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邦國殄瘁/한이 병들고 시들었다./ 草木萌動 李花風 2日(음2/7).

solpee 2020. 3. 1. 09:43

《韓紀48 孝靈帝 建寧 2 (己酉, 169)

 

 8. 애초, 이응 등이 비록 폐출되어 금고되었을지라도 천하의 사대부들은 모두 그들의 법도를 높이 숭상하였으며, 조정을 더럽다고 하며 그처럼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오직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며, 더욱이 서로를 표방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8. 初,李膺等雖廢錮,事見上卷桓帝延熹九年。天下士大夫皆高尚其道而汙穢朝廷,希之者唯恐不及,更共相標榜,爲之稱號:賢曰:標榜,猶相稱揚也。余謂立表以示人曰標,揭書以示人曰榜;標榜,猶言表揭也。更,工衡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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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以竇武、陳蕃、劉淑爲三君,君者,言一世之所宗也;李膺、荀翌、「翌」,范《書》作「昱」。杜密、王暢、劉祐、魏朗、趙典、朱㝢爲八俊,俊者,言人之英也;郭泰、范滂、尹勳、巴肅及南陽宗慈、陳留夏馥、汝南蔡衍、泰山羊陟爲八顧,顧者,言能以德行引人者也;行,下孟翻。張儉、翟超、岑晊、苑康翟,萇伯翻。晊,之日翻。及山陽劉表、汝南陳翔、魯國孔昱、山陽檀敷爲八及,及者,言其能導人追宗者也;賢曰:導,引也。言謂所宗仰者。度尚及東平張邈、王孝、東郡劉儒、泰山胡母班、《風俗通》曰:胡母姓,本陳胡公之後也,公子完奔齊,遂有齊國。齊宣王母弟別封母鄕,遠取胡公,近取母邑,故曰胡母氏。陳留秦周、魯國蕃嚮、賢曰:蕃,姓也,音皮。東萊王章爲八廚,廚者,言能以財救人者也。

 

 진번과 두무가 권세를 잡자, 다시 이응 등을 천거하여 뽑았으나 진번과 두무가 죽고 나서는 이응 등이 다시 폐출되었다.

 及陳、竇用事,復舉拔膺等;陳、竇誅,膺等復廢。

 

 환관들은 이응 등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매번 조서를 내릴 때마다 번번이 당인이 금기해야 할 사항을 설명하였다. 후람의 장검에 대한 원망이 더욱 심해졌는데, 후람의 고향 사람 주병이 평소 아첨을 잘하고 간사하였기에 장검에게서 버림을 받자 후람의 뜻을 이어받아 편지를 써서 장검과 함께 같은 고향 사람 24명이 별도로 서로 호를 쓰면서 함께 당을 지어 사직을 위해하려고 도모하는데, 장검이 그들의 수괴라고 고발하였다. 주장에서 이름을 깎아내고 장검등을 체포하라고 조서를 내렸다.

 宦官疾惡膺等,每下詔書,輒申黨人之禁。復,扶又翻。惡,烏路翻。下,遐稼翻。侯覽怨張儉尤甚,以破其冢宅也,事見上卷桓帝延熹九年。覽鄕人朱並素佞邪,爲儉所棄,承覽意指,上書告儉與同鄕二十四人別相署號,共爲部黨,圖危社稷,而儉爲之魁。詔刊章捕儉等。刊章者,刊去並姓名而下其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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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冬,十月,大長秋曹節因此諷有司奏「諸鉤黨者故司空虞放及李膺、杜密、朱㝢、荀翌、翟超、劉儒、范滂等,賢曰:鉤,謂相牽引也。請下州郡考治。」下,遐稼翻。治,直之翻。是時上年十四年,問節等曰:「何以爲鉤黨?」對曰:「鉤黨者,卽黨人也。」上曰:「黨人何用爲惡而欲誅之邪?」對曰:「皆相舉羣輩,欲爲不軌。」上曰:「不軌欲如何?」對曰:「欲圖社稷。」上乃可其奏。軌,法度也。君君、臣臣,所謂法也。爲人臣而欲圖危社稷,謂之不法,誠是也。而諸閹以此罪加之君子,帝不之悟,視元帝之不省召致廷尉爲下獄者,闇又甚焉!悲夫!

