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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矢中郃右厀而卒/장합이 나르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solpee 2020. 2. 6. 09:04

 

《魏紀4 明 太和 5 (辛亥, 231)

 

 

 6. 사마의는 불료와 대릉에게 장병 4천 명으로 상규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 병력을 모두 내보내어 서쪽으로 가서 기산에 있는 군사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장합이 병사를 나누어서 옹과 미에 주둔시키고 싶어 하자 사마의가 말하였다.

 6. 司馬懿使費曜、戴陵留精兵四千守上邽,上邽縣,前漢屬隴西郡,後漢以來屬漢陽郡。餘衆悉出,西救祁山。張郃欲分兵駐雍、郿,雍、郿二縣皆屬扶風郡。雍,於用翻。郿,音媚,又音眉。懿曰:

 

 "선봉군이 홀로 그들을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장군의 말이 옳소. 만약에 감당해낼 수 없는데 나누어 앞뒤로 만들게 되면 이것이 옛날 초나라 3군이 경포에게 잡힌 원인이었소."

「料前軍能獨當之者,將軍言是也。若不能當而分爲前後,此楚之三軍所以爲黥布禽也。」事見十二卷漢高帝十一年。觀懿此言,蓋自知其才不足以敵亮矣。

 

 드디어 진격하였다. 제갈량이 군사를 나누어 일부는 남아서 기산을 공격하게 하고, 스스로는 사마의를 맞아 상규에서 싸웠다. 곽회와 불요 등이 제갈량을 맞아 싸웠으나 제갈량이 이들을 격파하고 이어서 그곳에 있는 보리를 많이 거두어 들이고, 사마의와 상규의 동쪽에서 조우했다. 사마의는 군사를 거두어서 험한 지형에 의지하게 하여 병사들이 교전할 수 없게 하니,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遂進。亮分兵留攻祁山,自逆懿于上邽。郭淮、費曜等徼亮,徼,讀曰邀。亮破之,因大芟刈其麥,芟,所銜翻。與懿遇於上邽之東。懿斂軍依險,兵不得交,亮引還。

 

 사마의 등이 제갈량의 뒤를 찾아서 노성에까지 이르렀다. 장합이 말하였다.

 "저들은 현군으로 우리를 맞았고, 싸우자고 청하였다가 할 수 없자 우리의 이로움이 싸움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제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 기산에서 많은 군사가 이미 가까이 잇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사람들의 마음도 스스로 굳어질 것이니, 여기에서 멈추고 주둔하며 군사를 나누어 기습병을 만들어서 그들을 배후로 나갈 것처럼 보여야 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렇다고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하여 백성들의 바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지금 제갈량의 외로운 군사들은 먹을 것이 적어서 또한 가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懿等尋亮後至于鹵城。張郃曰:「彼遠來逆我,請戰不得,謂我利在不戰,欲以長計制之也。且祁山知大軍已在近,人情自固,可止屯於此,分爲奇兵,示出其後,不宜進前而不敢偪,坐失民望也。今亮孤軍食少,少,詩沼翻。亦行去矣。」

 

 사마의는 좇지 아니하고 고의로 제갈량의 뒤를 쫓아갔다. 이미 도착하여서도 또다시 산에 올라가서 영채를 만들게 하고 전투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가후와 위평이 자주 전투를 하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말하였다.

 "공이 촉한을 무서워하는 것이 마치 호랑이처럼 하시는데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단 말입니까?"

 懿不從,故尋亮。有意爲之曰故。尋者,隨而躡其後。旣至,又登山掘營,不肯戰。賈栩、魏平數請戰,數,所角翻。因曰:「公畏蜀如虎,柰天下笑何!」

 

 사마의가 이 말을 듣고 괴로워하였다. 또 제장들이 모두 전투를 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여름, 5월 10일에 사마의는 마침내 장합에게 남쪽의 포위한 곳에서 무당갑 하평을 공격하게 하였고, 스스로는 중앙을 점거하고 제갈량을 겨냥하였다. 제갈량이 위연과 고상, 오반에게 맞아서 싸우게 하니, 위의 군사는 대퍠하였으며, 한의 사람들은 갑병의 목 3천 급을 얻었고, 사마의는 돌아와서 영채를 지켰다.

 懿病之。懿實畏亮,又以張郃嘗再拒亮,名著關右,不欲從其計,及進而不敢戰,情見勢屈,爲諸將所笑。栩,況羽翻。諸將咸請戰,夏,五月,辛巳,懿乃使張郃攻無當監何平於南圍,無當,蓋蜀軍部之號,言其軍精勇,敵人無能當者;使平監護之,故名官曰無當監。南圍,蜀兵圍祁山之南屯。監,古暫翻。自按中道向亮。按,據也。懿分道進兵,欲以解祁山之圍;自據中道,與亮旗鼓相向也。亮使魏延、高翔、吳班逆戰,魏兵大敗,漢人獲甲首三千,懿還保營。

 

 6월에 제갈량이 군량이 다 소진되어 군사를 철수시켰는데 사마의가 장합을 파견하여 그 뒤를 쫓게 하였다. 장합니 나아가 목문에 이르러서 제갈량과 전투를 벌였는데, 촉의 군사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궁과노를 어지럽게 쏘아됐고, 떠돌던 화살이 장합의 오른쪽 다리를 맞추어 죽었다.

 六月,亮以糧盡退軍,司馬懿遣張郃追之。郃進至木門,木門去今天水軍天水縣十里。《水經註》:籍水出上邽當亭西山,東歷當亭川,又東入上邽縣,左佩五水,右帶五水;木門谷之水其一也。導源南山,北流入籍水。與亮戰,蜀人乘高布伏,弓弩亂發,飛矢中郃右厀而卒。中,竹仲翻。厀,與膝同。卒,子恤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