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符都誌 第27章 /淸明節 末候 虹始見 柳花風 2日 (음3/23)戊子

solpee 2020. 4. 15. 04:30

符都誌 第27章 小符都誌

 

 은의 망명자 기자가, 패한 군사와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의 법을 행하고, 오행 삼정을 써서, 홍범 무함을 시행하였다. 천웅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殷之亡人箕子 率敗軍難民逃來於符都之西 爲名 行唐虞之法 用五行三正 施洪範巫咸天雄之道 固不相容.

 

 은의 군사와 백성이 무력으로 부도의 남은 백성을 억압하므로, 그들은 마침내 명지의 단을 봉해버리고, 동해의 물가로 피하여 살았다. 즉 옛날의 사례벌의 빈터였다. 사례벌은 긴 깃발이니, 광야에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 먼 곳에서 살면서 지키는 사람에게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殷之軍民 武壓符都之遺衆 遺衆 遂封禁明地之壇 避住於東海之濱 卽昔世斯禮筏之空地也 斯禮筏者 長旆 曠野之謫人 朝揭暮藏 使遠居之守者 知其不逃也.

 

 곧 육촌을 설치하고, 인접한 종족들과 나누어 함께 지키되, 각각 한이라 하고, 보위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의 마한과 남의 변한과 동의 진한의 삼한이 부족의 자치를 행하고 선세의 도를 굳게 지켜,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보위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乃設六村與隣接諸族 分擔共守 各稱韓而保之 韓者保衛之意 北馬南弁東辰之三韓 自行部族之治固守先世之道 爾來千年之間 不納殷箕之法 專以保防爲事殆無餘力.


 

 이 때 하나라 땅의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 혼란이 삼한에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지켜내기가 장차 위태로우니, 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마침내 경계를 정하고, 요새를 세워 혁거세를 추대하여, 다스리는 일을 위임하였다. 다른 종족들도 역시 수령을 추대하여 방비하였다.

 於是 夏土爭奪之風 漸次激甚動搖混亂 波及於三韓 是時 六村之人相謀 以爲西禍漸迫 保守將危不可不統合防備 遂限境設塞 推擧赫居世 委任統御之事 諸族 亦擧首領而防備.

 

 남은 백제요, 북은 고구리였다. 고구리가 곧 북쪽 성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지켜내었다.

 南曰百濟 北曰高句麗 高句麗仍卽恢復北堡之地 驅遂(逐)西侵之人 完保其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