 홀로 조정에서 그들의 간사함을 아뢰었다. 태후가 상서를 좋아하여, 붉은 색의 문양이 새겨진 흰 돌을 바친 자가 있었는데, 집정이 그의 이상한 행동을 꾸짖자 대답하였다.

 是時,酷吏恣橫,〈橫,下孟翻。〉百官畏之側足,昭德獨廷奏其姦。太后好祥瑞,〈好,呼到翻。〉有獻白石赤文者,執政詰其異,〈詰,去吉翻。〉對曰:

 

 "그의 충성된 마음 때문입니다."

 이소덕이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이 돌이 충성의 마음이라면, 다른 돌들은 모두 반역이란 말인가?"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양주 사람 호경이 거북의 배에 붉은색의 옻으로 글씨를 썼다.

 "천자께서는 만만년 하십시오."

 궁궐로 가서 그것을 바쳤다. 이소덕이 칼로 다 깎아낸 후, 그가 법의 심판을 받도록 회부하는 것을 허락하여 달라고 주청하였다. 태후가 말하였다.

 "이 사람의 마음 역시 악함은 없다."

 그를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以其赤心。」昭德怒曰:「此石赤心,他石盡反邪?」〈邪,音耶。〉左右皆笑。襄州人胡慶以丹漆書龜腹曰:「天子萬萬年。」詣闕獻之。昭德以刀刮盡,奏請付法。太后曰:「此心亦無惡。」命釋之。

 

 태후가 고양이를 훈련시키려고 그것과 앵무를 함께 살도록 하였다. 나가서 그것들을 백관들에게 보여주면서, 보라는 전달이 아직 두루 미치지 못하였는데,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앵무새를 잡아서 그것을 먹으니, 태후는 심히 부끄러워하였다.

 太后習貓,使與鸚鵡共處。〈處,昌呂翻。〉出示百官,傳觀未遍,貓飢,搏鸚鵡食之,太后甚慚。

 

 태후는 수공 연간(685~688) 이래로 혹리를 임용하여, 먼저 당 종실의 귀한 친척 수백 명을 죽이고, 다음으로 대신 수백 가문에 미쳤으며, 그 자사와 낭장 이하는 헤아릴 수도 없었다. 한 명의 관리를 임명할 때마다 호비(궁정 수비수)들이 몰래 서로 말하였다.

 "鬼朴(귀신용 재료 즉 시신)이 또 왔네."

 太后自垂拱以來,任用酷吏,先誅唐宗室貴戚數百人,次及大臣數百家,其刺史、郎將以下,不可勝數。〈將,卽亮翻。勝,音升。〉每除一官,戶婢竊相謂曰:〈戶婢,官婢之直宮中門戶者。〉「鬼朴又來矣。」

 

 순월이 지나지 않아서 번번이 몰래 체포되어 족주되었다. 감찰 어사인 조읍 사람 엄선사는 공정하고 정직해서 용감하게 말하였다. 당시 밀고한 자들이 헤아릴 수 없었는데, 태후 역시 그 번거로움에 싫증이 나서, 엄선사에게 명하여 조사해보도록 하니, 허위를 가지고 죄를 자백한 자가 850여 명이었다. 벌려놓은 패거리들은 이것 때문에 부진하자. 마침내 서로 함께 엄선사를 얽어서 모함하였고, 이에 걸려서 환주로 유배되었다. 태후는 그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불러서 혼의감승(渾儀監丞: 기상청장)으로 삼았다. 엄선사의 이름은 선이나 자를 가지고 행세하였다. 

 不旬月,輒遭掩捕、族誅。監察御史朝邑嚴善思,〈後魏分馮翊置澄城郡,仍置南五泉縣,西魏改爲朝邑縣,隨、唐屬司州。監,古銜翻。朝,直遙翻。〉公直敢言。時告密者不可勝數,〈勝,音升。〉太后亦厭其煩,命善思按問,引虛伏罪者八百五十餘人。羅織之黨爲之不振,〈爲,于僞翻。〉乃相與搆陷善思,坐流驩州。〈《舊志》:驩州至京師陸路一萬二千四百五十二里,水路一萬七千里,至東都一萬一千五百九十五里,水路一萬六千二百二十里。宋白曰:驩州,日南郡,堯放驩兜于崇山,卽此。〉太后知其枉,尋復召爲渾儀監丞。〈后改司天監爲渾儀監。丞,從七品下。復,扶又翻。渾,戶本翻。〉善思名譔,以字行。〈譔,士免翻。〉

 

 우보궐인 신정 사람 주경칙은, '태후가 원래 위압적 형벌을 이용하여 자신이 주장과 다른 의론을 금지시키려 하였지만, 이제는 이미 혁명이 완료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었으니, 의당 형벌을 줄이고 오히려 관대해야 한다.' 고 하여서, 마침내 상소하였다.