 어떤 사람이 이응에게 말하였다.

 "도망갈 수 있습니다."

 이응이 대답하였다.

 "임금을 섬길 때에는 어려운 일을 사양하지 않으며, 죄를 지으면 형벌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절개라오. 내 나이 벌써 예순이며,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명에 달려있으니, 도망간들 장차 어디로 가겠소?"

 마침내 조옥으로 가서, 고문당하다 죽고, 문생과 옛 부하인 관리들도 아울러 금고를 당했다.

 或謂李膺曰:「可去矣!」對曰:「事不辭難,罪不逃刑,臣之節也《左傳》:羊舌赤之言曰:事君不辟難,有罪不逃刑。吾年已六十,死生有命,去將安之!」乃詣詔獄,考死;門生故吏並被禁錮。被,皮義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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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侍御史蜀郡景毅子顧爲膺門徒,未有錄牒,不及於譴,錄,記也。牒,籍也。時聚徒敎授,多者以千計,各錄記其姓名於譜牒。毅慨然曰:「本謂膺賢,遣子師之,豈可以漏脫名籍,苟安而已!」遂自表免歸。

汝南督郵吳導受詔捕范滂,至征羌,抱詔書閉傳舍,征羌縣,屬汝南郡,本當鄕縣,光武以來歙有平羌之功,改爲征羌侯國以封之,因名焉。滂,縣人也。賢曰:傳驛舍也,音知戀翻。征羌故城在今豫州郾陵縣東南。伏牀而泣,一縣不知所爲。

 

 범방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반드시 나 때문일 것이다."

 즉시 감옥으로 갔다. 현령 곽읍이 크게 놀라면서 나와 인수를 풀어놓고는 끌어당기며 같이 함께 도망가자고 말하였다.

 "천하는 큰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있습니까?"

 범방이 말하였다.

 "이 범방이 죽는다면 화가 끝날 일인데, 어찌 감히 그대에게까지 죄받는 누를 끼치겠으며 또한 노모를 떠돌게 할 수 있겠소?"

 滂聞之曰:「必爲我也。」爲,于僞翻。卽自詣獄。縣令郭揖大驚,出,解印綬,引與俱亡,曰:「天下大矣,子何爲在此!」滂曰:「滂死則禍塞,何敢以罪累君。塞,悉則翻。累,力瑞翻。又令老母流離乎!」

 

 그의 어머니가 곧바로 그와 결별을 하니, 범방이 어머니에게 아뢰었다.

 "중박은 효성스러워서 공경을 잘하니 고양을 잘 할 것입니다. 저 범방은 용서군을 좇아 황천으로 돌아가니 죽고 사는 것은 각기 그 적당한 곳을 갖습니다. 오직 대인께서 차마 할 수 없는 은혜를 잘라내시게 되었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중박은 범방의 동생이다. 용서군은 범방의 부친으로 용서후의 재상이었던 범현이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其母就與之訣,滂白母曰:「仲博孝敬,足以供養。仲博,滂弟字也。供,俱用翻。養,羊尚翻。滂從龍舒君歸黃泉,存亡各得其所。惟大人割不可忍之恩,勿增感戚!」仲博者,滂弟也。龍舒君者,滂父龍舒侯相顯也。相,息亮翻。母曰:

 

 "너는 지금 이응과 두밀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는데, 죽는다 한들 무슨 한이 있겠느냐? 이미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는데, 다시 장수하기를 구한다 하여 두 가지 다 겸할 수 있겠느냐?"

 범방이 꿇어 앉아 가르침을 받고서는 두 번 절하고 하직인사를 하였다.

