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唐紀 莊宗 同光 3年》 (乙酉, 925)
24.8월, 계미일(23)에 하남 현령을 장형으로 죽였다.
애초에 나관은 예부원외랑이었는데, 성격이 강직함을 곽숭도가 알게 되어 하남 현령으로 등용되었다.
24.八月,癸未,杖殺河南令羅貫。初,貫為禮部員外郎,性強直,為郭崇韜所知,用為河南令。
정치를 하면서 권력 있고 높은 사람들을 피하지 않았으며, 배우와 환관들이 청탁하는데 그 문서가 책상에 쌓였어도 하나같이 회보하지 않고 모두 곽숭도에게 보였으며, 곽숭도가 이를 상주하였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배우와 환관들이 이를 갈았다.
為政不避權豪,伶宦請托,書積幾案,一不報,皆以示崇韜,崇韜奏之,由是伶宦切齒。
하남윤 장전의도 역시 나관의 뜻이 높고 굳센 것을 가지고 그를 미워하여서 비녀들을 보내어 황후에게 호소하게 하자, 황후가 배우와 환관들과 더불어 그를 함께 헐뜯으니, 장종이 분노를 품었으나 아직 드러내지는 않았다.
河南尹張全義亦以貫高伉,惡之,遣婢訴於皇后,後與伶宦共毀之,帝含怒未發。
마침 장종은스스로 수안으로 가서 곤릉의 역사를 살피려는데 도로가 진흙물로 넘쳤고 다리가 대부분 파괴되었다.
장종이 주관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환관이 하남에 속한다고 대답하였다.
會帝自往壽安視坤陵役者,道路泥濘,橋多壞。帝問主者為誰,宦官對屬河南。
장종이 화가 나서 나관을 감옥으로 보냈으며, 옥리가 매질하여 몸은 온전한 살가죽이 없었으며, 다음날 조서를 전달하여 그를 죽이게 하였다. 곽숭도가 간하였다.
"나관이 다리와 길을 닦지 않은 것에 연루되었으나 법대로 하면 죽음에 이르지 않습니다."
帝怒,下貫獄;獄吏榜掠,體無完膚,明日,傳詔殺之。崇韜諫曰:「貫坐橋道不修,法不至死。」
장종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태후의 영가가 장차 출발하려고 하고 나 천자가 아침저녁으로 오고가는데 다리와 도로가 닦아지지 않았는데도 경은 죄가 없다고 말하니 이는 같은 패거리구먼!"
곽숭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만승의 높으신 분으로서 한갓 현령에게 화를 내어 천하로 하여금 '폐하께서 법을 적용함이 공평치 못하다.'고 여기게 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
帝怒曰:「太后靈駕將發,天子朝夕往來,橋道不修,卿言無罪,是黨也!」崇韜曰:「陛下以萬乘之尊,怒一縣令,使天下謂陛下用法不平,臣之罪也。」
장종이 말하였다.
"이미 공이 아끼고 있는 사람이니, 임의로 공이 그를 재단하시오."
옷을 떨치고 일어나 궁궐로 들어가자, 곽숭도도 그를 따랐으나 논의하고 추정하는 것이 그치지 않았으며, 장종이 스스로 전문을 닫으니, 곽숭도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나관이 마침내 죽고 관부의 문에 시체를 드러내니 멀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이를 억울하다고 하였다.
帝曰:「既公所愛,任公裁之。」拂衣起入宮,崇韜隨之,論奏不已;帝自闔殿門,崇韜不得入。貫竟死,暴屍府門,遠近冤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