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卓茂의 발탁

solpee 2020. 1. 9. 02:42

 

紀32 光武帝 建武 (乙酉, 25)

 

 

 14. 처음에, 완성 사람 탁무는 도량이 넓고 인자하며 공손하고 사람들을 아끼며 성정이 담백하고 걸림이 없고 도를 즐겼다. 우아하고 박실하여 화려한 모습을 갖지 아니하였지만 자기 자신은 깨끗하거나 더러운 곳을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머리를 묶었던 젊은 시절부터 머리가 희게 될 떄까지 아직 일찍이 다른 사람과 다투고 경쟁을 하지 않았는데, 고향 사람들이나 친구들은 비록 행동과 능력이 탁무와 같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도 모두가 그를 즐겁게 아끼고 흠모하였다.

 14. 初,宛人卓茂,卓,姓也。《史記‧貨殖傳》有蜀卓氏。宛,於元翻。寬仁恭愛,恬蕩樂道,恬,安恬。蕩,坦蕩蕩也。樂,音洛。雅實不爲華貌,行己在於清濁之間,自束髮至白首,未嘗與人有爭競,鄕黨故舊,雖行能與茂不同,行,下孟翻。而皆愛慕欣欣焉。

 

 애제와 평제시대에 밀현 현령이 되었는데, 백성들을 자식처럼 돌보았고, 선한 사람을 드러내 교육하며 입으로는 나쁜 말을 하는 일이 없어서 관리나 백성들이 그를 가까이 하고 아꼈으며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哀、平間爲密令,宋白《續通典》曰:密縣,古鄶國、密國之地。《左傳》:諸侯伐鄭,圍新密。漢爲縣,屬河南郡。今縣東南三十里有故密城,卽漢理所。視民如子,舉善而敎,口無惡言,吏民親愛,不忍欺之。

 

 백성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일찍이 소속하고 있는 정장(읍·면·동장급)이 쌀과 고기를 갖다 주니 받았다고 말하였다. 탁무가 말하였다.

 "정장이 너에게 요구하였는가? 네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주어서 받게 한 것인가? 또는 평상시에 살면서 스스로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그에게 준 것인가?"

 백성이 대답하였다.

 "가서 그에게 주었을 뿐입니다."

 民嘗有言部亭長受其米肉遺者,賢曰:部,謂所部也。遺,于季翻;下同。茂曰:「亭長爲從汝求乎,爲汝有事囑之而受乎,囑,之欲翻;託也,私請也。將平居自以恩意遺之乎?」民曰:「往遺之耳。」

 

 탁무가 말하였다.

 "그에게 주어서 받았는데 어떠한 연고로  말을 하는가?"

 백성이 말하였다.

 "가만히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백성들로 하여금 관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며, 관리는 백성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관리를 두려워하였고 이리하여서 그에게 주었으며, 그 관리가 끝내 받았으니 그러므로 와서 하는 말입니다."

 茂曰:「遺之而受,何故言邪?」民曰:「竊聞賢明之君,使民不畏吏,吏不取民。今我畏吏,是以遺之;吏旣卒受,卒,終也;音子恤翻。故來言耳。」

 

 탁무가 말하였다.

 "너는 피폐해진 백성이구나! 무릇 사람이 여럿이 살면서 어지럽지 아니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은 인애와 예의를 가지고 서로 존경하고 섬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는 홀로 이러한 것을 닦으려고 하지 않고 어찌하여 높이 날아 멀리 가서 사람들 속에서 살지 않으려고 하느냐? 관리가 생각할 것은 마땅히 위엄을 가진 힘으로 청하여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 뿐이다. 정장은 평소에 착한 관리이고 세시에 이것을 갖다 주는 것은 예에 해당하는 것이다."

 茂曰:「汝爲敝民矣!凡人所以羣居不亂,異於禽獸者,以有仁愛禮義,知相敬事也。汝獨不欲脩之,寧能高飛遠走,不在人間邪!吏顧不當乘威力強請求耳。亭長素善吏,歲時遺之,禮也。」

 

 백성이 말하였다.

