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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嫁妻、賣子/ 부인을 시집보내고 자식을 팔다.

solpee 2019. 12. 15. 17:09

 

紀20 元帝 初元 2 (甲戌, 前47

 

 

 12.황상이 즉위한 다음해에 주애의 산남현이 반란하니 병사를 발동하여 이들을 격파하였다. 여러 현이 다시 반란하였고, 몇 해 동안 이어져도 평정하지 못하였다. 황상은 여러 신하들에게 널리 모의하고 크게 군사를 발동하고자 하였다. 대조 가연지가 말하였다.

 12.上卽位之明年,珠厓山南縣反,發兵擊之。諸縣更叛,連年不定海中洲上,以黎母山爲主,環山列置諸縣。山南縣蓋置於黎母之南也。師古曰:更,音工衡翻。上博謀於羣臣,欲大發軍。待詔賈捐之曰捐之時待詔金馬門。

 

 "신이 듣건대 요·순·우의 성스러운 덕화는 땅이 사방으로 수천 리에 지나지 않았고, 서쪽은 사막을 덮었고, 동쪽으로는 동해에 까지 번져 갔으며 삭방 이남에도 그 명성과 가르침이 이르러서 말하기를, '명성과 가르침을 더불어 하고자 하면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더불어 하고자 하지 않는 자들은 강제로 다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군신들이 덕화를 노래하였고, 기운을 머금은 생물들은 각기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臣聞堯、舜、禹之聖德,地方不過數千里,西被流沙,東漸于海,朔南曁聲敎師古曰:此引《禹貢》之辭。漸,入也;一曰浸也。朔,北方也。曁,及也。被,皮義翻。漸,子廉翻。言欲與聲敎則治之,不欲與者不強治也。與,讀曰豫。治,直之翻。強,其兩翻。故君臣歌德師古曰:言皆有德可歌頌。含氣之物各得其宜。

 

 무정과 성왕은 은과 주의 아주 위대하고 인자한 분이었지만 그러나 땅은 동쪽으로 강(하남 식현)과 황(하남 황천)에 지나지 않았고, 서쪽으로는 저족과 강족(감숙 동부)들을 지나지 않았으며, 남쪽으로는 만형( 호북 양양)에 지나지 않았고, 북쪽으로는 삭방(영하 중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리하여서 칭송하는 소리가 아울러 일어나고 보고 듣는 것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을 즐겼고, 월상지(월남)는 아홉차례의 통역을 거치면서도 공물을 헌납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병사와 무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武丁、成王,殷、周之大仁也,然地東不過江、黃,杜預曰:江國,在汝南安陽縣。黃國,今弋陽縣。西不過氐、羌,南不過蠻荊,北不過朔方),是以頌聲並作,視聽之物【章:乙十一行本「物」作「類」;孔本同;張校同。】咸樂其生樂,音洛。越裳氏重九譯而獻,此非兵革之所能致也晉灼曰:遠國使來,因九譯言語乃通也。張晏曰:越不著衣裳,慕中國化,遣譯來著衣裳,故曰越裳也。師古曰:越裳自是國名,非以襲衣裳始爲稱號也。王充《論衡》作「越嘗」,此則不作衣裳之字明矣。《晉志》曰:吳孫晧置九德郡,卽周時越裳氏地。

 

 진에 이르러서 군사를 일으켜서 먼곳을 공격하고, 밖의 것을 탐내고 속이 텅 비게 되니 천하가 무너지고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효문황제가 무기를 뉘어놓고 문치를 시행하였는데, 이 당시에는 옥송 사건은 수백 건 뿐이었고 부역도 가볍고 간편하게 되었습니다. 

 以至于秦,興兵遠攻,貪外虛內而天下潰畔。孝文皇帝偃武行文,當此之時,斷獄數百,賦役輕簡斷,丁亂翻。下同。

 

 효무황제는 병마를 버려서 사방의 이적을 물리쳤지만 천하의 송옥 사건은 1만 건을 헤아렸으며, 부세는 번거로웠고 요역의 부담도 무거웠는데, 도적들이 나란히 일어나고 군사의 출동도 자주 일으키게 되니, 아버지는 앞에서 싸우다 죽고 아들은 뒤에서 전투하다가 다쳤으며, 여자들이 정장(방어시설)에 올라가고 고아들은 길에서 울부짖으며 늙은 어머니와 과부들은 눈물을 삼키고 골목에서 통곡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영토가 아주 크고 정벌의 전쟁을 쉬지 않은 때문입니다.

