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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평장사 경연광은 거란을 들쑤셔서 침략을 유도하였다.

solpee 2019. 7. 14. 16:04

 

《後晉紀4 제왕 天福 8年》 (癸卯, 943)

 

 

 23. 애초에, 하양 아장이 조연수를 좇아 거란에 들어갔는데, 거란에서 회도사(무역관장직)로 삼으니 진에 왕래하며 판매하고 무역하여 대량에 저택을 두었다.

 23. 9月, 初,河陽牙將喬榮從趙延壽入契丹,契丹以為回圖使,往來販易於晉,置邸大梁。

 

 거란이 진과 틈이 생기자 경연광이 황제에게 유세하여 감옥에 교영을 가두게 하고 전택 안에 있는 재화를 모두 빼앗았다. 무릇 거란의 사람들 가운데 진의 경내에서 판매하고 무역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이고 그들의 재화를 탈취하였다. 대신들이 모두 말씀을 올려 거란은 큰 공로를 가지고 있으니 저버릴 수 없다고 하였다.

 及契丹與晉有隙,景延廣說帝囚榮於獄,悉取邸中之貨。凡契丹之人販易在晉境者,皆殺之,奪其貨。大臣皆言契丹有大功於晉,不可負。

 

 무자일(13)에 교영을 위로하고 하사하며 그를 돌아가게 하였다.

 교영이 경연광에게 인사를 하니, 경연광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戊子,釋榮,慰賜而歸之。榮辭延廣,延廣大言曰:

 

 "돌아가거든 너의 주군에게 말해라. 돌아가신 황제는 북쪽에서 세워주었으니, 칭신하며 표문을 받들었다. 지금 황상은 중국이 세웠으니

북쪽 조정에 뜻을 굽히는 것은 바로 선황의 맹약을 잊지 못하는 연고일 뿐이다. 

「歸語而主,先帝為北朝所立,故稱臣奉表。今上乃中國所立,所以降志於北朝者,正以不敢忘先帝盟約故耳。

 

 이웃에게 칭손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칭신할 이유는 없다. 북의 황제는 조연수의 미친 유혹하는 말을 믿지 말고 중국을 가볍게 업신여기지 말라. 중국의 군사와 군마는 네가 본 바다.

 為鄰稱孫,足矣,無稱臣之理。北朝皇帝勿信趙延壽誑誘,輕侮中國。中國士馬,爾所目睹。

 

 노인네(야율덕광)가 화가 나면 와서 싸우되 손자는 10만을 가지고 있어서 검을 비껴갈고 있으니 서로 대치하기에 충분하다. 다른 날에 손자에게 패배하게 되어 천하에 웃음거리가 되어도 후회하지 말라."

 翁怒則來戰,孫有十萬橫磨劍,足以相待。它日為孫所敗,取笑天下,毋悔也!」

 

 교영은 스스로 재화를 잃었기 때문에 돌아가서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였고, 또 다른 때에 근거와 증험으로 삼기 위하여 마침내 말하였다.

 "공이 말한 것은 자못 많아서 잊어버릴까 두려우니, 바라건데, 이를 지필묵으로 기록하여 주십시오."

 榮自以亡失貨財,恐歸獲罪,且欲為異時據驗,乃曰:「公所言頗多,懼有遺忘,願記之紙墨。」

 

 경연광이 관리에게 명령하여 그가 말한 것을 쓰게 하여서 그에게 주니 교영이 조목조목 갖추어서 거란황제에게 아뢰었다. 거란황제가 바로 화가 나서 공격할 뜻이 비로소 결정되었다. 진의 사자가 거란에 갓는데, 이들을 모두 붙잡아서 유주에 유폐시키고 알현할 수 없게 하였다.

 延廣命吏書其語以授之,榮具以白契丹主。契丹主大怒,入寇之志始決。晉使如契丹,皆縶之幽州,不得見。

 

 상유한이 누차 겸손한 말로 거란에 사죄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매번 경연광에게 저지되었다. 제왕은경연광이 정국의 공로가 있었으니, 총애가 여러 신하들 가운데 으뜸이었으며, 또 숙위병을 총괄하니 그러므로 대신들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었다.

 桑維翰屢請遜辭以謝契丹,每為延廣所沮。帝以延廣為有定策功,故寵冠群臣;又總宿衛兵,故大臣莫能與之爭。

 

 하동절도사 유지원은 경연광이 반드시 침구하게 할 것을 알았으나 용사하는 것이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고, 다만 모병을 더하고 흥첩과 무절 등 10여 군을 설치하여 거란의 침공에 대비할 것을 주청하였다.

 河東節度使劉知遠,知延廣必致寇,而畏其方用事,不敢言,但益募兵,奏置興捷、武節等十餘軍以備契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