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唐紀 莊宗 同光 2年》 (甲申, 924)
31.공겸이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실로 갚게하면서 헐한 가격으로 하고, 누차 지방에 격문을 보내어 이를 독촉하게 하였다. 한림학자승지·권지변주인 노질이 말씀을 올려서 말하였다.
31.孔謙貸民錢,使以賤估償絲,屢檄州縣督之。翰林學士承旨、權知汴州盧質上言:
"양의 조엄이 조용사가 되어 대여해주고 재물을 강제로 빼앗았으므로 사람들에게 원망을 맺었습니다. 폐하께서 옛날 것을 고치고 새롭게 만드시려면 사람들을 위하여 해로운 것을 제거해야 하는데, 유사들은 아직 그들이 하는 짓을 고치지 않고 있으니 이는 조엄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梁趙巖為租庸使,舉貸誅斂,結怨於人。陛下革故鼎新,為人除害,而有司未改其所為,是趙巖復生也。
이번 봄에는 서리가 내려서 농사를 해쳐 견사가 심히 적은데 단지 정세를 내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흘러서 옮겨 다닐까 두려운데 하물며 그 위에 빌려준 것을 거론하니 사람들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今春霜害桑,繭絲甚薄,但輸正稅,猶懼流移,況益以稱貸,人何以堪!
신은 오직 천자를 섬길 뿐 조용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며, 칙지가 아직 반포되지 않았는데 성첩이 빈번히 내려지니, 바라건데 일찌감치 밝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당황은 회보하지 않았다.
臣惟事天子,不事租庸,敕旨未頒,省牒頻下,願早降明命!」帝不報。
33. 애초에 호유에서 배우 주잡이 양에 붙잡히자, 황제가 매번 그를 생각하였는데, 변주에 들어가던 날에 주잡이 말 앞에서 알현하니, 황제는 심히 기뻐하였다.
33.初,胡柳之役,伶人周匝為梁所得,帝每思之;入汴之日,匝謁見於馬前,帝甚喜。
주잡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신이 살아서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양의 교방사인 진준과 내원재접사인 저덕원의 힘이었으니, 바라건데, 곧 폐하께서 두 주를 빌어 가지고 그들에게 보답하게 해 주십시오."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匝涕泣言曰:「臣所以得生全者,皆梁教坊使陳俊、內園栽接使儲德源之力也,願就陛下乞二州以報之。」帝許之。
곽숭도가 간하였다.
"폐하께서 더불어 천하를 함께 탈취한 사람들은 모두 영웅호걸로 충성스럽고 용감한 군사들입니다. 지금 큰 공로를 비로소 세웠지만 봉상은 한 사람에게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먼저 배우를 자사로 삼으면 천하의 인심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이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
郭崇韜諫曰:「陛下所與共取天下者,皆英豪忠勇之士。今大功始就,封賞未及一人,而先以伶人為刺史,恐失天下心。」以是不行。
해를 넘겨서 배우들이 누차 말하니 황제는 곽승도에게 말하였다.
"내 이미 주잡에게 허락하였으니, 나로 하여금 이 세 사람을 보기가 부끄럽게 되었소. 공의 말은 비록 바르기는 하나 마땅히 나를 위하여 생각을 굽혀 이를 실행하도록 하시오."
逾年,伶人屢以為言,帝謂崇韜曰:「吾已許周匝矣,使吾慚見此三人。公言雖正,然當為我屈意行之。」
5월 임인일(5)에 진준을 경주자사로 삼고 저덕원을 한주자사로 삼았다. 이때에 친군으로 황제를 좇아서 백번을 싸우고도 자사를 얻지 못한 사람은 분해하고 한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五月,壬寅,以俊為景州刺史,德源為憲州刺史。時親軍有從帝百戰未得刺史者,莫不憤歎。