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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 숙종은 폐제를 죽이고 따라 죽었다./大雪節中候虎始交3日(陰10/30)辛卯

solpee 2020. 12. 13. 17:17

《南北朝 陳紀2 文帝 天嘉 2年》 (辛巳, 561)

 

 

 ⑲. 제의 황상이 楊·연을 죽이면서 장광왕 고담을 태제로 삼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미 그렇게 하고서 태자로 고백년을 세우니, 고담이 마음속으로 불평하였다. 황상은 진양에 있었고 고담은 업에 머무르며 지키고 있었다. 산기상시 고원해는 고조의 종손인데, 남아서 기밀을 관장하고 있었다. 황상은 영군인 대사람 고적복련을 유주 자사로 삼고, 곡률광의 동생 곡률선을 영군으로 삼아서 고담의 권한을 나누었다. 고담은 고적복련을 머물게 하여서 사무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⑲. 齊主之誅楊、燕也,〈燕,因肩翻。〉許以長廣王湛爲太弟;旣而立太子百年,湛心不平。帝在晉陽,湛居守於鄴。〈楊、燕,謂楊愔、燕子獻。守,手又翻。〉散騎常侍高元海,高祖之從孫也,〈高歡廟號高祖。元海父思宗,歡之從子。散,悉亶翻。騎,奇寄翻。〉留典機密。帝以領軍代人庫狄伏連爲幽州刺史,斛律光之弟羨爲領軍,以分湛權。湛留伏連,不聽羨視事。〈齊主以伏連代羨爲幽州,以羨代伏連爲領軍,以分鄴下之權。湛知其故,乃留伏連不使之幽州,而羨至,又不聽其視領軍府事。〉

 

 이보다 먼저 폐제 제남민도왕은 항상 업에 있었는데, 망기하는 사람이 '업 중에 천자의 기운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평진왕 고귀언은 제남왕이 다시 세워지게 되면 자신에게 이롭지 않게 될까 하여서 황상에게 그를 제거하도록 권유하였다. 황제가 마침내 고귀언으로 하여금 업에 가서 제남왕을 징소하여서 진양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先是,濟南閔悼王常在鄴,〈濟南王殷諡閔悼。先,悉薦翻。濟,子禮翻。〉望氣者言︰「鄴中有天子氣。」平秦王歸彥恐濟南復立,爲己不利,〈齊主藉歸彥握兵以殺楊、燕,楊、燕死而濟南廢矣,故恐其復立,爲己不利。復,扶又翻。〉勸帝除之。帝乃使歸彥至鄴,徵濟南王如晉陽。

 

 고담은 내심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여 고원해에게 계책을 물었다. 고원해가 말하였다.

 "황태후는 만복을 누리시고, 지존께서는 효성과 우애가 보통 사람과 다르시니, 전하께서는 다른 생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담이 말하였다.

 "이것이 어찌 내가 진심을 다하여 대하려는 뜻이겠는가?"

 고원해가 돌아가서 하룻밤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고담은 곧바로 고원해를 후당에 머물게 하였다.고원해는 새벽이 되도록 잠자지 않고 오직 침상을 맴돌면서 천천히 걷기만 할 뿐이었다. 밤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대, 고담이 출현하여서 말하였다,.

  湛內不自安,問計於高元海。元海曰︰「皇太后萬福,至尊孝友異常,殿下不須異慮。」湛曰︰「此豈推誠之意邪!」元海乞還省,一夜思之,湛卽留元海於後臺。元海達旦不眠,唯遶牀徐步。夜漏未盡,湛遽出,曰︰

 

 "신기한 꾀가 무엇인가?"

 고원해가 말하였다.

 "세 가지 계책이 있는데 감히 사용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청컨대 전하께서는 양 효왕이 하였던 고사처럼 몇 명의 기병을 데리고 진양으로 가서 먼저 태후를 알현하여 애달프게 보아달라고 구하고, 뒤에 주상을 알현하여 병권을 거두어들일 것을 요청하면서 죽기를 한하고 조정의 정사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반드시 태산 같은 편안함을 지킬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상책입니다.

 「神算如何?」元海曰︰「有三策,恐不堪用耳。請殿下如梁孝王故事,從數騎入晉陽,先見太后求哀,〈梁孝王,事見十六卷漢景帝中二年。〉後見主上,請去兵權,〈見,賢遍翻。去,羌呂翻。〉以死爲限,不干朝政,〈朝,直遙翻。〉必保太山之安。此上策也。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마땅히 표문을 갖추어 말하기를, '위세와 권력이 너무 커서 많은 입으로부터 비방을 얻을까 두려우니, 청컨대 청제이주자사를 시켜주셔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스스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면 반드시 물의를 불러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간 계책입니다."

 不然,當具表云,威權太盛,恐取謗衆口,請青、齊二州刺史,沈靖自居,〈沈,持林翻。〉必不招物議。此中策也。」

 

 다시 하책을 물었다. 말하였다.

 "제남왕은 대를 이은 적자인데 주상께서 태후의 명령을 빌어서 그것을 빼앗았습니다. 이제 문무의 관료를 소집하여 제남왕을 징소하라는 조칙을 보여주고서 곡률풍락을 붙잡고 고언귀의 목을 베며, 제남왕을 높이 세우고는 천하 사람들을 호령하며 순리로써 반역을 토벌하는 것이니, 이는 만 년에 한 번 오는 기회입니다."

 고담이 크게 기뻐하였다.

