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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古亂亡之國,必先壞其法制而後亂從之/법제가 무너진 후 혼란하고 다음에 망한다.

solpee 2019. 7. 15. 17:42

 

《後漢紀3 高祖 乾祐  2年》 (己酉, 949)

 

 

 20. 서경유수 왕수은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야비하여 오로지 거두어들이는 일을 하였다.

 20.西京留守、同平章事王守恩,性貪鄙,專事聚斂。

 

 상거도 돈을 내지 않으면 성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고, 측간을 청소하는 사람이나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사람도 과율을 면제하여 주지 않았고, 혹은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멋대로 풀어 놓아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도둑질하게 하였다.

 喪車非輸錢不得出城,下至抒廁、行乞之人,不免課率,或縱麾下令盜人財。

 

 어떤 부잣집에서 며느리를 맞아들이는데, 왕수은은 배우 몇 명과 더불어 가서 빈객이 되어가지고 은으로 된 여러 정(화폐 대용으로 만든 금이나 은으로 된 돈)을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有富室娶婦,守恩與俳優數人往為賓客,得銀數鋌而返。

 

 8월 갑신일(13)에 곽위가 하중에서 돌아오다가 낙양을 지나는데, 왕수은은 스스로 지위가 장상을 겸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견여로 나아가서 영접하였다.

 八月,甲申,郭威自河中還,過洛陽。守恩自恃位兼將相,肩輿出迎。

 

 곽위가 화가 나서 자기에게 오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목욕하고 있다고 말하고서 보지를 않고서 즉시 두자①로 보의절도사인 백문가에게 명령하여 왕수은을 대신하여 유수를 하게 하니 백문가는 감히 어기지를 못하였다.

 威怒,以為慢己,辭以浴,不見,即以頭子命保義節度使、同平章事白文珂代守恩為留守,文珂不敢違。

 

 왕수은은 오히려 손님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관리가 말하였다.

 "새로 온 유수가 이미 관부에서 업무를 살피고 있습니다."

 왕수은은 크게 놀라서 낭패하여 돌아가서 가속 수백 명이 이미 관부에서 쫓겨나서 큰 거리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守恩猶坐客次,吏白:「新留守已視事於府矣。」守恩大驚,狼狽而歸,見家屬數百已逐出府,在通衢矣。

 

 조정에서는 이에 관하여 묻지 않고 백문가를 겸시중으로서 서경유수에 충임하였다.

 朝廷不之問,以文珂兼侍中,充西京留守。

 

 구양수가 논평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어지럽고 망하는 나라에는 먼저 그 법제가 무너지며, 그런 다음에 혼란이 그를 좇았는데, 이는 형세가 그러한 것이니 오대 시절이 이러하였다.

 歐陽修論曰:自古亂亡之國,必先壞其法制而後亂從之,此勢之然也,五代之際是已。

 

 백문가와 왕수은은 모두 후한의 대신이고, 주 태조(곽위)는 한낱 추밀사의 頭子를 가지고 이를 바꾸어 놓는 것이 마치 수졸을 바꾸는 것과 같았다.

 文珂、守恩皆漢大臣,而周太祖以一樞密使頭子而易置之,如更戍卒。

 

 이때에 태조는 아직은 임금이 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한 일이 이와 같다는 것은 대개 습관이 되어 보통 일이 되었던 것이니 그러므로 백문가는 감히 어길 수가 없었고, 왕수은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였다.

 是時太祖未有無君之志,而所為如此者,蓋習為常事,故文珂不敢違,守恩不敢拒。

 

 태조는 이미 이렇게 처리하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한의 조정에서도 역시 내버려 두고 묻지 않았으니, 어찌 기강이 파괴되어 혼란이 극도에 달하지 아니하였다면 여기에 이르렀겠는가?

 太祖既處之不疑,而漢廷君臣亦置而不問,豈非綱紀壞亂之極而至於此歟!

 

 이것으로 선을 가지고 천하를 염려하는 자는 감히 적은 것에서도 소홀히 하지 않아서 항상 그러한 것이 조금씩 밀려드는 것을 막는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是以善為天下慮者,不敢忽於微而常杜其漸也,可不戒哉!

 

★.①頭子: 唐末 五代에서 宋 시기까지 추밀사와 중서성에서 정사를 나누어 발령하는데 추밀사가 중서성을 거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하달하는 札子가 있는데, 일의 내용이 큰 것은 宣이라 하고, 일의 작은 것은 頭子라고 하여 이를 宣頭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