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唐紀 莊宗 同光 2年》 (甲申, 924)
42.병술일(19)에 무령절도사 이소영(元行欽)을 귀덕절도사·동평장사로 삼고 남겨서 숙위하게 하였는데, 총애하고 대우하는 것이 심히 두터웠다. 황제는 혹 때때로 태후·황후와 더불어 그의 집에 함께 갔다.
42.6月, 丙戌,以武寧節度使李紹榮為歸德節度使、同平章事,留宿衛,寵遇甚厚。帝或時與太后,皇后同至其家。
황제에게는 총애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얼굴이 예뻤고 일찍이 아들을 낳자, 유후가 그녀를 질투하였다.
마침 이소영은 처를 잃었고 어느 날 금중에서 모시는데, 황제가 이소영에게 물었다.
帝有幸姬,色美,嘗生子矣,劉後妒之。會紹榮喪妻,一日,侍禁中,帝問紹榮:
"그대는 다시 결혼하지 않겠나? 그대를 위하여 혼처를 구해 주겠네."
황후가 이어서 행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대가는 이소영을 가련하게 여기면서 어찌하여 이 여자를 그에게 내리지 않는 것입니까?"
황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머뭇거리면서 허락하였다.
「汝復娶乎?為汝求婚。」後因指幸姬曰:「大家憐紹榮,何不以此賜之!」帝難言不可,微許之。
황후는 이소영에게 절하고 사례할 것을 재촉하였는데, 일어날 즈음에 행희를 돌아보니, 이미 견여가 궁중을 나갔다.
황제는 이 일 때문에 병을 핑계로 여러 날 동안 먹지 않았다.
後趣紹榮拜謝,比起,顧幸姬,已肩輿出宮矣。帝為之托疾不食者累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