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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성을 단성으로 고치다./白露節群鳥養羞4日(음8/4)丙寅.

solpee 2020. 9. 20. 02:45

南北朝 宋紀 武 永初 3年》〈壬戌, 422年

 

 ⑮. 魏황제가 寒食散(石鍾乳, 紫石英, 白石英, 石硫磺,赤石脂를 조합하여 제조, 4세게 경 귀족들이 애용. 젊음이 지속되고 미백효과가 있으나, 독성이 강하고 당뇨가 심해지며, 조울증 등 정신질환이 나타났다)을 복용하였는데, 몇 년을 이어서 약의 성능이 나타났으며, 재앙과 이변이 누차 출현하여서 자못 스스로 심히 근심하였다.

 ⑮. 魏主服寒食散,頻年藥發,災異屢見,見,賢遍翻。頗以自憂。

 

 중사를 파견하여 백마공 최호에게 몰래 물었다.

 "요사스런 일식이 趙와 代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다. 짐의 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으니 어느 날 아침에 不諱(꺼리지 않고 말한다는 뜻으로 죽는다는 말이다)할 일이 생길까 두려운데, 여러 아들들이 나란히 어리니 장차 어찌할까? 그러니 나를 위하여 내가 죽은 후의 계책을 생각하여주시오!"

 최호가 말하였다.

 遣中使密問白馬公崔浩曰:使,疏吏翻。「屬者日食趙、代之分。屬者,猶言比者、近者。屬,之欲翻。分,扶問翻。朕疾彌年不愈,恐一旦不諱,諸子並少,少,詩照翻。將若之何?其爲我思身後之計!」爲,于僞翻。浩曰:

 

 "폐하께서는 춘추가 강령하실 때(탁발사 31세)이니 지나다 보면 나으실 것이지만, 반드시 부들이하다면 장님 같은 생각을 말씀드리게 해주십시오. 성스러운 시대에 용이 나타나서 황태자를 받들지 않았는데, 이리하여서 영흥의 초기에는 사직이거의 위태로워졌었습니다. 지금 마땅히 동궁을 속히 세우시고, 현명한 공경을 뽑아서 사부로 삼고, 신뢰하는 신하를 좌우에 두어서 빈객과 친구를 삼으셔서, 들어가서는 만기를 총괄하고 나가서는 군사업무를 총괄하게 하여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폐하께서는 우아하게 놀면서 일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어 수면을 보양할 수 있습니다.

 만세 후에는 나라에는 성숙한 군주가 있고, 백성은 돌아갈 곳이 있으며, 간악한 사람은 바라기를 그치니, 재앙이 스스로 생길 것이 없습니다. 황제의 아들 탁발도는 나이가 장차 周星(목성을 12년마다 관찰 하였으니 별이 돌아왔으니 1周 즉 12년을 말한다.)이 되고 밝고 온화하며, 아들을 세울 때 장자를 세우는 것은 예의 큰 도리인데, 만약 반드시 성인이 되기를 기다린 연후에 이를 택한다고 한다면, 천륜을 거꾸로 하여 뒤섞여지니 혼란을 부르는 길입니다."

 「陛下春秋富盛,行就平愈;必不得已,請陳瞽言。自聖代龍興,不崇儲貳,是以永興之始,社稷幾危。事見一百十五卷晉安帝義熙五年。幾,居希翻,又音祁。今宜早建東宮,選賢公卿以爲師傅,左右信臣以爲賓友;入總萬機,出撫戎政。如此,則陛下可以優遊無爲,頤神養壽。萬歲之後,國有成主,民有所歸,姦宄息望,禍無自生矣。皇子燾年將周星,歲星十二年一周天。明叡溫和,立子以長,禮之大經,若必待成人然後擇之,倒錯天倫,則召亂之道也。」倒錯,謂廢長立少。長,知兩翻;下同。

 

 위황제가 다시 남평공 장손숭에게 물었다. 대답하였다.

 "장자를 세우는 것이 순리이며, 현명한 사람을 두면 사람이 복종하는데 탁발도는 장자이고 또 현명하니 하늘이 명한 바입니다."

 황제가 그 말을 따라서 태평왕 탁발도를 세워서 황태자로 삼았고, 그에게 정전에 살면서 조회에나가도록 하였으며, 나라의 부주군으로 삼았다.