 更問下策。曰︰「發言卽恐族誅。」固逼之。元海曰︰「濟南世嫡,主上假太后令而奪之。今集文武,示以徵濟南之敕,執斛律豐樂,〈斛律羨,字豐樂。樂,音洛。〉斬高歸彥,尊立濟南,號令天下,以順討逆,此萬世一時也。」湛大悅。

 

 그러나 품성이 겁이 많아서 여우가 의심하듯 쓸 수가 없어서 술사 정도겸 등으로 하여금 이를 점치게 하였는데, 모두 말하였다.

 "거사하는 것은 이롭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길합니다."

 임려 현령 반자밀이란 자가 점을 알아보는 것을 이해하였는데, 몰래 고담에게 말하였다.

 "宮車는 晏駕(황제의 상여수레)에 해당하니, 전하께서는 천하의 주인이 되실 것입니다."

 然性怯,狐疑未能用,使術士鄭道謙等卜之,皆曰︰「不利舉事,靜則吉。」有林慮令潘子密,曉占候,〈林慮縣,漢屬河內郡,晉屬汲郡,魏敬宗永安元年置林慮郡,帶林慮縣。慮,讀如閭。〉潛謂湛曰︰「宮車當晏駕,殿下爲天下主。」

 

 고담이 그를 안에 구금하여 두고서 그렇게 되기를 기다렸다. 또 무격들로 하여금 이를 점쳐보게 하였는데, 대부분이 말하였다.
 "반드시 거병하지 않아도 저절로 큰 경사가 있을 것입니다."
 고담은 마침내 조서를 받들고 수백 명의 기병으로 하여금 제남왕을 호송하여 진양에 이르게 하였다. 9월에 황제가 사람을 시켜서 그를 짐독시켰는데 제남왕이 따르지 않자 마침내 그를 목졸라서 죽였다.

 황제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그것을 후회하였다.

 湛拘之於內以候之。又令巫覡卜之,〈覡,刑狄翻。〉多云「不須舉兵,自有大慶。」

湛乃奉詔,令數百騎送濟南王至晉陽。九月,帝使人酖之,濟南王不從,乃扼殺之。帝尋亦悔之。

 

 

 ⑳. 겨울, 10월 초하루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⑳. 冬,十月,甲戌朔,日有食之。

 

 

 ㉑. 4일에 제에서 팽성왕 고유를 태보로 삼고, 장락왕 울친을 태위로 삼았다.

 ㉑. 丙子,齊以彭城王浟爲太保,長樂王尉粲爲太尉。〈樂,音洛;下同。〉

 

 

 ㉒. 제의 숙종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토끼가 말을 놀라게 하는 바람에 떨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누태후가 아픈 데를 살피고서 제남왕이 있는 곳을 물은 것이 세 번이었으나 제의 주군이 대답하지 않았다. 태후가 화가 나서 말하였다.

 "그를 죽였느냐? 나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죽는 것도 마땅하다."

 마침내 가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㉒. 齊肅宗出畋,有兔驚馬,墜地絕肋。婁太后視疾,問濟南所在者三,齊主不對。太后怒曰︰「殺之邪?不用吾言,死其宜矣!」遂去,不顧。

 

 11월 2일에 조서를 내려서 사자가 어리므로 상서우복야 조군왕 고예에게 유지를 보내 장관왕 고담을 징소하여 이 대보를 잇게 한다고 하였다. 고담에게 편지를 주며 말하였다.

 "고백년은 죄가 없고 너는 즐거워하는 곳에다 그를 놓아줄 수 있으니 앞 사람을 본받지 마라."

 十一月,甲辰,詔以嗣子沖眇,可遣尚書右僕射趙郡王叡諭旨,徵長廣王湛統茲大寶。又與湛書曰︰「百年無罪,汝可以樂處置之,勿效前人也。」〈樂,音洛。楚靈王乾谿之役,楚人殺其諸子。王聞之,自投於車下,曰︰「余殺人子多矣,能無及此乎!」

 

 이날 진양궁에서 죽었다. 죽음을 당하여 태후의 산릉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말하였다. 안지추가 논하여 말하였다.

 "효소황제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우나 꺼리고 피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배우지 못한 데서 말미암은 소행이다."

 齊肅宗殺其兄之子,臨終乃戒其弟勿殺己之子,良可憫笑。〉是日,殂於晉陽宮。〈年二十七。〉臨終,言恨不見太后山陵。

顏之推論曰︰孝昭天性至孝,而不知忌諱,乃至於此,良由不學之所爲也

 

 

 ㉓. 조군왕 고예가 먼저 황문시랑 왕송년으로 하여금 말을 달려 업에 이르러서 숙종이 유언으로 남긴 명령을 선포하게 하였다. 고담은 오히려 그것을 속이는 것으로 의심하여서 가까운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빈소에 가서 관을 열고 그를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다.

 ㉓. 趙郡王叡先使黃門侍郎王松年馳至鄴,宣肅宗遺命。湛猶疑其詐,使所親先詣殯所,發而視之。

 

 사자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하자 고담은 기뻐하며 말을 달려 진양에 이르러서 하남왕 고효유로 하여금 먼저 궁궐로 들어가 금위군을 갈아치우게 하였다. 11일에 세조(고담)가 남궁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태녕으로 고쳤다.

 使者復命,〈使,疏吏翻;下同。〉湛喜,馳赴晉陽,使河南王孝瑜先入宮,改易禁衞。癸丑,世祖卽皇帝位於南宮,〈諱湛,勃海王歡第九子,孝昭帝之母弟。南宮,晉陽南宮也。〉大赦,改元太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