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晉紀3 高祖 天福 4年》 (己亥, 939)
34.오월의 공목부인인 마씨가 죽었다. 부인은 웅무절도사 마작의 딸이다.
34.冬,十月,吳越恭穆夫人馬氏卒。夫人,雄武節度使綽之女也。
애초에, 무숙왕 전류는 안팎으로 노래하는 기녀를 기르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문목왕 전원관이 나이 서른 남짓에 아들이 없자 부인 마씨가 후사를 위하여 전류에게 요청하였더니 전류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初,武肅王鏐禁中外畜聲妓,文穆王元瓘年三十餘無子,夫人為之請於鏐,鏐喜曰:
"우리 집안의 제사는 네가 사실상 주관해라!"
《예기》에 '冢婦(맏며느리)는 선대의 제사를 주관한다'라 하고 있다.
마침내 전원관이 첩들이는 것을 허락하였다.
「吾家祭祀,汝實主之。」乃聽元璟納妾。
전홍준·전홍종을 낳았고, 허씨는 전홍좌를 낳았고, 오씨는 전홍숙을 낳았고, 다른 첩들은 전홍담·전홍억·전홍악·전홍앙·전홍신을 낳았는데, 부인은 어루만지고 살피며 사랑하기를 똑같이 하였다.
鹿氏,生弘僔、弘倧;許氏,生弘佐;吳氏,生弘人叔;眾妾生弘偡,弘億、弘儀、弘偓、弘仰、弘信;夫人撫視慈愛如一。
항상 장막 앞에 은으로 만든 사슴을 만들어 두고 여러 아이들을 위에 앉히고 그들과 놀았다.
常置銀鹿於帳前,坐諸兒於上而弄之。
36.초왕 마희범은 비로소 천책부를 열고 호군중위와 영군사마 등의 관직을 두고 여러 동생들과 장교로 이를 삼았다. 또 막료인 탁발항·이홍고·요광도·서중아 등 18명을 학사로 삼았다.
36.十一月,楚王希範始開天策府,置護軍都尉、領軍司馬等官,以諸弟及將校為之。又以幕僚拓跋恆、李弘皋、廖匡圖、徐仲雅等十八人為學士。
유경 등이 나아가 계주를 공격하니, 팽사수의 군사는 패배하여 주를 버리고 도주하여 산채를 지켰는데, 절벽으로 사방이 차단되어 유경은 사다리와 잔도를 만들어서 올라가 그곳을 포위하였다.
劉勍等進攻溪州,彭士愁兵敗,棄州走保山寨;石崖四絕,勍為梯棧上圍之。
요관제가 싸우다가 죽으니, 초왕 마희범은 사자를 파견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조문하게 하였는데 어머니는 곡을 하지 않고 말하였다.
廖匡齊戰死,楚王希範遣吊其母,其母不哭,謂使者曰:
"요씨 300명은 왕의 따뜻하고 풍족하게 내려준 은전을 받아 종족 전체가 죽도록 힘을 써도 보답하기에 충분하지 않은데, 하물며 한 아들이겠습니까! 바라건데, 왕께서는 염려할 것 없습니다."
왕은 그의 어머니가 현명하다고 여기고 그의 집안을 후하게 진휼하였다.
「廖氏三百口受王溫飽之賜,舉族效死,未足以報,況一子乎!願王無以為念。」王以其母為賢,厚恤其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