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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達節,次守節,下失節 / 草木萌動 李花風 末日(음2/10).

solpee 2020. 3. 4. 05:44

 

《漢紀50 孝靈帝 中平 4 (丁卯, 187)

 

 3. 한수가 변장과 북궁백옥, 이문후를 살해하고, 10여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진격하여 농서를 포위하자 태수 이상여가 반란을 일으켜 한수와 더불어 연합하고 화의하였다.

 3. 韓遂殺邊章及北宮伯玉、李文侯,擁兵十餘萬,進圍隴西,太守李相如叛,與遂連和。

 

 양주 자사 경비가 여섯 군의 병사를 인솔하여 한수를 토벌하였다. 경비는 치중 정구에게 일을 맡겼는데, 정구가 간사하게 이익을 챙겨서 병사와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였다. 한양 태수 부섭이 경비에게 말하였다.

 "사군이 정무를 관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교화의 방향을 알지 못합니다.

 涼州刺史耿鄙率六郡兵討遂。鄙任治中程球,《百官志》:州刺史置從事史,員職略與司隸同,無都官從事;其功曹從事爲治中從事,主州選署及衆事。球通姦利,士民怨之。漢陽太守傅燮謂鄙曰:「使君統政日淺,民未知敎。

 

 도적들은 장차 많은 군대가 이르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드시 만 사람이 한 마음으로 뭉치고, 변방에 있는 병사 대부분이 용감하니 그 날카로운 칼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새로 합친 무리는 상하가 화합하지 못하니, 만일 안에서 변고라도 있으면 비록 후회해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賊聞大軍將至,必萬人一心,邊兵多勇,其鋒難當;而新合之衆,上下未和,萬一內變,雖悔無及。

 

 군사를 쉬게 하고 덕을 베풀며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는 것만 뭇하니, 도적은 느긋하고 풀어지게 되어 반드시 우리가 겁을 낸다고 생각하고, 많은 악한 놈들이 기세를 다투게 될 것이니 그들이 흩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연후에 이미 가르침을 받은 백성을 이끌고 흩어진 도적을 토벌하면 그공을 앉아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不若息軍養德,明賞必罰,賊得寬挺,賢曰:挺,解也,又緩也。必謂我怯,羣惡爭勢,其離可必。然後率已敎之民,討成離之賊,其功可坐而待也!」

 

 경비가 따르지 않았다. 여른, 4월에 경비가 적도에 이르자 주의 별가가 배반하고 적에게 호응하여 먼저 정구를 살해하였으며 다음으로 경비를 해치니 도적이 마침내 전진해서 한양을 포위하였다. 성 안에 병사는 적었고 식량은 떨어졌으나 부섭은 굳건히 지켰다.

 鄙不從。夏,四月,鄙行至狄道,州別駕反應賊,別駕從事,刺史行部,則奉引錄衆事。先殺程球,次害鄙,賊遂進圍漢陽。城中兵少糧盡,燮猶固守。

 

 때마침 북지의 호족인 기병 수천 명이 도적을 쫓아서 군을 공격하였지만, 모두 옛날부터 부섭이 베푼 은혜를 품고 있어서 함께 성 밖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섭을 호송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부섭의 아들 부간이 열세 살이었는데, 부섭에게 말하였다.

 時北地胡騎數千隨賊攻郡,皆夙懷燮恩,共於城外叩頭,求送燮歸鄕里。傅燮,北地靈州人。燮子幹,年十三,言於燮曰:

 

 "국가가 혼란하여 마침내 대인에게 조정에서 몸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군사로는 스스로 지키기가 부족하니 마땅히 강족과 호족의 청을 들으시어 고향으로 귀환하시고, 천천히 방법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보필하십시오!"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부섭이 분개하며 탄식하였다.

「國家昏亂,遂令大人不容於朝。朝,直遙翻。今兵不足以自守,宜聽羌、胡之請,還鄕里,徐俟有道而輔之。」言未終,燮慨然歎曰: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을 것임을 알아라. 성인은 절의에 통달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절의를 지키는 것이다※. 은나라 주왕이 포악하였지만 백이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 내가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호연의 의지를 잘 키울 수는 없었지만 봉록을 먹으면서 또한 이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겠는가! 내가 가면 어디로 간단 말이냐? 반드시 여기서 죽을 것이다! 너는 재주와 지모가 있으니 노력하고 노력하도록 하라!

