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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보의 아내 선씨/大雪節初候鶡旦不鳴初日(陰10/23)甲申

solpee 2020. 12. 7. 05:49

《南北朝 梁紀19 太宗 簡文 大寶 元年 庚午550)

 

 

 ㊵. 애초에 연의 소성제(북연 3대 황제 馮弘)는 고리로 달아났고 그의 친족 풍업으로 하여금 300명을 데리고서 바다에 떠서 송으로 달아나도록 하였는데, 이어서 신회(광동 강문)에 머물렀다. 풍업에서 손자 풍융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나주(광동 화주) 자사가 되었으며, 풍융의 아들 풍보를 고량(광동 양강) 태수로 삼았다. 고량 사람 洗(音銑 姺)氏는 대대로 만족의 추장이 되었고 부락은 십여만 가구였으며 딸이 있는데 책략이 많고 용병을 잘하여 여러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신의에 감복하였는데, 풍읍은 그녀를 풍보의 아내로 삼았다.

 ㊵. 初,燕昭成帝奔高麗,〈見一百二十三卷宋文帝元嘉十三年。麗,力知翻。〉使其族人馮業以三百人俘海奔宋,因留新會。〈晉恭帝元熙二年,分南海郡立新會郡;隋、唐爲新會縣,屬廣州。《九域志》︰新會縣在廣州之西南三百三十里。〉自業至孫融,世爲羅州刺史,〈《五代志》︰高涼郡石龍縣舊置羅州。我朝爲化州治所。〉融子寶爲高涼太守。〈高涼縣,漢屬合浦郡;獻帝建安二十二年,吳分立高涼郡,梁置高州。〉高涼洗氏,〈洗,音銑;丁度《集韻》︰姺,國名,或作「䢾」;《姓氏韻纂》又音綿。《考異》曰︰《典略》作「沈氏」。今從《隋書》。〉世爲蠻酋,〈酋,慈秋翻。〉部落十餘萬家,有女,多籌略,善用兵,諸洞皆服其信義;融聘以爲寶婦。

 

 풍융은 비록 여러 대에 걸쳐 방백이 되었으나 그곳의 토착인이 아니어서 호령이 행하여지지 않았는데, 선씨는 본가의 친족을 단속하고 묶어서 백성에게 예절을 따르도록 시켰으며 매번 풍보와 더불어 송사를 함께 결정하고 수령 중에 범법하는 이가 있으면 비록 친척이라도 놓아 주는 바가 없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풍씨는 비로소 그의 정치를 시행할 수 있었다.

 融雖累世爲方伯,非其土人,號令不行;洗氏約束本宗,使從民禮,每與寶參決辭訟,首領有犯,雖親戚無所縱舍,〈舍,讀曰捨。〉由是馮氏始得行其政。

 

 고주 자사 이천사가 대고구를 점거하고 사신을 파견하여 풍보를 불렀는데, 풍보가 가려고 하니 선씨가 그를 저지하며 말하였다.

 "자사가 아무 연고 없이 태수를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니, 반드시 그대를 속여서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고 할 따름입니다." 

 풍보가 말하였다.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

 高州刺史李遷仕據大皋口,〈《五代志》︰高涼郡,梁置高州。〉遣使召寶,〈使,疏吏翻;下同。〉寶欲往,洗氏止之曰︰「刺史無故不應召太守,必欲詐君共反耳。」寶曰︰「何以知之?」

 

 선씨가 말하였다.

 "자사가 臺省을 구원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나 마침내 질병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무기를 만들고 무리를 모은 후에 그대를 불렀으니, 이것은 반드시 그대를 인질로 삼고서 그대의 군사를 발동하려고 하는 것이어서 바라건대 또한 가지 말고 그 변화하는 상황을 관망하십시오."

 洗氏曰︰「刺史被召援臺,〈被,皮義翻。〉乃稱有疾,鑄兵聚衆而後召君;此必欲質君以發君之兵也,〈質,音致。〉願且無往以觀其變。」

 

 수일이 지나자 이천사가 과연 반란을 일으켰는데, 주수 두평로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감석(강서 강주)에 들어가서 어량(강서 만강)에 성을 쌓고서 남강(강서 감주)을 압박하도록 하였다.

 數日,遷仕果反,遣主帥杜平虜將兵入灨石,城魚梁以逼南康,〈帥,所類翻。魚梁亦地名,近灨石。灨,古暗翻。〉霸先使周文育擊之。

 

 선씨가 풍보에게 말하였다.

 "두평로는 날랜 장수이고 지금 감석에 들어가서 관군과 서로 맞서고 잇으니 형세로는 아직 군대를 돌이킬 수 없으며, 이천사는 고주에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대가 만약 스스로 가면 반드시 싸움이 생길 것이니, 의당 사신을 파견하여 卑辭厚禮(외교적 수사로 상대방에 대하여 낮추어 겸손하고, 예의를 두텁게 하는것)로 그에게 알려 말하기를, '저 자신은 감히 나가지 못하지만 처를 보내어 참여시키고자 합니다.' 라고 하십시오. 그 가 그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기뻐하고 대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천여 명을 거느리고 여러 가지 물건을 지고 걸어가면서 재물을 가지고 속죄한다고 외치며 목책 아래에 도착할 수 있게 되면 그를 깨부수는 것은 분명합니다."

 洗氏謂寶曰︰「平虜,驍將也,〈驍,堅堯翻。將,卽亮翻;下同。〉今入灨石與官軍相拒,勢未得還,遷仕在州,無能爲也。君若自往,必有戰鬬,宜遣使卑辭厚禮告之曰︰『身未敢出,欲遣婦參。』彼聞之,必憙而無備。〈憙,與喜同。〉我將千餘人,步擔雜物,唱言輸賧,〈擔,都甘翻。賧,吐濫翻。〉得至栅下,破之必矣。」

 

 풍보가 그 말을 따랐다.

 이천사는 과연 대비를 갖추지 않앗는데 선씨가 습격하여 크게 이를 격파하자 이천사는 달아나서 영도(강서 영도)를 지켰다. 주문육 역시 두평로를 쳐서 패주시키고 그의 성을 점거하였다. 선씨와 진패선은 감석에서 만났다가 돌아와서 풍보에게 말하였다.

 寶從之。遷仕果不設備,洗氏襲擊,大破之,遷仕走保寧都。〈吳分漢贛縣立陽都縣,晉武太康元年,更名寧都。《五代志》︰南康虔化縣,舊曰寧都。〉文育亦擊走平虜,據其城。洗氏與霸先會于灨石,還,謂寶曰︰

 

 "진 도독은 보통사람이 아니어서 무리의 마음을 많이 얻었으니 반드시 도적을 평정할 수 있을 것이며, 그대는 마땅히 그르 후하게 도와야 합니다."

 상도왕 소역이 진패선을 예주 자사로 삼았으며, 예장내사의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陳都督非常人也,甚得衆心,必能平賊,君宜厚資之。」

湘東王繹以霸先爲豫州刺史,領豫章內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