 아들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내가 네게 악을 행하게 하려 해도 악을 행하지 못할 것이며, 네게 선을 행하도록 하였으니 내가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汝今得與李、杜齊名,死亦何恨!李、杜謂李膺、杜密。卽有令名,復求壽考,可兼得乎!」復,扶又翻。滂跪受敎,再拜而辭。顧其子曰:「吾欲使汝爲惡,惡不可爲;使汝爲善,則我不爲惡。」行路聞之,莫不流涕。

 

 무릇 당인으로 죽은 사람이 100여 명이고, 그 처자들은 모두 변방에 귀양 보내졌으며, 천하의 호걸들과 유학자들 가운데 옳은 일을 행하는 자가 있으면 환관들이 모두 '당인'이라 지적하였다. 원망하거나 틈이 벌어진 자가 있으면, 이 기회에 서로 모함하고 해를 끼쳐서 작은 분노라도 있으면 마구잡이로 붕당 속으로 몰아넣었다.

 凡黨人死者百餘人,妻子皆徙邊,天下豪桀及儒學有行義者,行,下孟翻。宦官一切指爲黨人;有怨隙者,因相陷害,睚眦之忿,濫入黨中。睚,牛懈翻。眦,士懈翻。

 

 주와 군에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었는데 일찍이 교분도 없었어도 역시 화와 독을 만나서 죽고 유배가고 폐출 당하고, 금고를 당한 사람이 600~700명이었다.

 곽태가 당인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사사로이 그들을 위하여 통곡하며 말하였다

 州郡承旨,或有未嘗交關,亦離禍毒,離,與罹同,遭也。其死、徙、廢、禁者又六七百人。廢禁,謂廢棄而禁錮。

郭泰聞黨人之死,私爲之慟曰:

 

 《詩》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나라가 병들고 시들었다는 것이다.' 고 하였는데 한나라 왕실은 멸망하지만, 다만 '까마귀를 쳐다보며 누구의 집에 머물지'를 알지 못할 뿐이다."

 곽태가 비록 선한 사람인지를 악한 사람인지를 평가하기는 좋아하였으나 위험한 말을 하거나 그 사실의 핵심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도 원망을 받거나 화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詩》云:『人之云亡,邦國殄瘁。』爲,于僞翻。《詩‧大雅‧瞻卬》之辭。毛氏曰:殄,盡也。瘁,病也。瘁,似醉翻。漢室滅矣,但未知『膽烏爰止,于誰之屋』耳!」《詩‧小雅‧正月》之辭。毛氏《註》曰:富人之屋,烏所集也。鄭氏曰:視烏集於富人之屋,以言今民亦當求明君而歸之。《考異》曰:范《書》以泰此語爲哭陳、竇。袁《紀》以爲哭三君、八俊,今從之。泰雖好臧否人倫,好,呼到翻。否,音鄙。而不爲危言覈論,覈,謂深探其實也,刻覈也。故能處濁世而怨禍不及焉。處,昌呂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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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儉亡命困迫,望門投止,望門而投之,以求止舍,困急之甚也。莫不重其名行,行,下孟翻。破家相容。後流轉東萊,止李篤家。外黃令毛欽操兵到門,考兩《漢志》,外黃縣屬陳留郡,黃縣屬東萊郡。毛欽蓋爲黃縣令,「外」字衍。操,千高翻。篤引欽就席曰:「張儉負罪亡命,篤豈得臧之!若審在此,此人名士,明廷寧宜執之乎?」欽因起撫篤曰:「蘧伯玉恥獨爲君子,足下如何專取仁義!」篤曰:「今欲分之,明廷載半去矣。」賢曰:明廷,猶言明府,言不執儉,得義之半也。欽歎息而去。篤導儉經北海戲子然家,戲,許宜翻。《姓譜》:伏戲氏之後。遂入漁陽出塞。其所經歷,伏重誅者以十數,連引收考者布徧天下,宗親並皆殄滅,郡縣爲之殘破。爲,于僞翻。儉與魯國孔襃有舊,亡抵襃,不遇,賢曰︰抵,歸也。襃弟融,年十六,匿之。後事泄,儉得亡走,國相收襃、融送獄,相,息亮翻。未知所坐。融曰:「保納舍藏者,融也,當坐。」謂自保無他而納儉,因舍止而藏匿之。襃曰:「彼來求我,非弟之過。」吏問其母,母曰:「家事任長,任,音壬。長,知兩翻。妾當其辜。」一門爭死,郡縣疑不能決,乃上讞之,賢曰:《前書音義》曰:讞,請也。上,時掌翻。讞,音宜桀翻。詔書竟坐襃。

