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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休等戚,禍福共之[tóng xiū děng qī,huòfú gòng zhī]/大暑節末候大雨始行5日(음6/17)辛巳

solpee 2020. 8. 5. 10:25

《韓紀60 孝獻帝 建安 24 (己亥, 219)

 

 ⑦. 가을, 7월에 유비가 스스로 한중왕이라 칭하고, 면양에 단장을 설치하여 군대를 지열시키고 무리들을 배열시키며, 여러 신하들이 배석한 가운데 주장 읽기를 마치고, 마침내 절하며 옥새와 인수를 받고 왕관을 썼다. 이어서 역참을 통하여 배장을 드리고, 임시로 받았던 좌장군·의성정후의 인수를 올려서 반환하였다

 ⑦. 秋,七月,劉備自稱漢中王,設壇場於沔陽,沔陽縣,屬漢中郡。陳兵列衆,羣臣陪位,讀奏訖,乃拜受璽綬,御王冠。璽,斯氏翻。綬,音受。王冠,遠遊冠也。因驛拜章,上還所假左將軍、宜城亭侯印綬。左將軍及宜城亭侯,皆操所表授也。上,時掌翻。

 

 아들 유선을 세워서 완태자로 삼았다. 아문장군인 의양 사람 위연을 발탁하여 전원장군으로 삼고, 한중 태수의 직책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유비가돌아와 성도를 치소로 삼고, 허정을 태부로 하고, 법정을 상서령으로 삼고, 관우를 전장군으로 삼고, 장비를 우장군으로 삼고, 마초를 좌장군으로 삼고, 황충을 후장군으로 삼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관위를 차등 있게 올려주었다.

 立子禪爲王太子。拔牙門將軍義陽魏延爲鎭遠將軍,牙門、鎭遠,皆劉備創置將軍號。領漢中太守,以鎭漢川。魏文帝分南陽郡立義陽郡,又立義陽縣屬焉;此在延入蜀之後,史追書也。鎭遠將軍,蓋備所創置。宋白曰:義陽,唐爲申州,宋爲信陽軍。備還治成都,以許靖爲太傅,法正爲尚書令,關羽爲前將軍,張飛爲右將軍,馬超爲左將軍,黃忠爲後將軍,前、後、左、右將軍皆漢官。餘皆進位有差。

 

 익주의 전부사마인 건위 사람 불시(費詩)를 파견하여 즉시 관우에게 인수를 주었는데, 관우는 황충의 지위가 자기와 대등하다는 소식을 듣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대장부는 끝내 늙은 병사와 같은 반열에 있을 수 없다."

 받고 절하려고 하지 않았다.

 불시가 관우에게 말하였다.

 遣益州前部司馬犍爲費詩卽授關羽印綬,犍,居言翻。費,父沸翻。羽聞黃忠位與己並,怒曰:「大丈夫終不與老兵同列!」不肯受拜。詩謂羽曰:

 

 "무릇 왕업을 세우는 것에는 쓰이는 것이 한결같지가 않은 법이오. 옛날 소하·조참은 고조와 젊어서는 친구였고, 진평·한신은 망명하여 뒤에 도착하였는데 그 반열을 논의하면서는 한신이 가장 위에 있게 하였지만 아직 소하와 조참이 이것을 가지고 원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소.

 「夫立王業者,所用非一。昔蕭、曹與高祖少小親舊,少,詩照翻。而陳、韓亡命後至;論其班列,韓最居上,謂陳平、韓信自楚而來,韓信王而蕭、曹侯,故曰韓最居上。未聞蕭、曹以此爲怨。

 

 지금 한중왕이 한때의 공로를 가지고서 한실을 높이고 있소. 그러나 속으로 가볍고 무겁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 그대에게 군후와 같겠소? 또한 왕과 군후는 비유하자면 오히려 한 몸이니, 함께 휴식하고 같이 슬퍼하고 화와 복을 함께하는 것이오. 어리석은 저는 군후께서 의당 관호의 높고 낮음이나, 작록의 많고 적음을 마음속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今漢中王以一時之功隆崇漢升;然意之輕重,寧當與君侯齊乎!言備以一時使忠與羽班,而意之輕重則不在此。曹操嘗表羽爲漢壽亭侯,故稱之爲君侯。且王與君侯譬猶一體,同休等戚,禍福共之;愚謂君侯不宜計官號之高下、爵祿之多少爲意也。

 

 저는 일개의 심부름꾼이며, 함명하는 사람이니, 군후께서 절하며 받지 않는다면 이대로 돌아갈 것이며 단지 서로 이러한 해옹을 애석하게 여기며 후회함이 있을까만 두려울 뿐입니다."

 관우가 크게 느끼고 깨달아 즉시 황급히 받고 절하였다.

 僕一介之使,使,疏吏翻。銜命之人,君侯不受拜,如是便還,但相爲惜此舉動,爲,于僞翻。恐有後悔耳。」羽大感悟,遽卽受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