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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而不作/서술하되 짓지 않는다.

solpee 2020. 1. 21. 09:17

紀40 孝和 永元 14 (壬寅, 102)

 

 

 10. 11월 6일에 대사농인 패국 사람 서방을 사공으로 삼았다. 사방이 상소문을 올렸다.

 "한나라에서는 박사 14가를 설치하고, 갑을과를 두어서 학자들에게 부지런히 공부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엎드려 살피건대 태학에서 박사제자를 시험하는데,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게 하고 가법을 공부하지 않고 있어서 사사롭게 서로 포용하고 숨겨서 간사한 사람들이 나갈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10. 十一月,癸卯,以大司農沛國徐防爲司空。防上疏,以爲:「漢立博士十有四家,《漢官儀》曰:光武中興,恢弘稽古,《易》有施、孟、梁丘賀、京房,《書》有歐陽和伯、夏侯勝、建,《詩》有申公、轅固、韓嬰,《春秋》有嚴彭祖、顏安樂,《禮》有戴德、戴聖,凡十四博士。設甲乙之科《前書》,博士弟子,歲課甲科四十人爲郎中,乙科二十人爲太子舍人,丙科四十人爲文學掌故。以勉勸學者。伏見太學試博士弟子,皆以意說,不修家法,賢曰:諸經爲業,各自名家。私相容隱,開生姦路。每有策試,策,編簡也。策試,卽射策也。《漢書音義》曰:作簡策難問,列置案上,在試者意投射,取而答之,謂之射策。

 매번 대책을 시험하 때에는 번번이 다툼이 일어나고 논의하는 것이 엇갈려서 서로 시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서술하되 짓지는 않는다.'고 말하였으며, 또한 '나는 오히려 역사책에 빠진 글이 있는 것을 보았다. 고 하였습니다.

 輒興諍訟,諍,讀與爭同。論議紛錯,互相是非。孔子稱『述而不作』,《論語》。賢曰:祖述先聖之言,不自制作。又曰『吾猶及史之闕文』。亦見《論語》。賢曰:古者史官於書有所不知,則闕以待能者。孔子言少時猶及見古史官之闕文,今則無之,疾時多穿鑿也。

 

 지금은 장구에 의거하지 않고 망령되게 천착하여 자기의 스승을 존중하는 것은 옳지 않고, 자기의 뜻을 만들어내 설명하는 것에서 이치를 얻을 수 잇다고 하여 도술을 가볍게 생각하고 모욕하다가 점점 물들어서 풍속을 이루었으니, 진실로 조서를 내려 실제로 인재를 선발하려 하셨던 본래의 뜻이 아닙니다.

 今不依章句,妄生穿鑿,以遵師爲非義,意說爲得理,意說者,創意而爲之說。

 

 경박함을 고치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따르는 것이 삼대에 늘 있던 도리(夏政本體는 忠 이 忠의 폐단은 粗野, 殷政은 敬 이 敬의 폐단은 鬼, 周政은 文 文의 폐단은 虛禮 그러므로 虛禮를 구하는 것은 忠이다.)입니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자세히 하고 근본적인 것에 힘쓰는 것이 유학에서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輕侮道術,浸以成俗,誠非詔書實選本意。改薄從忠,三代常道;賢曰:太史公曰:夏之政忠,忠之敝小人以野,故殷人承之以敬;敬之敝小人以鬼,故周人承之以文;文之敝小人以僿,故救僿莫若以忠。三王之道若循環,周而復始。僿,音西志翻。《史記》「僿」作「薄」。專精務本,儒學所先。先,悉薦翻。

 

 신은 박사와 갑을과의 책시는 마땅히 그 가법의 장구를 좇아서 50개의 어려운 문제를 내어 그들을 시험하고  해석을 많이 한 사람을 1등으로 하고, 글을 분명하게 인용한 사람을 높은 학설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먼저 계셨던 스승의 말씀에 의거하지 않고 뜻이 서로 어긋나게 되면 바로 잘못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황상이 이 말에 좇았다.

 臣以爲博士及甲乙策試,宜從其家章句,開五十難以試之,難,乃旦翻。解釋多者爲上策,引文明者爲高說。若不依先師,義有相伐,賢曰:伐,謂相攻伐也。皆正以爲非。」上從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