 右補闕新鄭朱敬則以太后本任威刑以禁異議,今旣革命,衆心已定,宜省刑尚寬,乃上疏,以爲:

 

 "李斯는 秦의 재상이 되자, 각박하고 변화하는 속임수를 이용하여 제후들을 도륙하였습니다. 그가 관용과 화합으로써 그것을 바꾸는 것을 몰라서 결국에는 土崩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변화가 불러오는 災禍를 몰랐던 것입니다. 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자, 육가와 숙손통이 예의와 신의를 가지고 정치를 설명하여, 12대 동안 전해져 내려갔는데, 이는 변화의 장점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李斯相秦,用刻薄變詐以屠諸侯,不知易之以寬和,卒至土崩,此不知變之禍也。〈事見《秦紀》。上,時掌翻。相,息亮翻。卒,子恤翻。〉漢高祖定天下,陸賈、叔孫通說之以禮義,傳世十二,知變之善也。〈說,輸芮翻。事見《漢紀》。〉

 

 文明(684) 연간부터는 처음 시작하였는지라 하늘과 땅이 둔몽하여 세 명의 숙부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네 명의 흉한이 난관을 구축하고 있었음에도, 구거 제도를 설치하지 못하여 하늘에 호응하고 사람을 따르지도 못하였으며, 형벌의 명분도 맞지 아니하여 간악한 자들을 꺾고 폭력을 중지시킬 수 없었습니다.

 自文明草昧,天地屯蒙,〈草,造也;昧,蒙也。造物之始,始於冥昧,言后稱制之初,改元文明,造始之時也。屯者物之始,蒙者物之穉,言后稱制之初,猶天地生物之始。屯,涉倫翻。〉三叔流言,四凶構難,〈三叔,指韓、霍諸王;四凶,指徐敬業等。難,乃旦翻。〉不設鉤距,無以應天順人,不切刑名,不可摧姦息暴。

 

 그러므로 신기(銅櫃)를 설치하고 밀고하는 실마리를 여니, 굽고 바른 그림자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었고, 싸여 있어 감추어져 있던 마음도 죄다 드러났으며, 神道(天道)는 올바른 것을 도와서 죄가 없으면 제거하지 않아서 창생이 편안하여 紫宸(대전)은 주인을 바꾸었습니다.

 故置神器,開告端,〈謂鑄匭以開告密之門也。〉曲直之影必呈,包藏之心盡露,神道助直,無罪不除,蒼生晏然,紫宸易主。

 

 그러나 급하게 내달리면 좋은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짧은 柱(현악기의 줄 고르는 도구)는 화음의 ㅜ소리를 모자라게 하며, 지난 시기의 묘책도 마침내 오늘날을 맞아서는 芻狗입니다.

 然而急趨無善迹,〈以步趨爲諭也。〉促柱少和聲,〈以琴瑟爲諭也。少,詩沼翻。〉向時之妙策,乃當今之芻狗也。〈芻狗,祭祀所用,旣祭則棄之矣。〉

 

 엎드려 바라건대, 秦· 漢의 잘잘못을 살펴보고, 時事로써 적합하고 마땅한 것을 고려하며, 糟粕(찌꺼기)은 버릴 것인지를 심사하시고, 蘧廬(거려:여관)가 모름지기 부셔버려야 할 것을 깨닫고, 萋菲(처비: 紋彩)가 있는 牙角(아각:피리)을 제거하며, 간악하고 음험한 鋒芒(봉망:무기의 날)을 둔하게 하고, 벌려 놓은 법망의 근원을 막아서 붕당의 흔적을 쓸어버려 천하의 창생들로 하여금 마음 편하면서 크게 기뻐하여 따르게 한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태후는 이를 훌륭하다고 여겨서 비단 300필을 하사하였다.

