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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世子孫勿相忘!/대대손손 서로 잊지 맙시다!

solpee 2019. 7. 9. 11:16

 

《後晉紀1 高祖 天福 元年》 (丙申, 936)

 

 

 37.후진황제는 거란황제와 더불어 장차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한 명의 아들을 남겨서 하동을 지키게 하려고 하여 거란황제에게 물으니, 거란제가 후진제로 하여금 여러 아들들을 모두 나오게 하고 스스로 이를 선택하였다. 후진제의 조카인 이중귀는 아버지 이경유가 일찍 죽자 제가 길러서 아들로 삼았는데 모습이 제와 비슷하여 키가 작고 몸집이 작으니, 거란제가 그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큰 눈을 가진 사람이 좋겠소."

마침내 이중귀를 북경유수·태원윤·하동절도사로 삼았다.

 거란에서는 그들의 장수인 고모한을 선봉으로 삼고 항졸과 함께 전진하게 하였다.

 37.帝與契丹主將引兵而南,欲留一子守河東,咨於契丹主,契丹主令帝盡出諸子,自擇之。帝兄子重貴,父敬儒早卒,帝養以為子,貌類帝而短小,契丹主指之曰:「此大目者可也。」乃以重貴為北京留守、太原尹、河東節度使。契丹以其將高謨翰為前鋒,與降卒偕進。

 

 

 조덕균과 조연수는 남쪽으로 가서 노주로 도망하였는데 당의 패배한 군사들이 조금씩 그를 좇았으며 그의 장수인 시세가 노룡의 경무장한 기병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어양으로 돌아왔다.

 趙德鈞、趙延壽南奔潞州,唐敗兵稍稍從之,其將時賽帥盧龍輕騎東還漁陽。

 

 후진제는 먼저 소의절도사 고행주를 파견하여 먹을 것을 갖추어가지고 돌아오게 하였는데, 성 아래에 도착하여 조덕균 부자가 성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고행주가 말하였다.

 "복은 조부자와는 동향이니 감히 추고하지 못하겠습니까? 성 안에는 지킬 만한 한 말의 속미도 없으니 신속히 거가를 영접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帝先遣昭義節度使高行周還具食,至城下,見德鈞父子在城上,行周曰:「僕與大王鄉曲,敢不忠告!城中無斗粟可寧,不若速迎車駕。」

 

 갑술일(19)에 진제는 거란제와 더불어 노주에 도착하니 조부자가 고하에서 영접하고 알현하자 거란제가 그를 위로하고 달래었고, 부자가 말 머리에서 진제에게 절하고 나아와서 말하였다.

 "이별한 후에 편히 지냈습니까?"

 甲戌,帝與契丹主至潞州,德鈞父子迎謁於高河,契丹主慰諭之,父子拜帝於馬首,進曰:「別後安否?」

 

 진제는 돌아보지 않고 역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도 않았다. 거란제가 조덕균에게 물었다.

 "네가 유주에 있으면서 설치한 은안거란직이 어디에 있느냐?"

 조덕균이 그들을 가리켜 보이자 명령하여 그들을 서교에서 모조리 죽이게 하니 무릇 3천 명이었다. 드디어 조부자를 쇠사슬에 묶어서 그의 나라로 돌려보냈다.

 帝不顧,亦不與之言。契丹主謂德鈞曰:「汝在幽州所置銀鞍契丹直何在?」德鈞指示之,契丹主命盡殺之於西郊,凡三千人。遂瑣德鈞、延壽,送歸其國。

 

 

 후진제가 장차 상당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거란제가 술잔을 들고 제에게 부탁하며 말하였다.

 "내가 멀리서 온 것은 정의를 좇기 위함인데 지금 대사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내가 만약 남쪽으로 향한다면 하남의 사람들이 반드시 크게 놀랠 것이고, 당신이 의당 스스로 한병을 이끌고 남하한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심히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오.

 帝將發上黨,契丹主舉酒屬帝曰:「余遠來徇義,今大事已成,我若南向,河南之人必大驚核;汝宜自引漢兵南下,人必不甚懼。

 

 나는 태상온으로 하여금 5천의 기병을 인솔하고 당신을 호송하여 하량에 도착하게 하여 그들과 더불어 하를 건너는 사람들이 얼마라고 하든지 그 뜻을 따르게 하려고 하였소.

我令太相溫將五千騎衛送汝至河梁,欲與之渡河者多少隨意,

 

 나는 또한 이곳에 머무르면서 당신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위급한 일이 잇으면 산을 내려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며, 만약 낙양이 이미 평정되고 나면 나는 바로 북으로 돌아갈 것이오."

  余且留此,俟汝音聞,有急則下山救汝。若洛陽既定,吾即北返矣。」

 

 후진제와 더불어 손을 잡고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오랫동안 이별할 수가 없었으며, 흰 담비 갓옷을 벗어서 진제에게 입히고 좋은 말 20필과 전마 200필을 주며 말하였다.

 "대대로 자손들이 서로 잊지 말게 합시다."

 또 말하였다.

 "유지원·조영·상유한은 모두 창업공신이니 큰 연고가 없으면 버리지 마시오."

 與帝執手相泣,久之不能別,解白貂裘以衣帝,贈良馬二十匹,戰馬千二百匹,曰:「世世子孫勿相忘!」又曰:「劉知遠、趙瑩、桑維翰皆創業功臣,無大故,勿棄也。」

 

 애초에, 장경달이 이미 군사를 출동시켰는데  당제는 좌금오대장군인 역산 사람  고한균을 파견하여 진주를 지키게 하였다. 장경달이 죽자 건웅절도부사 전승조가 무리를 인솔하고 부서에서 고한균을 공격하니, 고한균이 문을 열고 전승조를 끌어들여서 조용히 말하였다.

 初,張敬達既出師,唐主遣左金吾大將軍歷山高漢筠守晉州。敬達死,建雄節度使田承肇帥眾攻漢筠於府署,漢筠開門延承肇入,從容謂曰:

 

 "복은 공과 더불어 조정의 기탁을 받았는데 어찌 서로 이와 같이 압박하는 것이오?"

 전승조가 말하였다.

 "공을 받들어 절도사로 삼고자 하오."

 고한균이 말하였다.

 "복은 늙엇고 의리로는 반란의 수괴가 되지 않을 것이며 죽고 사는 것은 오직 공이 처리하는 것에 달려 있소."

「僕與公俱受朝寄,何相迫如此?」承肇曰:「欲奉公為節度使。」漢筠曰:「僕老矣,義不為亂首,死生惟公所處。」

 

 전승조가 좌우의 사람들에게 눈짓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자 군사들이 칼을 땅에다 던지며 말하였다.

 "고금오는 여러 조정에서 덕망을 쌓았는데 어찌하여 그를 해치는 것입니까?"

 전승조가 마침내 사죄하며 말하였다.

 "공과 더불어 장난질을 하였을 뿐이오."

 고한균이 낙양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였다. 진제가 길에서 그를 만나자 말하였다.

 "짐은 경이 반란군에게 상해를 입을까 걱정하였는데 지금 경을 보니 심히 기쁘오."

 承肇目左右欲殺之,軍士投刃於地曰:「高金吾累朝宿德,奈何害之!」承肇乃謝曰:「與公戲耳。」聽漢筠歸洛陽。帝遇諸塗,曰:「朕憂卿為亂兵所傷,今見卿甚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