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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無面從,退有後言: 앞에서 따르고 뒤로 말하지 말라./立春節仲候蟄蟲始振櫻挑風5日(陰1/1)辛卯

solpee 2021. 2. 12. 09:28

《唐紀10 太宗 貞觀 6》 (壬辰, 632)

 

 

 ⑭. 윤8월 9일에 황상이 가까이 지내는 신하들에게 단소전에서 연회를 열어주었는데, 장손무기가 말하였다.

 "왕규와 위징은 옛날에 원수(이건성의 식객으로 이세민을 도모하자고 주장) 사이였는데, 오늘 여기에 연회자리를 같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위징과 왕규는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바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채용한 것이오. 그러나 위징은 매번 간언을 할 때마다 내가 좇지 않으면 내가 그와 더불어 이야기할 때에는 번번이 응답하지 않으니 어떻게 된 것이오?"

 ⑭. 閏月,乙卯,上宴近臣於丹霄殿,長孫無忌曰︰「王珪、魏徵,昔爲仇讎,〈謂其事隱太子,勸之圖帝也。〉不謂今日得此同宴。」上曰︰「徵、珪盡心所事,故我用之。然徵每諫,我不從,我與之言輒不應,何也?」

 

 위징이 대답하였다.

 "신은 일을 가지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어서 그러므로 간언하였는데, 폐하가 좇지 않으니, 신이 그것에 응한다면 일이 드디어 시행될 것이므로 그런 고로 감히 응하지 아니합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또 응하였다가 다시 간하는 것이 나쁠 것이 무어 있겠소?"

 魏徵對曰︰「臣以事爲不可,故諫;陛〈【章︰十二行本「陛」上有「若」字;乙十一行本同。】〉下不從而臣應之,則事遂施行,故不敢應。」上曰︰「且應而復諫,庸何傷!」〈復,扶又翻。〉

 

 대답하였다.

 옛날에 순이 여러 신하들에게 경계하기를, '너희들은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좇다가 물러나서 뒤에서 말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마음으로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 입으로만 폐하에게 응한다면 바로 얼굴을 마주하고 복종하는 것이니, 어찌 稷(직)과 契(설)이 순을 섬기는 뜻이라 하겠습니까?"

 對曰︰「昔舜戒羣臣︰『爾無面從,退有後言。』〈《書‧益稷》之言。〉臣心知其非而口應陛下,乃面從也,豈稷、契事舜之意邪!」〈契,息列翻。〉

 

 황상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사람들이 위징은 행동거지가 거칠고 거만하다고 말하였는데 내가 그를 보고 보기 좋고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소."

 上大笑曰︰「人言魏徵舉止疏慢,我視之更覺娬媚,〈娬,罔甫翻;娬,亦媚也。〉正爲此耳!」〈爲,于僞翻。〉

 

 위징이 일어나서 절하고 사과하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신에게 말을 하게 열어놓으시니 그러므로 신이 그 어리석음을 다하는 것인데, 만약에 폐하께서 거절하고 받지 않으시면 신이 어찌 감히 자주 안색을 범하겠습니까?"

 徵起,拜謝曰︰「陛下開臣使言,故臣得盡其愚;若陛下拒而不受,臣何敢數犯顏色乎!」〈數,所角翻。

 

 

 

 ⑮. 17일에 비서소감 우세남이 《聖德論》을 올리니, 황상이 손수 쓴 조서를 내려서 칭찬하였다.

 "경의 평론은 대단히 높소. 짐이 어찌 감히 상고시대의 군왕에 비교하겠는가마는 다만 근세의 군왕에 비한다면 조금 나을 뿐이오. 그러나 경은 그 시작을 목도하였지만 아직 그 끝을 모르는 것이오. 만약에 짐이 처음과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끝을 맺을 수 있다면 이 평론은 전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만약에 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면 아마도 헛되이 후세로 하여금 경을 비웃게 할까 걱정이오."

 ⑮. 戊辰,祕書少監虞世南上《聖德論》,〈上,時掌翻。〉上賜手詔,稱︰「卿論太高。朕何敢擬上古,但比近世差勝耳。然卿適覩其始,未知其終。若朕能愼終如始,則此論可傳;如或不然,恐徒使後世笑卿也!」

 

 

 

 ⑯. 9월 29일에 경선궁에 행차하였는데, 황상이 태어난 옛집이다. 이어서 귀인들과 연회를 하면서 부와 시를 지었다. 기거랑인 청평 사람 여재가 이것들을 관현으로 연주하게 하고 명명하여 '공성경선악'이라고 하며, 동자로 하여금 팔일로 '구공지무'를 추게 하였고, 크게 연회를 열어 '파진무'와 더불어 모두 뜰에서 연주하게 하였다.

 ⑯. 九月,己酉,幸慶善宮,上生時故宅也,〈以高祖武功舊第爲慶善宮。〉因與貴人宴,賦詩。起居郎清平呂才〈清平縣,屬博州。劉昫曰︰本漢貝丘縣,隋曰清平。〉被之管絃,〈被,皮義翻。〉命曰《功成慶善樂》,使童子八佾爲《九功之舞》,大宴會,與《破陳舞》偕奏於庭。〈才有巧思,故命以所賦詩被之管絃以爲樂章,以童子六十四人冠進德冠,紫袴褶,長袖,漆髻,屣履而舞,號《九功舞》,進蹈安徐,以象文德。《破陳樂》,號《七德舞》,擊刺往來,發揚蹈厲,以象武功。陳,讀曰陣。〉

 

 동주 자사 울지경덕이 연회에 참여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반열에서 그 보다 위에 있자, 울지경덕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너는 무슨 공로로 나의 위에 앉았느냐?"

 임성왕 이도종이 그 다음 아래였는데, 이를 타이르며 풀어주었다. 울지 경덕이 이도종을 주먹으로 때려서 눈이 거의 멀었다.

 同州刺史尉遲敬德預宴,〈同州,馮翊郡。尉,紆勿翻。〉有班在其上者,敬德怒曰︰「汝何功,坐我上!」任城王道宗次其下,諭解之。敬德拳毆道宗,目幾眇。〈任,音壬。毆,烏口翻。幾,居希翻。《考異》曰︰《唐曆》云︰「嘗因內宴,於御前毆宇文士及曰︰『汝有何功,合居吾上!』太宗慰諭之,方止。」今從《舊傳》。〉

 

 황상은 기뻐하지 아니하고 끝내면서 울지경덕에게 말하였다.

 "짐이 한 고조가 공신들을 주멸한 것을 보고서 속으로 항상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니, 그러므로 경 등과 더불어 같이 부귀를 보존하여 자손으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하였소. 그러나 경이 관직에 있으면서 자주 범법하니 마침내 한신과 팽월이 젓에 담가진 것은 고조의 죄가 아니었음을 알겠다. 국가의 기강은 오직 상과 벌뿐이고 분에 맞지 않는 은혜는 자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부지런히 스스로 닦고 조심하여 후회를 남기지 말게 하라."

 울지경덕은 이로부터 비로소 두려워하며 스스로 절제하였다.

 上不懌而罷,謂敬德曰︰「朕見漢高祖誅滅功臣,意常尤之,故欲與卿等共保富貴,令子孫不絕。〈令,力丁翻。〉然卿居官數犯法,乃知韓、彭葅醢,非高祖之罪也。國家綱紀,唯賞與罰,非分之恩,不可數得,〈分,扶問翻。數,所角翻。〉勉自修飭,無貽後悔!」敬德由是始懼而自戢。〈戢,阻立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