 「汝知吾必死邪!聖達節,次守節。※.《左傳》〈成公〉15年 "子臧辭曰: 曹公子臧曰:聖達節,次守節,下失節。(자장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고서에 이르기를 가장 성스러운 것은 절의에 통달하는 것이오, 그 다음은 절의를 지키는 것이며, 가장 낮은 것은 절의를 잃는 것이다)」殷紂暴虐,伯夷不食周粟而死。吾遭世亂,不能養浩然之志,食祿,又欲避其難乎!難,乃旦翻。吾行何之,必死於此!汝有才智,勉之勉之!

 

 주부 양회는 나의 정영이니라!"

 

 主簿楊會,吾之程嬰也。」《史記》,趙朔娶晉成公姊爲夫人。晉景公三年,屠岸賈殺朔,滅其族。朔妻有遺腹,走公宮。朔客公孫杵臼謂客程嬰曰:「胡不死?」嬰曰:「朔之婦有遺腹,卽幸而生男,吾奉之;卽女也,吾徐死耳!」居無何,朔妻生男。屠岸賈聞之,乃索於公宮。朔妻置兒於絝中,祝曰:「趙宗滅乎,若啼;卽不滅,若無聲。」及索兒,竟無聲。程嬰曰:「今一索不得,後必復索之。」杵臼乃取他嬰兒,負之匿山中。諸將攻殺杵臼幷兒,然趙孤兒乃在程嬰所,卽趙武也。居十五年,景公乃立趙武爲卿,而復其田邑。(정영은 춘추전국시대의 晉나라 사람이다. 《사기》에 의하면 '진나라의 경인 조삭은 진성공의 누이를 부인으로 삼았다. 진나라 경공 3년BC597년 도안가가 조삭을 살해하고 그 친족을 멸하였다. 조삭의 처는 조삭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공궁으로 도망하였다. 조삭의 빈객이었던 공손저구가 또 다른 조삭의 빈객인 정영에게 물었다. "호가 죽지 않았습니까?" 정영이 대답하였다. "조삭의 부인이 임신을 하고 있는데 만일 다행히 사내아이를 낳으면 받들어 모실 것이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내가 없애버릴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삭의 처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도안가가 이 소식을 듣고 이내 공궁을 수색하였다. 조삭의 처가 아이를 바지 속에 넣고 기도하였다. "조씨의 집안을 멸망하고자 한다면 아이를 울게 하시고 멸망시키지 않으려 한다면 아이를 울지 말게 하십시오." 아이를 찾았지만 결국 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정영이 말하였다. "지금 한 번 수색하여 찾지 못하였으니 후에 반드시 다시 수색할 것이오." 공손저구가 이내 다른 아이를 데리고 산중으로 숨었다. 제장들이 공손저구를 공격하여 아이와 함께 살해하였다. 그러나 조삭의 고아는 정영의 집에 있었다. 이 아이가 조무이다. 15년이 지난 후 경공이 조무를 세워 경으로 삼았고 그 전읍을 회복시켜 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섭은 자신의 아들에게 양회는 정영과 같은 인물이니 자신이 죽은 이후에 믿고 따르라고 충고한 것이다)

 

 

 적도 사람 왕국이 옛 주천 태수 황연에게 부섭을 설득하도록 하였다.

 "천하는 이미 한나라가 다시 소유할 것이 아니니, 부군께서는 차라리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실 뜻은 없으십니까?"

 부섭이 검을 어루만지며 황연을 질책하였다.

 "부신을 나눈 신하인데 도리어 적이 되라는 말이냐?"

 狄道人王國使故酒泉太守黃衍說燮曰:「天下已非復漢有,府君寧有意爲吾屬帥乎?」帥,所類翻。燮按劍叱衍曰:「若剖符之臣,反爲賊說邪!」

 

 

 마침내 좌우를 지휘하여 병사를 진격시키고 진지에 가서 싸우다가 죽었다.

 경비의 사마인 부풍 사람 마등 또한 병사를 이끌고 배반하여 한수와 더불어 합치고, 공동으로 왕국을 추대하여 주군으로 삼고 삼보로 쳐들어와 노략질 하였다.

 遂麾左右進兵,臨陳戰歿。說,輸芮翻。爲,于僞翻。陳,讀曰陣。《考異》曰:袁《紀》在明年五月。今從范《書》。耿鄙司馬扶風馬騰亦擁兵反,與韓遂合,共推王國爲主,寇掠三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