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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巾賊의 跋扈 /草木萌動 李花風 4日(음2/9).

solpee 2020. 3. 3. 05:18

《漢紀50 孝靈帝 光和 6 (癸亥, 183)

 

 6. 애초 거록 사람 장각이 황제와 노자를 받들어 섬기며 요망한 술법을 가르치면서 '太平道' 라고 불렀다. 주문을 외며 부수(부적을 태운 물)로써 병을 치료하였는데, 병든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을 뉘우치며 머리 숙여 절하도록 하였다. 어떤 때에는 병이 나아 무리들이 다 같이 신으로 섬기고 그를 믿었다.

 6. 初,鉅鹿張角奉事黃、老,以妖術敎授,號「太平道」。呪符水以療病,妖,於驕翻。呪,職救翻。令病者跪拜首過,首,式救翻。今道家所施符水,祖張道陵,蓋同此術也。或時病愈,衆共神而信之。

 

 장각은 제자들을 나누어 파견하여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서로 속여 꾀었는데, 십여 년 동안에 수십만 명이 되어 창주·서주·유주·기주·형주·양주·연주·예주의 여덟 주 사람들 중 호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角分遣弟子周行四方,轉相誑誘,誑,居況翻。誘,音酉。十餘年間,徒衆數十萬,自青、徐、幽、冀、荊、揚、兗、豫八州之人,莫不畢應。

 

 어떤 사람은 재산을 버리거나 팔고 떠돌며 그곳으로 달려가니 도로가 메워져서 막혔고, 도착하지도 못하고 병들어 죽은 자가 또한 만 명을 헤아렸다. 군과 현에서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꾸로 장각이 바른길로 가르치며 감화한다고 말하여, 백성들이 의지하는 바가 되었다.

 태위 양사가 그때 사도가 되었는데(176년) 편지를 올려 말하였다.

 或棄賣財產,流移奔赴,塡塞道路,塞,悉則翻。未至病死者亦以萬數。郡縣不解其意,解,戶買翻。反言角以善道敎化,爲民所歸。

太尉楊賜時爲司徒,賜爲司徒,熹平五年也。上書言:

 

 "장각이 백성을 속이고 미혹하며 사면을 받아도 뉘우침이 없고, 점차 더욱 자라 퍼지고 있습니다. 지금 만약 주와 군에다 체포하고 토벌하라고 내려 보내시면, 아마도 더욱 소요가 일어나 환난이 급하게 이루어질까 두렵습니다. 마땅히 급히 자사와 이천석 관리에게 절실한 칙서를 내려서 떠도는 백성을 가려서 구별하고, 각각을 보호하여 원래의 군으로 돌려보내어서 그 도당들이 고립되어 약하게 하고, 그런 다음에 그 우두머리를 주살하면 힘들이지 않고 평정할 수 있습니다."

「角誑曜百姓,遭赦不悔,稍益滋蔓。蔓,音萬。今若下州郡捕討,恐更騷擾,速成其患。宜切敕刺史、二千石,簡別流民,下,遐稼翻。別,彼列翻。各護歸本郡,以孤弱其黨,然後誅其渠帥,可不勞而定。」

 

 때마침 양사가 그 자리를 떠나니 일이 결국 궁중 내에 머물게 되었다. 사도부의 연리 유도가 다시 상소를 올려 양사가 전에 의론한 것을 거듭하여 말하였다.

 會賜去位,事遂留中。賢曰:謂所論事留在禁中,未施用之。余據賜以熹平六年免。帥,所類翻。司徒掾劉陶復上疏申賜前議,掾,俞絹翻。復,扶又翻。言:

 

 "장각 등의 음모가 더욱 심해졌는데, 사방에서 사사롭게 말하기를 '장각 등이 경사에 몰래 들어가 조정을 엿보았다.' 고 합니다.새가 지저귀듯 하고 야수 같은 마음을 품고서 사사롭게 공명하였습니다. 주와 군에서는 꺼리고 싫어하여, 이런 것을 보고하지 않고 단지 서로 알려주기만 할 뿐 공문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조서를 내리셔서 국토를 상으로 준다고 하며, 다시 장각 등을 잡을 자를 모집하고 감히 이를 회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와 같은 죄로써 다스리십시오."

「角等陰謀益甚,四方私言,云角等竊入京師,覘視朝政。覘,丑廉翻。朝,直遙翻。鳥聲獸心,私共鳴呼;州郡忌諱,不欲聞之,但更相告語,更,工衡翻。莫肯公文。宜下明詔,重募角等,賞以國土,有敢回避,與之同罪。」

 

 황제는 특별하게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바야흐로 조서를 내려 유도에게《春秋條例》를 정리하도록 하였다.

 장각은 마침내 36개의 방을 두었다. '방'은 장군과 같은 것인데, 대방은 만여 명, 소방은 6천~7천 명으로 각각 우두머리를 세우고, 거짓말을 하였다.

 "창천은 이미 죽고 황천을 세워야 하니 갑자년에는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

 帝殊不爲意,方詔陶次第《春秋條例》。陶明《春秋》,爲之訓詁,故詔之次第條例。

角遂置三十六方;方,猶將軍也,大方萬餘人,小方六七千,《考異》曰:袁《紀》作「坊」,今從范《書》。各立渠帥;帥,所類翻。訛言「蒼天已死,黃天當立,歲在甲子,天下大吉。」

 

 경성에 있는 관청의 문과 주와 군의 관부에 백토로 글씨를 썼는데 모두 '甲子' 라는 글자를 썼다. 대방 마원의 등은 먼저 형주와 양주에 있는 수만 명을 거두어들이고, 시기를 정하고 업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마원의는 자주 경사를 왕래하면서 중상시 봉서와 서봉 등에게 호응하도록 하고, 약속하기를 3월 5일 안팎에서 함께 일어나기로 하였다.

 以白土書京城寺門寺門,在京城諸官寺舍之門。及州郡官府,皆作「甲子」字。大方馬元義等先收荊、揚數萬人,期會發於鄴。元義數往來京師,數,所角翻。以中常侍封諝、徐奉等爲內應,諝,私呂翻。約以三月五日內外俱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