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군웅할거시대/小寒節末候雉始雊水仙風初日(陰12/3)癸亥

solpee 2021. 1. 14. 17:42

《唐紀1 高 武德 元年》 (戊寅, 618)

 

 

 ⑲. 우문화급이 무리 10여만을 가지고 6궁을 점거하고서 스스로를 봉양하게 하는데 양제와 꼭 같게 하였다. 장중에 있을 때마다 남쪽을 향하여 앉고 어떤 사람이 일을 보고하면 잠자코 대답을 하지 않고서, 아문에 내려 보내니 바야흐로 계장을 가져다가 당봉의·우방유·설세량·장개 등과 참여하여 이를 결정하였다. 소주 양호(수의 4대 황제)를 상서성에 붙여서 위사 10여 명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고, 영사를 보내어 그가 서명한 칙서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백관들은 다시는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⑲. 夏,四月,宇文化及擁衆十餘萬,據有六宮,自奉養一如煬帝。每於帳中南面坐,人有白事者,嘿然不對;下牙,方取啓狀與唐奉義、牛方裕、薛世良、張愷等參決之。〈劉馮《事始》曰︰兵書曰︰牙旗者,將軍之精,凡始建牙,必以制日。制日者,其辰在五行以上剋下之日也。又《尚書[緯]》曰︰門旗二口,色紅,八幅。大將牙門之旗,出引將軍前列。又《黃帝出軍決》曰︰牙旗者,將軍之精;金鼓者,將軍之氣。《周禮》司常職云︰軍旅會同置旌門。夫以旌爲門,卽旗門也,後世軍中遂置牙門將,又有牙兵,典總此名者以押牙爲名。至於官府,早晚軍吏兩謁,亦名爲衙。呼謂旣熟,雖天子正殿受朝謁,亦名正衙。〉以少主浩付尚書省,令衞士十餘人守之,〈少,始照翻。〉遣令史取其畫敕,〈隋門下省,有錄事、令史各六人。〉百官不復朝參。

 

 ㉑. 소선(양왕)이 황제(양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백관을 두었는데, 梁室의 고사에 준거하였다. 그의 숙부인 소종을 효정황제로 추존하고, 할아버지 소암을 하간충열왕으로 삼고, 아버지 소선을 문헌왕으로 삼고, 동경진 등 공신 7명을 책봉하여 모두 왕으로 삼았다.

 ㉑. 蕭銑卽皇帝位,置百官,準梁室故事。諡其從父琮爲孝靖皇帝,〈諡,神至翻。從,才用翻。〉祖巖爲河間忠烈王,父璿王爲文憲王,〈璿,音旋。〉封董景珍等功臣七人皆爲王。

 

 ㉒. 양제가 흉사하였다는 소식이 장안에 이르니, 당왕은 그를 위하여 통곡을 하고 말하였다.

 "내가 북면을 하고서 그 사람을 섬겻는데, 정도를 잃어서 구제할 수 없었지만 감히 슬픔을 잊겠는가?"

 ㉒. 煬帝凶問至長安,唐王哭之慟,曰︰「吾北面事人,失道不能救,敢忘哀乎!」

 

 ㉕. 5월 14일에 수의 공제는 唐에 선위(?)하고 낮추어서 대저에 살았다(581~618, 3대 38년). 20일에 당왕은 태극전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형부상서 소조를 파견하여 남교에서 하늘에 고하게 하고, 크게 사면 하고 연호를 고쳤다. 郡을 혁파하고 州를 설치하였으며, 태수를 자사로 하였다. 五運을 미루어서 土德으로 삼고, 색깔은 황색을 숭상하게 하였다.

 ㉕. 戊午,隋恭帝禪位于唐,遜居代邸。〈隋開皇元年受禪,歲在辛丑,三主,三十八年而亡。《考異》曰︰《創業注》此詔在四月,今從《實錄》。〉甲子,唐王卽皇帝位于太極殿,〈卽隋大興殿也;唐旣受禪,改爲太極殿。〉遣刑部尚書蕭造告天於南郊,大赦,改元。〈改元武德。〉罷郡,置州,以太守爲刺史。〈大業三年,改州爲郡。〉推五運爲土德,色尚黃。

 

 ㉖. 수 양제가 흉측한 일을 당하였다는 소식이 동도에 전해지자, 24일에 유수관들은 월왕 楊侗을 받들어 수의; 5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皇泰라고 고쳤다. 이때에 조당에서 선지하엿는데, 이때는 전쟁 중이므로 공사 간에 모두 그날로 대상을 치르게 하였다. 대행에게 추후로 시호를 올려서 명황제라고 하고 묘호를 세조라 하였고, 원덕태자를 추후로 높여서 성황제로 하고 묘호를 세종이라 하였다.

 어머니 유량제를 황태후라 하였다.

 ㉖. 隋煬帝凶問至東都,戊辰,留守官奉越王卽皇帝位,〈越王侗,亦元德太子昭子。〉大赦,改元皇泰。是時於朝堂宣旨,以時鍾金革,〈朝,直遙翻。《說文》曰︰鍾,當也。〉公私皆卽日大祥。〈大祥而禫。〉追諡大行曰明皇帝,廟號世祖;追尊元德太子曰成皇帝,廟號世宗。尊母劉良娣爲皇太后。

 

 단달을 납언·제국공으로 삼고, 왕세충을 납언·정국공으로 삼고, 원문도를 내사령·노국공으로 삼고, 황보무일을 병부상서·기국공으로 삼고, 또 노초를 내사령으로 삼고, 곽문의를 내사시랑으러 삼고, 조장문을 황문시랑으로 삼아서 함께 조정의 정치를 관장하게 하였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일곱 명의 귀인'이라고 불렀다. 황태 연호를 쓴 주군은 눈과 누썹이 그림과 같았고, 온화하고 후덕하며 어질고 아꼈지만 풍격은 엄연하였다.

 以段達爲納言、陳國公,王世充爲納言、鄭國公,〈隋制,門下省納言二人。〉元文都爲內史令、魯國公,皇甫無逸爲兵部尚書、?國公;又以盧楚爲內史令,〈隋初,內史省置監、令各一人,尋廢監,置令二人。〉郭文懿爲內史侍郎,趙長文爲黃門侍郎,共掌朝政。〈長,知兩翻。朝,直遙翻。〉時人號「七貴」。皇泰主眉目如畫,溫厚仁愛,風格儼然。

 

*.통감엔 唐紀로 기록되었지만 사실은 장안에 唐, 낙양엔 수의 5대황제, 양주엔 수의 4대황제, 촉엔 양나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