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驟勝而驕必亡[zhòu shèng ér jiāo bì wáng]/ 處暑節中候天地始肅2日(음7/11)甲辰

solpee 2020. 8. 29. 17:08

《晉紀28 武帝 太元 10年(乙酉, 385)

 

 ㉒. 윤5월,4일에 영왕 모용수가 상산(석가장)에 이르러서 적성을 행당(정주 서쪽)에서 포위하였다. 대방왕 모용좌에게 명령하여 용성(노룡)에서 진수하도록 하였다. 6월에 고구리가 요동(우안)을 침공하였으며 모용좌가 사마 학경을 파견하여서 군사를 거느리고 이들을 구원하도록 하였으나 고구리에게 패하였으며 고구리는 마침내 요동(우안)과 현토(풍윤)를 함락시켰다.

 ㉒. 閏月,庚戌,燕王垂至常山,圍翟成於行唐。命帶方王佐鎭龍城。六月,高句麗寇遼東,句,如字,又音駒。麗,力知翻。佐遣司馬郝景將兵救之,爲高句麗所敗,敗,補邁翻。高句麗遂陷遼東、玄菟。自此燕不能勝高句麗。菟,同都翻。 

 

 ㉜.후진왕 요장이 사람을 시켜 진왕 부견에게 전국새를 요구하면서 말하였다.

 "나 요장은 다음 역수에 호응하는 것이니 은혜를 베풀어줄 수 있을 것이오."

 부견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질책하였다.

 "어린 강족 놈이 감히 천자를 핍박하느냐? 5호의 순서에서 보아도 너 같은 강족의 이름은 없다. 옥새는 이미 晉에 보냈으니 얻을 수 없다."

 ㉜. 後秦王萇使求傳國璽於秦王堅璽,斯氏翻。曰:「萇次應曆數,可以爲惠。」堅瞋目叱之曰:「小羌敢逼天子,五胡次序,無汝羌名。胡、羯、鮮卑、氐、羌,五胡之次序也。無汝羌名,謂讖文耳。姚萇自謂次應曆數,堅故亦以讖文爲言。瞋,七人翻。璽已送晉,不可得也!」

 

 요장이 다시 우사마 윤위를 파견하여 부견에게 유세하고 선양으로 대신하게 하기를 바라자 부견이 말하였다.

 "선양으로 교대하는 것은 성현의 일인데 요장은 반도이니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부견이 윤위와 대화하면서 윤위에게 물었다.

 "짐의 조정에서 어떤 관직이었는가?"

 윤위가 말하였다.

 "상서령사입니다."

 부견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경은 왕경락(왕맹)의 무리이고 재상의 자질을 가졌는데, 짐이 경을 몰랐으니 망해도 마땅하다."

 萇復遣右司馬尹緯說堅,求爲禪代;復,扶又翻。說,輸芮翻。堅曰:「禪代,聖賢之事,姚萇叛賊,何得爲之!」堅與緯語,問緯:「在朕朝何官?」朝,直遙翻。緯曰:「尚書令史。」後漢以來尚書有令史十八人,秩二百石。堅歎曰:「卿,王景略之儔,宰相才也,而朕不知卿,宜其亡也。」

 

 부견이 스스로 평생 은정을 갖고 요장을 대우했던 까닭에 더욱 그에게 화를 내고 자주 요장을 욕하며 죽여주기를 요구하면서 장부인에게 말하였다.

 "어찌 강노에게 내 아이들을 욕보이게 할 수 있는가?"

 마침내 먼저 부보와 부금을 죽였다.

 26일에 요장이 사람을 보내어 부견을 신평에 있는 사원에서 교살하였다. 장부인과 중산공 부선은 모두 자살하였다. 후진의 장수와 병사가 모두 그를 위하여 애통해 하였다. 요장이 부견의 명성을 감추려고 하여 부견의 시호를 장렬천황이라 하였다.

 堅自以平生遇萇有恩,尤忿之,數罵萇求死,數,所角翻。謂張夫人曰:「豈可令羌奴辱吾兒。」乃先殺寶、錦。堅自知身死之後,女必當歸姚萇也。辛丑,萇遣人縊堅於新平佛寺。年四十八。張夫人、中山公詵皆自殺。後秦將士皆爲之哀慟。爲,于僞翻。萇欲隱其名,諡堅曰壯烈天王。

 

 신 사마광이 말하였다.

 "평론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황 부견의 죽음을 모용수와 요장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신만은 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허소는 위의 무제가 평화 시기에는 능력 있는 신하이고 난세에는 간교한 영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臣光曰:論者皆以爲秦王堅之亡,由不殺慕容垂、姚萇故也。臣獨以爲不然。許劭謂魏武帝治世之能臣,亂世之姦雄。事見五十八卷漢靈帝中平元年。治,直吏翻。

 

 부견에게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그 올바른 길을 잃지 않도록 햇다면 모용수와 요장은 모두 진의 능력잇는 신하이지 어찌 난을 일으킬 수 있었겠습니까? 부견이 망한 이유는 많이 승리했던 것으로 말미암아 교만해져서 입니다.

 使堅治國無失其道,治,直之翻。則垂、萇皆秦之能臣也,烏能爲亂哉!堅之所以亡,由驟勝而驕故也。

 

 위 문후가 이극에게 오가 망한 이유를 묻자 대답하였습니다.

 "數戰數勝 자주 싸우고 자주 이겨서 입니다."

 문후가 말하였습니다.

 "數戰數勝은 복인데 무슨 이유로 망하는가?"

 대답하였습니다.

 "자주 싸우면 백성은 고달프고 자주 이기면 군주는 교만해지는데, 교만한 군주가 피곤한 백성을 부리면서 아직 망하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진왕 부견이 이를 닮았습니다.

 魏文侯問李克,吳之所以亡,對曰:「數戰數勝。」文侯曰:「數戰數勝,國之福也,何故亡?」對曰:「數戰則民疲,數勝則主驕,數,所角翻。以驕主御疲民,未有不亡者也。」秦王堅似之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