 

 당인들에 대한 금고가 풀리자 장검은 이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뒤에 위위가 되었으며, 84살에 죽었다. 하복은 장검이 망명생활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잘못은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졌는데 헛되이 착한 사람을 더럽혔구나. 한 사람이 죽음에서 도망하다가 화가 수많은 사람에게 미쳤으니 왜 살겠다는 것인가?"

 及黨禁解,儉乃還鄕里,後爲衞尉,卒,年八十四。《儉傳》云:建安初,徵爲衞尉,不得已而起。儉見曹氏世德已萌,乃闔門縣車,不豫政事,歲餘,卒於許下。夏馥聞張儉亡命,歎曰:「孽自己作,空汙良善,汙,烏路翻。一人逃死,禍及萬家,何以生爲!」

 

 이에 스스로 수염을 깎고 변장하여 임려산 속으로 들어가 이름을 감추고 대장간의 일꾼이 되어 친히 연탄구멍을 뚫고 있으니 형체와 모습이 초췌해져 2,3년을 지나자 사람들이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복의 동생 하정이 비단을 수레에 싣고 뒤쫓아 가서 그에게 주었으나 하복이 받지 아니하고 말하였다.

 "동생이 어찌하여 화를 싣고 와서 주려고 하는가?"

 당인들에 대한 금고가 풀리기 전에 죽었다.

 乃自翦須變形,須,與鬚同。入林慮山中,慮,音廬。隱姓名,爲冶家傭,親突煙炭,形貌毀瘁,瘁,似醉翻。積二三年,人無知者。馥弟靜載縑帛追求餉之,馥不受曰:「弟柰何載禍相餉乎!」黨禁未解而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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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初,中常侍張讓父死,歸葬潁川,雖一郡畢至,而名士無往者,讓甚恥之,陳寔獨弔焉。及誅黨人,讓以寔故,多所全宥。南陽何顒,素與陳蕃、李膺善,亦被收捕,顒,魚容翻。被,皮義翻。乃變名姓匿汝南間,與袁紹爲奔走之交,常私入雒陽,從紹計議,爲諸名士罹黨事者求救援,設權計,使得逃隱,所全免甚衆。

 

 애초 태위 원탕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원성, 원봉, 원외였으며, 원상이 원소를 낳고, 원봉이 원술을 낳았다. 원봉과 원외는 모두 명성이 있어서 젊어서부터 드러난 벼슬을 지냈다. 그때 중상시 원사가 원봉오가 원외가 재상가문이고 자기와 같은 성이므로 높이 받들어 밖에서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원씨는 세상에서 존귀하고 영화로워졌고, 부유하고 사치함이 심하여서 다른 공족들과는 같지 아니하였다.

