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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德可感義夫,恩可勸死士/立冬節末候雉入大水爲蜃3日(陰10/5)丙寅

solpee 2020. 11. 17. 17:39

《南北朝 梁紀7 武 大通 元 (丁未, 527秊)

 

 ⑥. 위의 우민랑인 양평 사람 노사령이 상소문을 올렸다.

 "군대가 나가 공을 세우는 것은 장수에게 있는 것이니 그에 알맞은 사람을 얻으면 육합(東,西,南,北,天,地)도 손바닥에 침 한 번 바르면 맑게 할 수 있지만, 그에 알맞은 사람을 얻지 못하면 곧 3하(경기)의 지방도 바야흐로 전쟁터가 됩니다.

 ⑥. 魏右民郎陽平路思令上疏,晉武帝置尚書右民郎。以爲︰「師出有功,在於將帥,得其人則六合唾掌可清,人欲舉手有爲,先唾其掌。六合,天、地、東、西、南、北也。唾掌可清,言其易也。唾,湯臥翻,口液也。失其人則三河方爲戰地。此指漢三河之地爲言。魏都洛陽,三河則畿甸也。

 

 가만히 살피건대 최근 몇 년 동안에 장수들은 대부분 총애 받는 귀한 집안의 자손들이어서 술잔을 물고 말에 오르니 뜻은 편안하고 기분은 들떠 있어서 눈썹을 치켜뜨며 팔을 걷어붙이고서 공격해 싸우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다가 커다란 적군을 만나면 근심과 두려움을 번갈아 가슴에 품고 큰 계책이나 날카로운 기세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다 없어집니다.

 竊以比年將帥多寵貴子孫,銜杯躍馬,志逸氣浮,軒眉扼【章︰甲十一行本「扼」作「攘」;乙十一行本同;孔本同。】腕,以攻戰自許;及臨大敵,憂怖交懷,雄圖銳氣,一朝頓盡。

 

 마침내 늙고 약한 병사는 앞에 놓아 도적들과 맞세게 하고, 힘이 센 장사들은 뒤에 머물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도록 하며, 겸하여 또한 무기는 날카롭지 못하고 나아가고 머무는 것이 절도가 없는데 험한 곳을 등진 무리와 여러 번 싸운 오랑캐를 맞이하게 하면 그가 패배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찌 그러할 수가 있겠습니까?

 乃令羸弱在前以當寇,強壯居後以衞身,兼復器械不精,進止無節,以當負險之衆,敵數戰之虜,腕,烏貫翻。怖,普布翻。羸,倫爲翻。比,毗至翻。復,扶又翻;下復疑同。數,所角翻。欲其不敗,豈可得哉!

 

 이리하여서 병사들은 반드시 패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으기 시작할 때부터 먼저 도망가니, 장수들은 적을 두려워하여 미적미적 미루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국가는 관작을 만족시키지 않아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자주 총애하는 명령을 덧붙여주는데, 또한 상을 내리는 것이 가벼워서 그렇게 한다고 의심하여 날마다 금과 비단을 뿌리고 있습니다. 내탕고에 간직한 물건은 텅 비고 매마르고 백성들은 재물을 모두 다 써 버렸으니 드디어 도적의 무리들로 하여금 더욱 심해지게 하여 살아잇는 백성들이 쇠하여지고 피곤해지는 것은 무릇 이렇기 때문입니다.

 是以兵知必敗,始集而先逃;將帥畏敵,遷延而不進。國家謂官爵未滿,屢加寵命;復疑賞賚之輕,日散金帛。帑藏空竭,民財殫盡,帑,他朗翻。藏,徂浪翻。遂使賊徒益甚,生民彫弊,凡以此也。

 

 무릇 덕은 의로운 사내들을 감동시킬 수 있고, 은혜는 병사들에게 죽음을 권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만일 그윽한 자를 내쫓고 밝은 자를 승진 시키고,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며, 사졸을 뽑아서 훈련을 하게하고 무기를 고치고 수선하면서 먼저 말을 잘하는 선비를 파견하여 재앙과 복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만일 저들이 고치지 못하면 순리에 맞는 것으로 거역한 사람들을 토벌하는데, 이와 같이 하면 蕭斧(소부; 큰 도끼 작은 도끼)를 갈아서 朝菌(조균; 새벽에 피다가 해가 뜨면 죽는 버섯)을 자르고 커다란 용광로로 머리카락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듣지 않았다.

