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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연황제 고운의 시해/白露節中候玄鳥歸(재비 강남 간다)初日(음7/25)戊午

solpee 2020. 9. 11. 17:09

《晉紀37 安 義熙 5年》〈己酉, 409

 

 ㉑. 북연황제 고운이 스스로 공로와 은덕이 없는 데도 대위에 머무른다고 생각하여 속으로는 위태하고 두렵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므로, 항상 장사를 기르고 양성하여 심복과 조아로 삼았다. 총애를 받던 신하 이반과 도인이 오로지 궁궐의 호위만을 맡았는데, 상으로 내려진 것이 거만을 헤아렸으며, 의복과 식사, 생활이 모두 그와 더불어 같이 하였고 이반과 도인의 뜻과 원하는 것은 만족할 줄 몰랐고, 오히려 원망하는 감정이 있었다.

 ㉑. 北燕王雲自以無功德而居大位,內懷危懼,常畜養壯士以爲腹心、爪牙。畜,吁玉翻。寵臣離班、桃仁專典禁衞,離、桃,皆姓也;班、仁,其名。賞賜以巨萬計,衣食起居皆與之同,而班、仁志願無厭,厭,於鹽翻。猶有怨憾。

 

 겨울, 10월 13일에 고운이 동당에 나갔는데, 이반과 도인이 칼을 품고 종이를 들어와 아뢸 것이 잇다고 말하였다. 이반이 칼을 빼어서 고운을 치자 고운이 책상으로 그것을 막으니, 도인이 옆으로 좇아가서 고운을 쳐서 시해하였다.

 풍발이 홍광문에 올라 변고를 보니, 장하독 장태와 이상이 풍발에게 말하였다.

 "이 녀석들의 위세가 어디까지 이를 것인지, 청컨데 공을 위하여 그들의 목을 베게 하소서!"

 冬, 十月, 戊辰,雲臨東堂,班、仁懷劍執帋而入,帋,與紙同,通俗書也。稱有所啓。班抽劍擊雲,雲以几扞之,仁從旁擊雲,弒之。高雲以勇力發身,叨居君位,自謂非壯士以爲翼衞不足以防其身,豈知小人之難養也。是以古之綴衣虎賁,左右攜僕,必用吉士,其慮患誠深遠也。雲得燕見上卷三年。

馮跋升洪光門以觀變,帳下督張泰、李桑言於跋曰:「此豎勢何所至,請爲公斬之!」爲,于僞翻。

 

 마침내 분발하여 칼을 들고 내려가서 이상이 이반을 서문에서 죽이고, 장태가 도인을 정중에서 죽였다. 무리들이 풍발을 추대하여 주군으로 삼자, 풍발은 그의 동생인 번양공 풍소불에게 양보하니, 풍소불이 옳지 않다고 하였다. 풍발이 마침내 창려에서 천왕에 즉위하고, 대사면령을 내리며,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陳씨가 姜을 대신하고서 齊나라의 이름을 고치지 않았으니, 의당 바로 나라이름을 '燕'이라 해야 한다."

 연호를 태평이라 고쳤으며, 고운의 시호를 혜의황제라고 하였다.

 乃奮劍而下,桑斬班于西門,泰殺仁于庭中。衆推跋爲主,跋以讓其弟范陽公素弗,素弗不可。跋乃卽天王位於昌黎,《載記》:馮跋,字文起,長樂信都人,其先畢萬之後也;萬之子孫有食采馮鄕者,因氏焉。大赦,詔曰:「陳氏代姜,不改齊國,周師尚父始封於齊,姜姓也。戰國時,齊太公田和,陳敬仲之後也,篡姜氏之後而取其國,仍號曰齊。宜卽國號曰燕。」

 改元太平,諡雲曰惠懿皇帝。

 

 풍발이 어머니 장씨를 높여 태후로 삼고, 아내 손씨를 세워서 황후로 삼고, 아들 풍영을 태자로 삼고, 범양공 풍소불을 거기대장군·녹상서사로 삼고, 손호를 상서령으로 삼고, 장흥을 좌복야로 삼고, 급군공 풍홍을 우복야로 삼고, 광천공 풍만니를 유평이주목으로 삼으며, 상곡공 풍유진을 병청이주목으로 삼았다.

 跋尊母張氏爲太后,立妻孫氏爲王后,子永爲太子,以范陽公素弗爲車騎大將軍、錄尚書事,孫護爲尚書令,張興爲左僕射,汲郡公弘爲右僕射,廣川公萬泥爲幽、平二州牧,上谷公乳陳爲幷、青二州牧。

 

 풍소불은 어릴 때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었으며 거리끼는 것이 없이 마음대로 굴었는데, 일찍이 상서좌승 한업에게 혼인을 요청하었지만 한업이 이를 거절하였다. 재보의 지위에 오르자 한업을 예우함이 더욱 두터웠고, 옛 가문들을 거듭 발탁하는 것을 좋아하고, 겸손하고 공순하며 검소하고절약하며 몸으로 아래 사람을 인솔하니, 백관들은 그를 꺼렸지만, 논의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재상다운 풍도가 있음을 아름답게 여겼다.

 素弗少豪俠放蕩,少,詩照翻。俠,戶頰翻。蕩,徒浪翻。嘗請婚於尚書左丞韓業,業拒之。及爲宰輔,待業尤厚;好申拔舊門,好,呼到翻。謙恭儉約,以身帥下,帥,讀曰率。百僚憚之,論者美其有宰相之度。溫公作《通鑑》,雖相小國者,苟有片善,必因舊史而表章之,以言爲輔之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