 孝武皇帝厲兵馬以攘四夷,天下斷獄萬數,賦煩役重,寇賊並起,軍旅數發數,所角翻。父戰死於前,子鬭傷於後,女子乘亭障,孤兒號於道,老母、寡婦飲泣巷哭師古曰:淚流被面以入於口,故言飲泣也。巷哭者,哭於路也。號,戶刀翻。是皆廓地泰大,征伐不休之故也。

 

 지금 함곡관 동쪽의 백성들은 많은데 오랜 동안 곤욕을 당하였으며 길거리에서 흩어져서 흘러 다닙니다. 사람의 정이란 부모보다 더 친한 것이 없으며, 부부의 정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는데 아내를 시집보내고 자기의 아들을 팔기에 이르렀는데도 법으로 이를 금지할 수 없고 의를 가지고 이를 중지시킬 수가 없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사직의 걱정거리입니다.

 今關東民衆久困,流離道路。人情莫親父母,莫樂夫婦樂,音洛。至嫁妻、賣子,法不能禁,義不能止,此社稷之憂也。

 

 지금 폐하께서는 성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병사의 무리를 몰아서 큰 바다 가운데로 몰아서 던지려고 하시니 그윽하고 어두운 땅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지, 기근을 구제하고 백성들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今陛下不忍悁悁之忿,悁,縈年翻,又吉掾翻,忿也,憂也;《詩》:中心悁悁。又急躁貌。欲驅士衆擠之大海之中師古曰:擠,墜也,音子詣翻,又子奚翻;余謂擠,排也,推也。快心幽冥之地,非所以救助饑饉,保全元元也。

 

 《시경》에서 말하였습니다. '꿈틀대고 움직이는구나. 만이들이 사는 형(초지방)이여! 큰 나라의 원수가 된다.' 성인이 나타나면 그 후에는 복종하고, 중국이 쇠퇴하면 먼저 배반할 것이라는 말이어서 옛날부터 이것을 근심하였는데, 하물며 마침내 다시금 그 남쪽으로 만리를 떨어져 있는 만이들이겠습니까?

《詩》云:『蠢爾蠻荊,大邦爲讎。』師古曰:《詩‧小雅‧采?》之詩也。蠢,動貌也。蠻荊,荊州之蠻也。言敢與大國爲讎敵也。言聖人起則後服,中國衰則先畔,自古而患之,何況乃復其南方萬里之蠻乎!言珠厓又在蠻荊之南,去京師萬里。復,扶又翻。

 

 낙월(해남도)의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개울에서 목욕을 하고, 습관적으로 코로 물을 마시니 금수와 다름이 없어서 본래 군현을 두기에는 부족한 곳입니다. 구구하게 홀로 바다 가운데 있는 단 하나의 섬이어서 안개와 이슬이 많아 공기가 습하고 독있는 풀과 벌레나 뱀 그리고 물이나 흙의 해로움이 많으니, 사람이 호로같은 녀석들을 보이지도 아니하였는데 전사들은 스스로 죽습니다.

 駱越之人南越王尉佗以兵威役屬西甌駱。師古曰:西甌,卽駱越也。言西者,以別東甌也。余謂今安南之地,古之駱越也。珠厓,蓋亦駱越地。宋白曰:高、貴二州,亦古駱越地。父子同川而浴,相習以鼻飲范成大曰:今邕管溪洞及沿海喜鼻飲。隨貧富,以銀、錫、陶器或大瓢盛水,入鹽,幷山薑汁數滴;器側有竅,施管如瓶觜,內鼻中,吸水升腦,下入喉。吸水時,含魚肉鮓一臠,故水得安流入鼻,不與氣相激。旣飲,必噫氣,謂掠腦快膈莫此若。但可飲水;或傳爲飲酒,非是。與禽獸無異,本不足郡縣置也。顓顓獨居一海之中,師古曰:顓,與專同。專專,猶區區也;一曰:圜貌也。霧露氣濕,多毒草、蟲蛇、水土之害;人未見虜,戰士自死。

 

 또 주애(해남 경산)에는 진주, 물소 뿔, 대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포기한다고 하여도 애석하기에는 부족하고, 치지 아니하여도 국가의 위엄이 손상될 것이 없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비유하자면 물고기나 자라 같은데 어찌 탐낼 만하겠습니까?