 "만약 그와 같다면 법률은 왜 그러한 일을 금하고 있습니까?"

 탁무가 웃으며 말하였다.

 "법률이란 커다란 원칙을 세워놓은 것이고, 예란 사람의 정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예를 가지고 너를 가르치면 너는 반드시 원망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법률로 너를 다스리면 너는 어떻게 그 손발을 놀리겠느가? 한 집안에서 일어난 것이라도 작은 것은 죄를 판결하고, 큰 것은 죽일 수도 있다. 또한 돌아가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라."

 民曰:「苟如此,律何故禁之?」茂笑曰:「律設大法,禮順人情。今我以禮敎汝,汝必無怨惡;以律治汝,汝何所措其手足乎!治,直之翻;下同。一門之內,小者可論,大者可殺也。且歸念之!」

 

 처음에 탁무가 현에 도착하여서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내버려무니 관리와 백성들이 이를 비웃었고, 이웃에 있는 성에서도 또한 그가 일을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하남군에 또 수령(두 명)을 두었지만 탁무는 싫어하지 않으며 태연자약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初,茂到縣,有所廢置,吏民笑之,鄰城聞者皆蚩其不能。蚩,笑也。河南郡爲置守令;茂不爲嫌,治事自若。茂正爲令,郡復置守令使與茂並居。郡爲,于僞翻。

 

 몇 년이 지나 교화가 크게 실행되니 길에서는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가 경부승(대사농에 부승 13명을 두었다)으로 승진하니 밀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좇아와 환송하였다. 왕망이 섭정을 하자 병이 들었다며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數年,敎化大行,道不拾遺;遷京部丞,王莽秉政,置大司農部丞十三人,勸課農桑。京部丞,主司隸所部。密人老少皆涕泣隨送。及王莽居攝,以病免歸。

 

 광무제가 즉위하자 먼저 탁무를 탐문하여 찾았는데, 탁무의 그때 나이가 70여 살이었다. 갑신일(19)에 조서를 내려서 말하였다.

 "무릇 명예는 천하에서 으뜸이니 마땅히 천하의 중요한 상을 받아야 한다. 이제 탁무를 태부로 삼고 포덕후에 책봉한다."

 上卽位,先訪求茂,茂時年七十餘。甲申,詔曰:「夫名冠天下,冠,古玩翻。當受天下重賞。今以茂爲太傅,東都之制,太傅位上公,絕席,在三公之右。封褒德侯。」

 

 사마광이 말하였다.

 "공자가 말씀 하셨다. '선한 행실을 들어서 교육하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권고하여라.' 이러하기 때문에 '순임금은 고요를 천거하였고, 탕임금은 이윤을 추천하니, 어질지 못한 사람은 멀리 가버렸다.' 이 사람들이 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臣光曰:孔子稱「舉善而敎不能則勸。」《論語》孔子答季康子之言。是以舜舉皋陶,湯舉伊尹,而不仁者遠,《論語》子夏答樊遲之言。陶,音遙。有德故也。

 

 광무제가 즉위한 초기에는 군웅이 경쟁하며 쫓고, 사해는 솥의 물이 끓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저들 강한 군사를 꺾고 적을 함락시키는 사람과 권모와 지략으로 궤변을 늘어놓는 선비들을 바야흐로 세상에서 중시하였지만 그러나 홀로 충성스럽고 후덕한 신하를 뽑을 수 있었고, 순종하고 훌륭한 관리를 드러내어 풀이나 쑥대밭 같은 민간인들 속에서 끄집어내어 여러 공들의 윗자리에 채워 넣었다.

 光武卽位之初,羣雄競逐,四海鼎沸,彼摧堅陷敵之人,權略詭辯之士,方見重於世,而獨能取忠厚之臣,旌循良之吏,拔於草萊之中,寘諸羣公之首,

 

 그것은 옛것들을 광복하였으며, 왕조가 장구하게 향유하기에 적당한 것이었다. 대개 먼저 힘써야 할 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그 근본적인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宜其光復舊物,享祚久長,蓋由知所先務而得其本原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