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吾必與此城俱沒 나는 이 성과 함께 물에 잠길 것이오!/立冬節 初候水始氷5日(陰9/26)戊午

solpee 2020. 11. 11. 04:57

《南北朝 梁紀3 武 天監 11 (壬辰, 512)

 

 ⑦. 여름, 5월, 수양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니, 큰물이 성 안으로 들어와서 집들이 모두 물에 잠겼다. 위의 양주자사 이숭이 군대를 몰아서 성벽 위에 머물럿으나, 물이 차는 것이 아직 그치지 않자 마침내 배에 올라타서 여장에 붙어 있었는데, 성에서 잠기지 않은 것은 2판(여장은 성위에 쌓은 담. 판은 목판을 대고 성을 쌓은 후에 목판을 떼어내는데 이때 한 판이라 한다.)이었다.

 ⑦. 夏,五月,壽陽久雨,大水入城,廬舍皆沒。魏揚州刺史李崇勒兵泊於城上,水增未已,乃乘船附於女牆,〈城上短牆曰女牆,所謂陴也,今人謂之女頭。〉 城不沒者二板。

 

 장좌들이 이숭에게 수양을 포기하고 북산(八公山)으로 가서 지키자고 권유하자 이숭이 말하였다.

 "내가 분에 넘치게 번악(藩岳;지방관)이 되어 지키고 있었지만, 덕이 박약하여 재난을 만나 회남 1만 리는 내몸에 매어 있는데, 하루아침에 발을 움직이면 백성들이 와해되고 양주란 땅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게 될까 걱정인데,  어찌 한 몸을 아껴서 왕존(王尊; 前漢 東君太守로 황하가 범람하자 제방에 몸을 묶고 끝까지 지켜내었다.)에게 부끄러울 수 있겠는가!

 將佐勸崇棄壽陽保北山,〈壽陽北山卽八公山。〉 崇曰:「吾忝守藩岳,德薄致災,淮南萬里,繫于吾身,一旦動足,百姓瓦解,揚州之地,恐非國物,吾豈愛一身,取愧王尊!〈漢王尊爲東郡太守,河水盛溢,泛浸瓠子金隄,老弱奔走。尊止宿隄上,吏民爭叩頭救止,尊不肯去。及水盛隄壞,吏民皆奔走,唯一主簿泣在尊旁立不動,而水波稍卻回還,吏民咸壯尊之勇節。〉

 

 다만 여기에 있는 관리들과 백성들은 잘못한 것도 없이 한꺼번에 죽는 것이 애처로우니 뗏목을 묶어서 물을 좇아서 높은 곳으로 가게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벗어날 길을 살필 것이고, 나는 반드시 이 성과 함께 물에 잠길 것이니, 여러분들은 말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소."

 但憐此士民無辜同死,可結筏隨高,人規自脫,〈規,圖也。筏,音伐。〉 吾必與此城俱沒,幸諸君勿言!」

 

 양주의 치중 배현이 성의 남쪽에 살고 있는 백성 수천 가를 거느리고 배를 타고 남쪽으로 달아나서 물을 피하여 높은 지대에 가서, 이숭이 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이어서 스스로 예주 자사라 칭하고, 별가 정조기 등과 함께 임자를 보내어 항복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 마선번이 군대를 파견하여 그곳으로 가도록 하였다.

 揚州治中裴絢帥城南民數千家汎舟南走,避水高原,〈絢,許縣翻。帥,讀曰率。〉 謂崇還北,因自稱豫州刺史,〈自宋以來,置豫州於壽陽。絢乘水聚民,自稱豫州刺史,以求梁應援。〉 與別駕鄭祖起等送任子來請降。馬仙琕遣兵赴之。

 

 이수은 배현이 배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인지 사실인지 헤아리지 못하여 자기 국시랑인 한방흥을 파견하여 한 척의 큰 배를 타고 가서 그를 부르도록 하였다. 배현은 이숭이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원망하면서도 놀라고 한스러워 하면서 회보하여 말하였다.

 "근래 홍수로 말미암아 대단히 어수선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거를 받았습니다. 이제 큰 계획은 이미 이와 같으니 형세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며, 아마도 백성들은 공의 백성이 아니고 관리들도 공의 관리가 아닐 것이니, 바라건데 공께서는 빨리 가셔서 부장들과 병사들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崇聞絢叛,未測虛實,遣國侍郎韓方興單舸召之。〈崇爵陳留公,故有國侍郎。降,戶江翻。琕,部田翻。舸,古我翻。〉 絢聞崇在,悵然驚恨,報曰:「比因大水顚狽,爲衆所推。〈比,毗至翻。〉 今大計已爾,勢不可追,恐民非公民,吏非公吏,願公早行,無犯將士。」

 

 이숭이 사촌동생인 영삭장군 이신 등을 파견하여 수군을 거느리고 가서 그를 토벌하니, 배현은 달아낫다가 촌민에게 붙잡혀서 돌아오는데 위승호에 도착하자 말하였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이공을 뵙겠는가?"

 崇遣從弟寧朔將軍神等將水軍討之,〈將,卽亮翻。從,才用翻。〉 絢戰敗,神追拔其營。絢走,爲村民所執,還,至尉升湖,曰:「吾何面見李公乎!」

 

 마침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 배현은 배숙업의 형의 손자이다. 정조기 등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이숭이 표문을 올려서 수재가 든 것을 이유로 주의 임무를 해임시켜 달라고 요청 하였으나,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乃投水死。絢,叔業之兄孫也。〈裴叔業降魏見一百四十三卷,齊東昏侯之永元二年。〉 鄭祖起等皆伏誅。崇上表以水災求解州任,魏主不許。

 

 이숭은 마음이 깊고 관대하고 후덕하여 방략을 가지고 있었고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어서, 수춘에있는 10년 동안에 항상 건장한 병사 수천 명을 양성하여, 도적들이 침입해 오면 막아서 격파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서, 이웃하고 잇는 도적들은 그를 '누워있는 호랑이'라고 말하였다.,

 崇沈深寬厚,〈沈,持林翻。〉 有方略,得士衆心,在壽春十年,〈天監六年魏主命李崇鎭壽春,至是年才七年耳,至十五年乃徵拜尚書左僕射,適十年,史終言之。〉 常養壯士數千人,寇來無不摧破,鄰敵謂之「臥虎」。

 

 황상이 여러 번 반간을 보내어 그를 의심하였지만, 또 이숭에게 거기대장군·개부의동삼사·만호군공을 수여하였으며, 여러 아들들은 모두 현후가 되었고 황제는 평소부터 그의 충성과 독실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맡겨두고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다.

 上屢設反間以疑之,〈間,古莧翻。〉 又授崇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萬戶郡公,諸子皆爲縣侯;而魏主素知其忠篤,委信不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