 初,太尉袁湯三子,成、逢、隗,成生紹,逢生術。據術字公路,當讀如《月令》「審端徑術」之術,音遂。又據《說文》:術,邑中道,讀從入聲。則二音皆通。隗,五罪翻。逢、隗皆有名稱,少歷顯官。稱,尺證翻。少,詩照翻。時中常侍袁赦《考異》曰:袁《紀》作「袁朗」,今從范《書‧袁隗傳》。以逢、隗宰相家,與之同姓,推崇以爲外援,故袁氏貴寵於世,富奢甚,不與他公族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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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紹壯健有威容,愛士養名,賓客輻湊歸之,輜輧、柴轂,塡接街陌。賢曰:《說文》曰:輧車,衣車也。鄭玄註《周禮》曰:輧,猶屛也,取其自蔽隱。柴轂,賤者之車。袁紹事始此。黨錮旣死,而誅宦官者二袁也。人不爲善而欲去害己者,天其許之乎!術亦以俠氣聞。逢從兄子閎,少有操行,俠,戶頰翻。從,才用翻。少,詩照翻。行,下孟翻。以耕學爲業,逢、隗數饋之,無所受。數,所角翻。閎見時方險亂,而家門富盛,常對兄弟歎曰:「吾先公福祚,後世不能以德守之,而競爲驕奢,與亂世爭權,此卽晉之三郤矣。」先公,謂袁安也。三郤,謂晉大夫郤錡、郤犨、郤至也。郤氏世爲晉卿,三子者憑藉世資,驕奢侵權,爲厲公所殺。及黨事起,閎欲投迹深林,以母老,不宜遠遁,乃築土室四周於庭,不爲戶,自牖納飲食。母思閎時,往就視,母去,便自掩閉,兄弟妻子莫得見也。潛身十八年,卒於土室。

初,范滂等非訐朝政,賢曰:訐,謂橫議是非也。訐,居謁翻。朝,直遙翻。自公卿以下皆折節下之,折,而設翻。下,遐稼翻。太學生爭慕其風,以爲文學將興,處士復用。申屠蟠獨歎曰:「昔戰國之世,處士橫議,列國之王室爲擁篲先驅,《史記》:鄒衍如燕,昭王擁篲先驅,請列弟子之座而受業,築碣石宮,身親往師之。處,昌呂翻。復,扶又翻。橫,戶孟翻。爲,于僞翻。篲,祥歲翻。卒有坑儒燒書之禍,事見七卷秦始皇三十四年、三十五年。卒,子恤翻。今之謂矣。」乃絕迹於梁、碭之間,碭,音唐。因樹爲屋,自同傭人。居二年,滂等果罹黨錮之禍,唯蟠超然免於評論。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臣光曰:

 

 "천하에 정도가 있으면 군자는 조정에서 드날리며 소인의 죄를 바르게 다스려 감히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천하에 정도가 없으면 군자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아서 소인이 화를 피하였으나, 오히려 때로는 화를 면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天下有道,君子揚于王庭以正小人之罪,而莫敢不服。天下無道,君子囊括不言以避小人之禍,而猶或不免。《坤》之六四,居近五之位而無相得之義,乃上下閉隔之時,羣陰旣盛,故當括囊以避禍。《夬》以五陽決一陰,小人衰微,君子道盛,故可揚于王庭以聲小人之罪。

 

 당인들은 혼란한 세상에 태어나서 그 자신에게 알맞는 직위에 있지도 아니하면서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말로써 그것을 구하려고 하였으며, 인물을 선하다 악하다 하여 혼탁한 무리를 물리치고 깨끗한 사람을 드러내고자 하니, 독사의 머리를 돋우고 호랑이와 이리의 꼬리를 밟아 자신은 부당한 형벌을 당하게 되었으며, 그 화가 친구들에게 미쳤고, 선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며 나라도 따라서 망하였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합니까?"

 黨人生昏亂之世,不在其位,四海橫流,而欲以口舌救之,臧否人物,橫,戶孟翻。否,音鄙。激濁揚清,撩虺蛇之頭,撩,連條翻。【章:乙十六行本「蹺」作「踐」;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熊校同。】虎狼之尾,以至身被淫刑,被,皮義翻。禍及朋友,士類殲滅而國隨以亡,不亦悲乎!殲,息廉翻。

 

 무릇 오로지 곽태만은 이미 매우 명철하여 자신의 몸을 보전하였으며, 신도반은 조짐을 보고서 행동을 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지 아니하였으니, 훌륭합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夫唯郭泰旣明且哲,以保其身,以尹吉甫美仲山甫者美郭泰。申屠蟠見幾而作,不俟終日,謂申屠蟠得《豫》之六二。幾,居希翻。卓乎其不可及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