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紀30 王莽 天鳳 5年》 (戊寅, 18)
5. 이 해에 양웅이 사망하였다.
애초에, 성제의 시대에는 양웅이 낭관이 되어 급사황문을 지내명서 왕망·유수으ㅘ 같은 반열에 있었고, 애제 초기에는 또 동현과 같은 관직에 있었다. 왕망과 동현이 삼공이 되어서 권력이 인주를 기울게 하니 추천한 사람 가눙데 발탁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양웅은 삼세에 관직을 옮기지 않았다.
5. 是歲,揚雄卒。初,成帝之世,雄爲郎,給事黃門,與莽及劉秀並列;哀帝之初,又與董賢同官。莽、賢爲三公,權傾人主,所薦莫不拔擢,而雄三世不徙官。
왕망이 찬탈하게 되니, 양웅은 기로로 오랫동안 있어서 바꾸어 대부가 되었다. 권세와 이익에는 편안하였고 옛것을 좋아하고 도를 즐겼으며, 문장으로 후세에 명성을 이루어 마침내 《태현》을 지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도에 관하여서 종합하였다.
及莽篡位,雄以耆老久次,轉爲大夫。恬於勢利,〈師古曰:恬,安也。〉好古樂道,〈好,呼到翻。樂,音洛。〉欲以文章成名於後世,乃作《太玄》以綜天、地、人之道;〈桓譚曰:揚雄作《玄》書,以爲:玄者,天也,道也,言聖賢制法作事,皆引天道以爲本統,而因附屬萬類,王政、人事、法度。故伏羲氏謂之易,老子謂之道,孔子謂之元,揚雄謂之玄。《玄經》三篇,以紀天、地、人之道,立三體,有上、中、下,如《禹貢》之陳三品,三三而九,因以九九八十一,故爲八十一卦。以四爲數,數從一至四,重累變易,竟八十一而徧,不可增損,以三十五蓍揲之。《玄經》五千餘言,而《傳》十二篇。〉
또 제자가 각각 그 지혜를 가지고 잘못 달려가서 대체로 성인을 낮추어서 비방하였으며, 이상하게 빙빙 돌고 궤변을 해석하여서 세상일을 어지럽혔다고 보니, 비록 짧은 말이지만 끝내 대도를 파괴하고 무리를 미혹시켜 들은 것에 빠지게 하여서 스스로 그 잘못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사람이 때로 양웅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양웅은 항상 법을 가지고 응답하였기 때문에《법언》이라고 불렀다.
又見諸子各以其智舛馳,〈師古曰:舛,相背。〉大抵詆訾聖人,卽爲怪迂、析辯詭辭以撓世事,〈師古曰:大抵,大歸也。詆,訾毀也。迂,遠也。析,分也。詭,異也。言諸子之書,大歸皆非毀周、孔之敎,爲巧辯異辭以撓亂時政也。訾,音紫。迂,音于。撓,音火高翻。〉雖小辯,終破大道而惑衆,使溺於所聞而不自知其非也,故人時有問雄者,常用法應之,號曰《法言》。
안에서 마음을 쓰고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당시 사람들모두는 이를 소홀히 하였는데, 오직 유슈와 범준만은 공경하였고, 환담은 비교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기록 사람 후파는 스승으로 섬겼다.
대사공 왕읍과 납언 엄우가 양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환담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항상 양웅의 책을 칭송하였는데, 어떻게 후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用心於內,不求於外,於時人皆忽之;〈師古曰:忽,謂輕也。〉唯劉秀及范逡敬焉,而桓譚以爲絕倫,〈師古曰:無比類。〉鉅鹿侯芭師事焉。〈服虔曰:芭,音葩。〉大司空王邑、納言嚴尤聞雄死,謂桓譚曰:「子常稱揚雄書,豈能傳於後世乎?」
환담이 답하였다.
"반드시 전해질 것이오. 생각건대 그대와 나 환담은 보는데 이르지 못할 것 같소. 무릇 사람은 가까운 것을 천하게 여기고 멀리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인데, 친히 양자운의 녹질과 용모를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으니, 그러므로 그 책을 가벼이 한다오.
譚曰:「必傳,顧君與譚不及見也。凡人賤近而貴遠,親見揚子雲祿位容貌不能動人,〈揚雄字子雲。〉故輕其書。
옛날에 노담이 허무의 사상을 가지고 두 편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인의를 엷게 보고, 예학을 비난하였지만, 그런 다음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오경》보다 지나치다고 생각하였고, 한 문제와 경제, 사마천에 이르러서는 모두 이러한 말을 하였소.
昔老耼著虛無之言兩篇,〈師古曰:謂《道德經》也。〉薄仁義,非禮學,然後好之者尚以爲過於《五經》,〈好,呼到翻。〉自漢文、景之君及司馬遷皆有是言。
'지금 양자의 책은 문장의 뜻이 대단히 심오하고, 논의한 것이 성인의 말에 위배되지 않았으니 반드시 제자백가를 초월할 것으로 헤아려지오.'"
今揚子之書文義至深,而論不詭於聖人,〈師古曰:詭,違也。聖人,謂周公、孔子。〉則必度越諸子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