 夫德可感義夫,恩可勸死士。今若黜陟幽明,賞罰善惡,簡練士卒,繕修器械,先遣辯士曉以禍福,如其不悛,以順討逆,〈悛,丑緣翻。〉如此,則何異厲蕭斧而伐朝菌,〈戰國時雍門周有是言。莊子曰︰朝菌不知晦朔。《音義》云︰菌,大芝也,天陰生糞上,見日則死。梁簡文云︰菌,欻生之芝也。音其隕翻。〉鼓洪爐而燎毛髮哉!」弗聽。 

 

 

방경백 모 최씨와 어떤 효자.

《南北朝 梁紀7 武 大通 元 (丁未, 527秊)

 

 ⑩. 위의 동청하군(산동 치박)에 잇는 산적떼가 일어나니, 조서를 내려 제주장사 방경백을 동청하 태수로 삼았다. 군에 사는 백성 유간호가 일찍이 방경백에게 무례하게 굴었으므로 온 가족을 들어가지고 도망하자 방경백이 끝까지 잡아서 그를 가두고 그의 아들을 서조연(군 인사담당)으로 임명하여 산적들을 타이르게 하였다. 산적들은 방경백이 예전에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서로 이끌며 나와서 항복하였다.

 ⑩. 魏東清河郡山賊羣起,詔以齊州長史房景伯爲東清河太守。〈宋武帝僑置清河郡於盤陽,屬冀州,後入于魏,爲東清河郡,屬齊州。《五代志》,齊州長山縣,清河、平原二郡併入焉。〉郡民劉簡虎嘗無禮於景伯,舉家亡去,景伯窮捕,禽之,署其子爲西曹掾,令諭山賊。賊以景伯不念舊惡,皆相帥出降。〈掾,俞絹翻。降,戶江翻。〉

 

 방경백의 어머니 최씨는 경서에 능통하였고 밝은 식견이 있었다. 패구의 어떤 부인이 그의 아들이 불효하였던 일을 늘어놓았는데, 방경백이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였더니,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이름을 듣는 것이 얼굴을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산에 사는 백성들이 예의를 모르는데 어찌 심하게 야단칠 만하겠는가?"

 景伯母崔氏,通經,有明識。貝丘婦人列其子不孝,〈貝丘僑縣,亦宋武帝置,屬清河郡。《五代志》,齊州淄川縣,舊曰貝丘,置東清河郡。按前註所謂清河郡置於盤陽者,據魏收《地形志》,宋郡也。《五代志》,長山之清河、平原,雙頭郡也。房景伯所守者,貝丘之東清河也。〉景伯以白其母,母曰︰「吾聞聞名不如見面,山民未知禮義,何足深責!」

 

 마침내 그 어머니를 불러서 그와 더불어 탁자에서 마주하며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아들로 하여금 마루 아래서 시중을 들며 서서 있도록 하여 방경백이 받들어 모시는 것을 보게 하였다. 10일이 되지 않아서 지난 허물을 뉘우치며 돌아가기를 요구하였는데, 최씨가 말하였다.

 "저들이 비록 겉으로는 부끄러워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닐 것이니,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乃召其母,與之對榻共食,使其子侍立堂下,觀景伯供食。未旬日,悔過求還;崔氏曰︰「此雖面慚,其心未也,且置之。」

 

 무릇 20여 일이 되었는데 그녀의 아들이 머리를 조아리다가 피를 흘리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기를 빌었고, 그런 다음에 들어주었는데, 마침내 효도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들렸다. 방경백은 방법수의 집안 조카이다.

 凡二十餘日,其子叩頭流血,母涕泣乞還,然後聽之,卒以孝聞。〈卒,子恤翻。〉景伯,法壽之族子也。〈房法壽見一百三十二卷宋明帝泰始三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