 魏主復以問南平公長孫嵩。復,扶又翻。對曰:「立長則順,置賢則人服;燾長且賢,天所命也。」帝從之,立太平王燾爲皇太子,使之居正殿臨朝,爲國副主。朝,直遙翻。

 

 장손숭과 산양공 해근·복신공 안동을 좌보로 삼고 동상에 앉아서 서쪽을 향하도록 하였으며, 최호와 태위 목관· 산기상시인 대 사람(선비족) 구퇴를 우필로 삼아서 서상에 앉아서 동쪽을 향하게 하여, 백관이 모두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황제는 자리를 피하여서 서궁에 머물며 때때로 숨어서 그것을 엿보았는데, 그가 결단하는 것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시중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以長孫嵩及山陽公奚斤、魏收《官氏志》:後魏獻帝弟爲達奚氏,孝文改爲奚氏。北新公安同爲左輔,坐東廂,西面;崔浩與太尉穆觀、散騎常侍代人丘堆爲右弼,後魏孝文以獻帝第五兄敦丘氏爲丘氏。坐西廂,東面;百官總己以聽焉。坐東廂者西面,坐西廂者東面,皆朝拱皇太子。帝避居西宮,時隱而窺之,自隱蔽其身而窺之也。聽其決斷,斷,丁亂翻。大悅,謂侍臣曰:

 

 "장손숭은 덕망을 쌓은 훈구대신이며 4대를 두루 섬겼고 공로는 사직을 보존하였으며, 해근은 말을 잘하고 지모가 있으며 명성이 원근에 소문났고, 안동은 세속의 사정을 깨달아 알고 일에 밝고 익숙하며, 목관은 정치를 행하는 요령에 통달하고 나의 뜻을 알며, 최호는 견문이 넓고 암기력이 좋으며 하늘과 사람을 세밀하게 살피고, 구퇴는 비록 큰 쓰임새는 없으나 공적인 일에서 오직 근신한다. 이 여섯 명으로 태자를 도우며 바로잡게 하였으니, 나는 너희들과 더불어 사방의 경계를 순행하며 반역자를 정벌하고 복종하는 자를 부드럽게 대해주면 천하에서 뜻을 얻기에 충분하다."

 「嵩宿德舊臣,歷事四世,功存社稷;嵩事昭成帝及道武帝、明元帝及太子燾爲四世。斤辯捷智謀,名聞遐邇;聞,音問。同曉解俗情,明練於事;觀達於政要,識吾旨趣;浩博聞強識,精察天人;堆雖無大用,然在公專謹。以此六人輔相太子,吾與汝曹巡行四境,伐叛柔服,足以得志於天下矣。」解,胡買翻。行,下孟翻。

 

 장손숭은 본성이 발발이고, 해근은 성이 달해이며, 목관은 성이 구목릉이고, 구퇴는 성이 구돈이다. 이때 위의 여러 신하들 중에 대 이북에서 나온 사람들은 성이 대부분 복성이었는데, 고조(文帝 拓跋宏 494년 앞으로 72년 후)가 낙양으로 옮기고 나서 비로소 모두 그것을 고쳤다. 舊史에서는 그것이 번잡하고 알기 어려운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모두 후대의 성을 좇아서 간편하고 쉽도록 하였으며, 지금 이를 따른다.

 嵩實姓拔拔,斤姓達奚,觀姓丘穆陵,堆姓丘敦。是時,魏之羣臣出於代北者,姓多重複,及高祖遷洛,始皆改之。舊史惡【章:甲十六行本「惡」作「患」;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其煩雜難知,故皆從後姓以就簡易,今從之。

 

 위황제는 또전동사부 유계·문하주사인 대 사람 고필·직랑인 도하 사람 노로원이 충성스럽고 공손하고 근신하여 그로 하여금 동궁을 곁에서 섬기고 기밀 업무를 나누어 맡고 사령을 선포하거나 접수하도록 하였다. 태자는 총명하고 큰 도량을 가졌는데 여러 신하들이 때때로 의심스러운 바를 상주하면 황제가 말하였다.

 "이것은 내가 알바가 아니고 마땅히 너희들 나라의 주군이 이것을 결정하도록 하라."

 魏主又以典東西部劉絜、門下奏事代人古弼、重,直龍翻。惡,烏路翻。易,以豉翻。道武天賜四年,置侍官,侍直左右,出納詔命。《魏書‧官氏志》:內入諸姓,吐奚氏爲古氏。直郎徒河盧魯元拓跋與慕容、段氏同出鮮卑,其後強盛,謂東種爲徒河。《官氏志》:內入諸姓,吐伏盧氏爲盧氏。忠謹恭勤,使之給侍東宮,分典機要,宣納辭令。太子聰明,有大度;羣臣時奏所疑,帝曰:「此非我所知,當決之汝曹國主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