 又非獨珠厓有珠、犀、瑇瑁也海中有珠池。珠母者,蚌也。採珠必蜑丁,皆居海艇中,以大舶環池採珠;以石懸大絚,別以小繩繫蜑[丁]腰,沒水取珠。氣迫則撼繩,繩動,舶人覺,乃絞取,人緣大絚上。然而死於採珠者亦多矣,此我太祖皇帝所以罷劉氏媚川都也。師古曰:犀狀如牛,頭如猪,而四足類象;黑色;一角當額前,鼻上又有小角。劉欣明《交州記》曰:犀,其毛如豕,蹄有三甲,頭如馬;有三角,鼻上角短,額上、頭上角長。《異物志》曰:角中特有光耀,白理如綫,自本達末,則爲通天犀。《抱朴子》曰:通天犀有白理如綫者,以盛米,雞卽駭矣。其眞者,刻爲魚,銜入水,水開三尺。《本草圖經》曰:犀,出永昌山谷及益州,今出南海者爲上。郭璞《爾雅註》曰:犀三角,一在頂上,一在額上,一在鼻上。鼻上者,卽食角,小而不橢。瑇瑁,如龜,其甲相覆而生,若甲然;甲上有斑文。瑇,音代。瑁,音妹。棄之不足惜,不擊不損威。其民譬猶魚鼈,何足貪也!

 

 신은 가만히 과거에 있었던 강족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는데, 군사들을 밖에 드러내 놓으니 일찍이 아직 1년이 못되었는데 군사들은 출발하여 1천 리를 넘게 나아가지 못하였고, 40여 억이 소비되어서 대사농의 금전을 다 소진하고 마침내 소부에 있는 궁궐의 금전을 갖다가 이를 이어주었습니다.

 臣竊以往者羌軍言之,此蓋指宣帝神爵元年羌反時。暴師曾未一年,兵出不踰千里,費四十餘萬萬;大司農錢盡,乃以少府禁錢續之。《續漢志》:大司農掌諸錢、穀、金、帛、諸貨幣。邊郡諸官請調度者,皆爲報給,損多益寡,取相給足。《百官表》:少府,掌山林池澤之稅,以給共養。應劭《註》曰:名曰禁錢,以給私養,自別爲藏。少者,小也。故稱少府。師古曰:大司農,供軍國之用;少府,以養天子也。

 

 무릇 한 귀퉁이가 좋지 않으면 그 비용은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군사들을 수고롭게 하면서 멀리까지 공격하다가 병사들을 죽이고 공로를 세우지 못하는데서야!

 夫一隅爲不善,費尚如此,況於勞師遠攻,亡士毋功乎毋,與無同。

 

 이를 과거의 사례에서 찾는다면 맞지 아니하고, 오늘날에 이를 실행하려고 하여도 편하지가 않으니, 신은 어리석으나 관대를 가진 나라와《우공》에서 언급하고《춘추》에서 다스렸던 나라가 아니라면 모두 또 상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데 드디어 주애를 버리고, 오직 관동을 긍휼히 여기는 어려움을 사용하십시오."

 求之往古則不合,施之當今又不便,臣愚以爲非冠帶之國,《禹貢》所及,《春秋》所治,皆可且無以爲師古曰:爲,猶用也。治,直之翻。願遂棄珠厓,專用恤關東爲憂!」

 

 황상은 승상과 어사에게 물었다. 어사대부 진만년은 마땅히 공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승상 우정국은 생각하였다.

 上以問丞相、御史。御史大夫陳萬年以爲當擊;丞相于定國以爲:

 

 "전날에 병사를 일으켜서 그들을 공격한 것이 해를 이었고, 호군도위, 교위, 승이 무려 11명이었으나 돌아온 사람은 두 명이었고, 병사와 물건을 운반하다 죽은 사람이 1만 명 이상이었고, 비용도 3억 이상이었지만 오히려 아직도 다 항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관동이 고단하고 궁핍하여 백성들이 어려워서 요동을 치고 있으니 가연지의 의견이 옳습니다."

 황상이 이 말을 좇았는데 가연지는 가의의 증손자다.

「前日興兵擊之連年,護軍都尉、校尉及丞凡十一人,還者二人,卒士及轉輸死者萬人以上,費用三萬萬餘,尚未能盡降。降,戶江翻。今關東困乏,民難搖動,捐之議是。」上從之。捐之,賈誼曾孫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