 伏願覽秦、漢之得失,考時事之合宜,審糟粕之可遺,〈以酒爲諭,泲取其醇汁而去其糟粕。〉覺蘧廬之須毀,〈《莊子》曰:蘧廬可以一宿而不可以久處。郭象《註》云:蘧廬,傳舍也。〉去萋菲之牙角,〈《詩》云:萋兮菲兮,成是貝錦。彼譖人者,亦已太甚!去,羌呂翻。〉頓姦險之鋒芒,窒羅織之源,掃朋黨之迹,使天下蒼生坦然大悅,豈不樂哉!」〈樂,音洛。〉太后善之,賜帛三百段。

 

 시어사 주구가 상소하였다.

 "조사하고 탄핵하는 관리들은 모두 학대하는 것을 서로 자랑으로 여기는데, 흙으로 귀를 막고 굴레를 씌우고, 목에 씌우는 칼로 목을 갈며, 쇠사슬로 목을 조인 후 쐐기를 박고, 가슴의 갈비뼈를 꺾으며, 대나무 꼬챙이로 손톱과 발톱 사이를 찌르고, 머리카락을 매달아 놓고 귀를 태우고는, 이를 '獄持'라고 부릅니다. 혹은 며칠 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밤을 지새우면서 천천히 신문하며, 밤낮으로 흔들어서 잠을 잘 수 없게 해놓고는, 이를 '宿囚'라고 부릅니다.

 侍御史周矩上疏曰:「推劾之吏皆相矜以虐,泥耳籠頭,枷硏楔轂,〈枷硏,以重枷硏其頸;楔轂,以鐵圈轂其首而加楔。楔,先結翻。轂,呼角翻。〉摺膺籤爪,〈摺,與拉同,力答翻,摧也。膺,胸也。籤爪,以竹籤其爪甲,今鞫獄者十指下籤,卽其遺虐。〉懸髮薰耳,號曰『獄持』。或累日節食,連宵緩問,晝夜搖撼,使不得眠,號曰『宿囚』。

 

 이들은 이미 나무나 돌이 아니고, 또 구원이 눈앞에 있으니 억지로라도 죽음을 지연시키기를 찾습니다. 신이 가만히 여론을 들으니, 모두 천하가 태평이라고 칭찬하고 있지만, 왜 고통스럽게 모름지기 반란이 일어납니까? 어찌 고발된 자들 모두가 영웅이어서 제왕이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다만 혹독한 형벌을 이겨낼 수 없어서 스스로 거짓말을 할뿐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此等旣非木石,且救目前,苟求賒死。〈賒,遠也,言伏法而死,較死於獄中爲稍賒也。〉臣竊聽輿議,皆稱天下太平,何苦須反!豈被告者盡是英雄,欲求帝王邪?但不勝楚毒自誣耳。〈被,皮義翻。勝,音升。〉願陛下察之。

 

 지금 온 조정은 옆에서 숨 쉬면서 불안해하는데, 모두가 폐하는 아침에는 그들과 친밀하지만 저녁에는 그들과 원수가 져서 목숨을 보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周는 어진 정치를 베풀어서 번창하였고, 秦은 형벌을 시행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형벌을 느슨하게 하고 어진 정치를 베푸신다면 천하의 사람들은 대단히 행복해 할 것입니다."

 태후가 자못 그의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제옥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今滿朝側息不安,〈朝,直遙翻。〉皆以爲陛下朝與之密,夕與之讎,不可保也。周用仁而昌,秦用刑而亡。願陛下緩刑用仁,天下幸甚!」太后頗采其言,制獄稍衰。〈《考異》曰:《御史臺記》云:「書奏,遂授洛州司功。」《舊‧薛懷義傳》云:「矩劾奏懷義,遷矩天官員外郎,竟爲懷義所搆,下獄免官。」《御史臺記》又云:「時天官選曹無緒,敕矩監之。侍郎李景謀爲矩所制,乃引爲員外,不閑於吏道,自此左出矣。」據《舊傳》,矩劾奏薛懷義在後。若此年出爲洛州司功,則不當復劾懷義。但《舊傳》矩疏在載初元年二月。是時制獄未息,今因朱敬則疏終言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